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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알 Apr 10. 2023

[퇴사야사 05]담배연기 가득한 출장길

인턴이야기


2개의 팀이 있었다

하나는 ‘시민대학’을 운영하는 내가 속해있는 팀,  커리어우먼인 영팀장의 팀이었다.

다른 하나는 ‘공무원교육’을 운영하는 팀, 상남자 형팀장의 팀이었다.

또 다른 팀도 있었지만, 팀원들이 모두 행정처리 등의 단독업무를 하기에 팀이라기엔 애매했다.

필연적으로 영팀장과 형팀장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사건건 서로 으르렁대었다.

상대방의 실적을 깍아내리기를 즐겼다.

그런다고 본인의 성과가 높아지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본인의 성과를 높이는 것보다 그게 더 쉽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다.

주변사람들을 통해서만 말을 했다.

그래서 각 팀마다 그들의 대변인이 있었다.

오른팔 역할을 하던 대리들이었다.

양 팀장들의 입장은 대변인들을 통해 교류되었다.

두 팀은 업무 성격도 다르고 분야도 달랐는데, 가끔씩 협업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예컨대 강사섭외를 동시에 하거나 물품을 함께 구입하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양 대변인은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활약을 해야했다.

이해득실을 정확히 계산을 했고, 서로 협상했다.

각 팀장들의 입맛에 맞게 말이다.

가끔 그 계산서가 잘못되면 대변인들끼리 추가 협상을 했다.

팀장들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합의점은 줄타기를 했다.

그래셔 대변인들은 누구보다도 친했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참 씁쓸했다.

고작 10명 남짓의 작은회사에서도 이래야만 할까.



협조요청이 왔다

형팀장의 팀에서 나를 불렀다.

출장을 보낸다고 했다.

공무원교육은 보통 3박 4일로 진행이되었고, 대부분 지방에서 진행되었다.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진행을 보조하고 허드렛일을 할 일손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영팀장은 흔쾌히 수락했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업무적 보상을 요구했고 협상은 성립되었다.

막상 출장에 가는 건 나였지만 형식적으로도 의사를 묻지 않았다.

3박이나 되는 출장에 대한 보상 역시 없었다.

그저 나는 두 팀장이 두는 체스말과 다름 없었다.


내가 가고싶다고 자원했던 출장도 아니었는데 나는 눈치를 봤다.

짧지 않은 출장기간동안 못하게 될 내 업무를 내 사수가 대신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미리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했다.

그럼에도 남은 업무들은 열심히 적어서 인계해줬다.

사수는 인계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툴툴대며 말했다.

“3박 4일동안 나는 뺑이칠 테니까, 실컷 푹~ 놀다가 와요”



출장길은 멀었다

서울에서 남도까지는 고속도로를 족히 4시간은 달려야 했다.

장거리 운전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20살부터 운전 경험을 쌓은 나의 이력이 빛을 발할 때였다.

‘잘’하는 운전은 ‘안전’운전이라고 배웠다.

나는 평소의 습관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안전운전을 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옆자리의 실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일알이가 운전은 잘 못하는고마, 저~가 휴게소에서 바꾸마, 내 운전 함 잘 보고 배우래이”


실장의 운전이 시작되자 나는 경악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난폭운전이었다.

급정거와 급출발은 기본이고 차와 차 사이를 쉴새없이 드나들며 달렸다.

한 손으로 핸들을 좌우로 흔들며 기교를 부렸다.

마치 총알택시와도 같았다.

눈을 감고 포기를 하는 것이 편할 정도.

실장은 우쭐대는 표정으로 운전 중에 굳이 고개를 뒤로 돌려가며 말했다.


“마, 봤나, 운전은 이래해야 잘 하는기다.”


거친 운전에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되었다가 지쳐 온 몸이 풀려있을 즈음에,

양 창문이 열렸다.

그렇다. 실장과 형팀장은 흡연자였다.

그들은 4시간이 넘는 동안 끽연을 참을 생각이 없었다.


“한 대 해아지~”


신호와 동시에 그들은 창문을 내려 담배를 피웠고,

앞 창문에서 방출된 연기는 뒷창문을 통해 후드가 달린 것처럼 내 허파로 흡입되었다.

괴로웠다.

3대에 걸쳐 니코틴을 직접 마셔본 적 없는 집안탓에 담배연기가 더욱 괴로웠다.

