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항공 비행기는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출발해 약 6시간 비행한 후, 새벽 6시경 푸동 공항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2월 초,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던 때였다.
창 밖을 보니 동이 막 트려고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뿌연 공기가 공항 전체에 자욱이 퍼져 있었다. 뿌연 공기 사이로 빛이 번져서 꼭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쓰지 않은 채 보는 풍경 같았다. 비행기 문이 열리자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기는커녕 흙먼지 냄새인지 석유냄새인지 이상한 냄새가 가득한 매캐한 공기가 비집고 들어왔다.
중국의 첫인상은, 솔직히, 나빴다.
미리 받아 온 비자 덕에 입국심사는 일사천리였고, 짐도 일찍 나와 우리는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를 나가기 전, 화장실을 다녀오려고 남편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 화장실로 향했는데, 화장실이 너무 더럽고 칸마다 휴지도 없었다. 게이트 밖에도 화장실이 있을 거 같아서 그 화장실은 패스하고 출국 게이트로 나가자, 남편의 이름이 영어로 쓰여진 종이를 거꾸로 들고 있는 기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영어를 전혀 하시지 못해 손짓 발짓으로 내가 화장실에 다녀올 것임을 알리고 화장실엘 갔는데 그 화장실 역시 휴지도 없고 너무 더러웠다. 그렇게 급한 건 아니어서, 그냥 숙소에 도착해서 가자 싶었다. 테리가 바로 옆이라고 했으니, 멀어봤자 30분..? 40분 정도일까? 싶었다.
차에 다시 앉자, 다리가 저려왔다.
총 12시간의 비행, 멜번/창이/푸동 공항에서 출국, 입국 수속을 받으며 보낸 6시간, 싱가포르에서 돌아다닌 10시간의 시간이 합쳐진 어마어마한 피로는 정말이지 괴로웠다.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달리는 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도시는 온통 회색빛이었고 보이는 거라곤 잿빛 아파트들 뿐.. 그러다 보이는 커다란 빨간색 한자들... 창 밖을 응시하다 나도 모르게 그대로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차는 어딘지도 모를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고 시계를 보니 출발하고도 50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싶었다.
테리가 분명 금방이라고 했는데, 50분이나 달렸는데도 목적지 근처는 커녕 고속도로 한복판이라니. 다시 눈을 붙여 보려고 했지만 화장실도 가고 싶었고 목도 말라서 잠은 다 달아나 버렸다. 운전기사님은 영어를 아예 못하셨고, 남편과 나의 휴대폰은 호주에서 분명히 데이터 로밍을 해 왔지만 이상하게 먹통이었다.
기사님께 손짓 발짓과 손목시계를 동원해 언제 도착하냐고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건 알 수 없는 중국어뿐... 말 안 통하는 나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났다. 모든 걸 체념하고 언젠간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앉았다.
그리고 우리가 쑤저우에 도착한 건, 출발로부터 2시간 50여분이 흐른 후였다....^^
중국인이 말하는 바로 옆 = 차로 2시간 50분임
첫날 치고는 매운 레슨이었다.
기사님은 우리를 한 어마어마한 낡은 아파트 단지 내에 내려주시고는 쌩 떠나 버렸다.
뭔가 이상했다.
테리가 분명히 지은 지 5년도 안된 새 아파트고, 삐까뻔쩍한 로비에는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매니저도 있다고 했는데.. 잘못 온 듯한 느낌이 났다.
아닌 게 아니라, 마지막에 도착하기 30여분 전후로는 기사님이 자꾸 차를 세우고 지도도 쳐다보고 표지판도 유심히 보고 어디론가 막 전화도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심했기에, 이 기사님이 우리를 대충 아무 데나 내려주고 그냥 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마구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캐리어가 다 젖을까 봐 일단 아파트 로비로 보이는 곳으로 캐리어를 옮겼고, 혹시나 싶어 로비에 있던 경비아저씨에게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디선가 굉장히 심술궂게 생긴 아가씨가 나타나면서 아주 큰 목소리로 Check in? come here!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일단 중국 도착하고 처음 들린 영어에 너무 반가워서 달려가 여기가 모나쉬대학교 숙소가 맞냐고 물어보자 대뜸 여권을 달란다. 여권을 건네주자 그녀는 여권을 복사하고 키를 하나 주면서 우리 숙소는 나가서 왼쪽, A동의 10층이라고 한다.
뭘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정말 서슬 퍼렇게 무서운 그녀의 퉁명스러움에 질려서 열쇠를 받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나오면서 다시 한번 아파트를 보자 지은 지 5년은커녕.... 50년도 더 되어 보였다. 페인트는 여기저기 벗겨지기 시작했고 건물은 때가 타 꾀죄죄했다. 이런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있긴 할까 싶었다.
테리.... 테리가 자꾸 생각났다. 바로 옆이라고 하더니 2시간 50분이 걸리고, 정말 좋은 아파트라고 하더니 한국의 80년대에나 있을 법 한 이런 낡아빠진 아파트라니.. 테리는 왜 그랬을까???
캐리어 5개를 끌고 힘겹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담배연기가 가득했다. 담배를 피우고 탄 냄새가 아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담배를 분명히 피운 냄새였다.
코를 막고 얼른 내려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숙소의 상태는 가관이었다....
분명히 현관, 거실, 방 1개, 부엌, 화장실.. 이렇게 있을 건 다 있는데, 너무나도 좁았다.
일단 현관과 부엌은 한 사람이 들어가면 더 이상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사이즈였다. 거실은 작은 소파와 티테이블, 그리고 체리색 tv장 위에 놓인 tv가 있었는데, 소파에 앉으려면 티테이블을 티비 쪽으로 밀어야 다리를 내려놓을 수 있을 공간이 나왔다. 티테이블도 체리색이었다...
부엌에는 커다란 화구 1개만 덩그러니 있었다. 냄비와 밥솥이 있어 열어보니, 온통 녹이 슬고 곰팡이가 피어서 도저히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화장실은 구조가 이상해, 변기 때문에 문이 다 열리지 않았다. 샤워 헤드를 보니, 해바라기형 샤워 헤드였는데, 각종 녹과 곰팡이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화장실 바로 옆은 방이었는데, 그나마 방은 낡은 침대와 체리색 옷장 1개가 있어서 방 같아 보였다. 매트리스에 살포시 앉아보니, 삐꺼억 삐꺼억 하는 소리가 났다. 며칠 뒤, 베개 커버를 벗겨내자 베개는 곰팡이 천국이었다...
가관인 건 미니 사이즈의 통돌이 세탁기였는데, 세탁기 모형인가 싶을 정도로 허술하게 생긴 세탁기였다. 세탁기엔 한자만 가득해서 이걸 어찌 써야 하나 싶었다. (며칠 뒤 나는 이 세탁기가 뜨거운 물 빨래가 불가능한, 찬물만 나오는 모델임을 알게 되어 더욱 절망하게 된다.)
정말 타임워프를 해 80년대의 한국 아파트 속으로 걸어 들어온 느낌이었다.
숙소 베란다의 문은 환히 열려있어 열린 문틈으로 가랑비와 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다. 이 문은 언제부터 열려있었을까? 미세먼지가 많을 텐데.
황급히 문을 닫고, 티테이블과 티비 장을 손으로 쓰윽 훑자 손가락이 새까매졌다.
나는 그저 울고 싶었다.
배도 고팠고, 샤워도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물을 틀어도 뜨거운 물은 나오지 않았고, 목이 마른데 마실 물 조차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