인턴이야기
내가 배정된 팀은 ‘시민대학’을 운영하는 업무를 전담했다.
‘시민대학’이란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민들을 위해서 연사를 초빙하여 강연을 개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강연들을 반기나 연 단위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사전 등록제를 통하여 수료증까지 발행하는 등 대학 교양강좌의 형태로 운영을 한다.
연자와 컨셉은 대체로 시정을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방향과 비례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강연들이 모여 성과가 되고 그 성과는 선거철에 유권자들의 표심으로 심사를 받기 때문이다.
시민강연에 대한 운영 전권, 이를테면 강사섭외, 홍보 등 강연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하는 모든 일을 위탁하여 진행하였다.
그 강연이 이루어지는 곳은 각종 지자체에 위치한 강당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근이 많았다.
일주일에도 서너번은 기본이었으며, 끼니도 거르며 두 군데 이상을 다닌 적도 있었다.
면접 때, 운전은 잘 하는지 질문을 받았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비치되어 있던 낡은 전화번호수첩,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고 자취를 감춰 십년 만에 본 듯한 그 수첩은 이 회사의 두말 할 것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TV에 나오는 연예인, 유명 강연자로 알려져 있는 연자들,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이미 명성을 떨치고 있는 강사들.
그들을 섭외하기 위한 연락처, 강연주제, 성향, 주의사항 등이 깨알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있었다.
나는 강사 초빙이 확정되면 프로필을 정리하여 지자체에 전달을 하였다.
강사도 다양했고, 주제도 다양했다.
명문대 기업대표도 있었고,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
이제 갓 30대부터 이미 칠순을 넘긴 나이도 있었다.
프로필을 정리하는 작업들은 재미가 있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들이 극악하게 압축되어 있다.
강연을 요약하는 작업은 더 확장된 재미가 있었다.
마치 그 프로필에 링크가 달려있어, 클릭하면 작은 요정이 나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간략하게나마 그들의 인생을, 그것도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삶을 전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난 그들의 프로필에서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살아온 과정이 대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업에 망했던, 회사에서 짤렸던 간에 그들이 살아온 과정에는 '키워드'가 있었다.
오히려 4년제 대학을 나와 평범하게 회사생활을 했던 사람은 여기 없었다.
성공의 이야기는 일관성과 비범함이 공존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한 두 시간씩 고속도로를 달려가야 하는 외근이었음에도 내 업무는 참 소소했고 사소했다.
일단 행사 전 한 두시간전에 도착해 마이크와 컴퓨터를 켜고 상태를 확인한다
장비가 완료되면 입구에 테이블을 놓고 출석부와 커피와 차를 준비해둔다.
대형 전기포트를 끓이기 위해서 군대에서나 보던 리드선(군대에선 딸딸이선이라 불렀다)도 챙겨야 했다.
그렇게 준비가 다 되면 기다렸던 강사를 맞이하고 지자체 담당자에게 인계해주면 8할은 끝난다.
강의장 뒤편에 앉아 강연이 진행되는 것을 관람하다가 끝나면 정리하는 것이 나머지 2할.
별로 큰 머리를 쓸 일 없는 허드렛일이었다.
나의 사수는 허드렛일에 대해서 상당히 상세히 알려주었다.
차와 커피를 놓는 위치와 방법에도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그리고 그 철학을 나에게 인계, 아니 전이시키고 싶어했다.
난 그의 의지를 알았기에 열심히 받아적는 행위를 해야했다.
사소한 것으로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들의 강연으로 많은 청중들이 감명을 받았고, 영감을 얻었다.
나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매주 좋은 강연을 몇 개씩이나 들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남들은 다 출근해서 참여하지 못하는 시간대에 나는 돈을 벌면서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부모님께 이 사실을 자랑하듯이 말씀드렸다.
이런 강연들을 매일 들으니 나는 남들보다 얼마나 많이 성장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고 말이다.
엄마는 함께 즐거워하시며 내 말에 동의하셨다.
회사의 규모나 월급 등은 자랑할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자랑꺼리를 쥐어짜낸 것을 모르실리 없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그래도 사회생활 잘 하고 있다고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다.
정규직인줄 알고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계약직이었고, 인턴이라는 사실은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다.
부모님은 내 마음과 상황을 모르실리 없었지만 굳이 말하시지 않으셨다.
그저 늘 들어주시고 응원을 해주실 뿐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컴컴한 새벽부터 일어나 움직인 탓이랴.
불행히도 사수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일알씨, 정신차려요. 신입인거 잊었어요?”
“네, 죄송합니다. 일찍 일어나서 움직이다보니…”
“변명하지 마세요.”
“네…”
그날 사무실에 복귀 한 이후로 며칠동안 회사에서의 분위기가 좀 불편했다.
특히 목소리와 행동에 대한 잔소리를 많이 들었다.
쓰레기통이나 탕비실, 복사용지 등의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신입'의 자세가 주요 주제였다.
그 때 알았다.
신입이 어떤 실수를 하면 내부클라우드 시스템에 의해서 각 직원들에게 해당 상황과 평가가 전파된다는 것을.
어떤 직원의 눈에 들더라도 그 눈은 감시시스템의 CCTV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암묵적으로 그 실수를 바로잡아주기 위해서 선배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잘못은 했지만 억울했다.
잘못한 실수에 비해서 처벌이 과중했다.
하지만 양형기준따위는 없었다.
일사부재리의 원칙도 없이 다수에게 여러 번 처벌 당했다.
입사한 지 한 달쯤 되던 날, 또 한 명의 인턴이 입사했다.
동기였다.
나보다는 한 살 많은 형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에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다.
서로의 상황에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정규직인 줄 알고 입사했다는 사실도 같았다.
다만, 그는 나와는 달리 업무에 대한 지원동기가 강하지 않았다.
그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를 찾다가 합격한 곳에 온 것이었다.
우리는 상당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탕비실에서 정리를 하면서 이야기를 했고,
사무실 쓰레기의 분리수거를 하면서 이야기했고,
짐을 나르러 화물엘레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에 가면서 이야기했다.
둘 다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지만, 옥상엘 자주 갔다.
하늘과 닿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면 숨통이 트였다.
거기에 있으면 지하 3층쯤 위치한 신입의 위치를 잊을 수 있어서였을까.
우리의 지원동기는 달랐으나, 느끼는 것은 같았다.
이 회사에 계속 다녀도 될까라는 의문이 가장 컸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이 회사가 다녀도 될 곳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
어딜가던지 비슷할 것 같았고, 무엇보다 누가 날 뽑아주긴 할까 싶은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다녀보기로 했다.
일방적으로 설정된 계약기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