머리카락과 옷깃에 담배냄새가 배었다.

기침이 나와 간헐적으로 콜록거렸으나, 앞자리의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뿌연 담배연기를 마시며 가고싶지 않았던 출장을 갔다.



교육은 지루했다.

리조트에 도착했다.

먼저 숙소를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숙소에 도착한 실장과 형팀장은 또 담배를 꺼내물었다.

거실에 쇼파에 앉아 담배연기를 뱉으며 나에게 먼저 씻을 기회를 주었다.

나는 서둘러 욕실로 피신했다.

하지만 먼저 씻는게 그리 좋은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막내인 나는 눈치를 보며 최대한 후다닥 씻고 나왔고 행사준비와 숙소정리를 했다.


김대리는 우리와 함께 온 유일한 여직원이었다.

첫 강의는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는 지난 몇 주간 준비했던 강의를 열심히 떠들었다.

하지만 강사와 교육생의 핏이 별로 좋지 않았다.

트렌디한 유머와 명언들이 짬뽕된 초빙강사의 교안은 흥미는 있었으나 깊이는 없었다.

지루함과 무료함으로 가득한 교육생들 역시 별로 교육의지가 없었다.

얼굴에 따분함이 가득했고, 심지어 수시로 강의장을 이탈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나는 나의 역할을 했다.

밖에있는 교육생 분들을 찾아 최대한의 공손한 단어를 끌어모아 입장을 유도했다.

까칠한 표정의 교육생 한 명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거 쉬러왔는데, 좀 귀찮게 좀 하지마소!”


그랬다.

이 교육은 우리에게 존재의 이유와도 같았다.

덕분에 월급을 받아 생활을 할 수 있었고, 커리어이아 잡(job), 내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키워드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교육은 그저 ‘휴식공간’이었다.

업무에서 벗어난 자유의 공간, 출근복 대신 츄리닝을 입고 구두대신 슬리퍼를 신고 강의장에만 ‘있기만 해도’되는 그러한 시간이었다.

수요와 공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교육니즈가 없는 대상에게 하는 교육이려니, 주제도 애매한 종합선물셋트 같은 교안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문제가 생겼다


강의 중 갑자기 소리가 안나왔다.

김대리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에 삽입된 영상이 소리만 먹통이 된 것이었다.

김대리는 당황했다.

모든 교육생이 그녀만을 쳐다보았으나,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그녀는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강의장 뒷편에 있던 나는 재빨리 달려갔다.

아무래도 컴퓨터는 내가 그녀보다 잘 알았기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파일, 케이블선, 사운드 설정 등 차분하게 하나씩 확인을 하던 중,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핀잔을 주듯이 말했다.


“하지마, 하지마!”


그녀는 자연스럽게 강의를 이어나갔다.

영상 하나쯤은 없어도 충분하다는 듯이 말이다.

강의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더 중 마침 내가 나와주었고 그 책임을 떠안아줄 적임자가 되었다.

졸지에 나는 준비도 못한 어설픈 신입의 모습이 되어 사람들의 눈총을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 회식이 시작되었다.

인근 식당을 대관하여 교육생들을 손수 모셨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회식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시간이 길어질 수록 우리의 연장근무도 길어졌고 교육생들의 정신줄도 늘어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주사를 부리기 시작했다.

을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우리가 감당할 몫이었다.


“여기, 소주 더 가져와요”


식당의 일손이 부족하자 김대리가 술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술을 받았던 손이 자연스럽게 김대리의 엉덩이를 더듬는 것을.

화들짝 놀란 김대리는 그 손을 치워내며 자리로 돌아왔다.

표정이 불쾌함이 묻어있었으나, 당혹감은 없었다.

오히려 아무일 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처음 당해본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아무도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름 찾아서 힘들게 입성한 회사였다.

출근한지는 어느 덧 삼개월차가 되었다.

첫 출근날부터 월급, 규모, 계약, 분위기 등 여러가지가 흔들렸다.

그리고 최후였고, 최중이었던 일에 대한 확신이 이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나는 어떤 걸 상상하고 기대했었을까?

처음 겪어보는 사회생활, 아직 내가 현실을 모르고 철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한가지 확실했던 것은 출근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인데 내가 엄살을 부리는 것일지도 몰랐다.

희뿌연 담배연기 때문인지 앞이 잘 보이질 않았고 코는 매웠다.

머리가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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