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읽기만 해도 주변 풍경이 떠오르고 어느새 소설 속 공기가 느껴지는 그런 소설 말이다. 주인공의 숨소리마저 느껴지는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뚝딱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재와 어떤 계기만 주어지면 금세 쓰고 말리라. 생각만 한 채 시간이 흘렀다. 소재는 생각보다 자주 생겼다. 다만, 계기가 없었다. ‘수첩에 쌓인 소재들은 힘껏 몰려왔다가 흰 포말만 남기고 사라지는 파도일 뿐이다.’ 치부하거나, 돌이켜 보니 촌스러운 소재였다 거나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언젠가 찾아올 계기라는 것에 불안함과 게으름, 엄두 나지 않는 무언가를 떠넘겼다. 빨리 깨달았어야 했다. 메시아는 없다는 것을, 나는 어느 순간 계기를 메시아 대하듯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계기’라는 것은 사실 없었다. 무언가를 하던 사람이 좀 더 잘하게 된 것을 겸손하게 계기라고 표현하거나 타인이 계기라고 추앙한 것이다. 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 어떤 순간도 그저 흘러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