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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놀 이종원 Sep 16. 2016

졸지에 베트남 여인의 남편이 된 사연

-인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 타기 직전

졸지에 베트남 여인의 남편이 된 사연

인천공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인이 3살쯤 되는 아이를 업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뭔가 물어보는데 모두들 그냥 지나친다. 내가 다가갔더니 어설픈 한국어로 다급하게 묻는다.

“하노이 가는 비행기 이쪽으로 가는 것 맞아요?”

고속버스터미널도 아닌데 도시 이름을 대니 무척 당황스럽다. 그래서 보딩 패스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게이트 번호가 108번다. 제2청사였다. 그 아래 보딩 시간을 봤더니 탑승시간은 이미 지났고 출발시간 10분 전이었다.

“아줌마.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빨리 가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모녀를 데리고 황급히 셔틀트레인에 몸을 실었다. 다시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는데 이미 5분을 잡아먹었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는 공항 직원이 하노이 승객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여기 아줌마 올라가니 비행기 좀 잡아주세요.” 하고 외쳤더니 비행기가 출발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상황이 다급해지니 아줌마는 안절부절못한다. 

“아줌마. 아이 나한테 주세요. 내가 안고 달릴게요.”


그런데 그 꼬마는 낯선 사람이 자신을 안으니(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마구 울어 재낀다. 이걸 보고 지나가는 사람이 한마디 던진다.

“아빠 말 잘 들어야지.”


난 졸지에 이 베트남 여인의 남편이 되어버렸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남편 역할을 제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아줌마는 아이를 안고 난 보따리 3개를 들고 마구 뛰기 시작했다.

“이런 젠장.” 


하필 108번 게이트는 청사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에 있었다. 상황이 다급하니 입에서 욕부터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빨리 달려가 비행기를 잡아야 했기에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힐끔 돌아보니 베트남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 저 멀리서 헐떡거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게이트 앞에서 가방에 보딩 패스가 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승무원은 가방을 뒤질 수 없다며 한사코 거부한다. 할 수 없이 내가 아줌마 가방을 뒤져 승무원에게 보딩 패스를 보여주고 비행기 문 닫는 것을 막았다. 저 멀리서 헉헉거리며 아줌마가 달려왔다. 

게이트 입구에서 가방을 건네주며 

“아줌마. 비행기 잡아 놓았어요. 베트남 잘 다녀오셔요.”

그제야 난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20대 초반 앳된 얼굴이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연신 고맙다는 말만 연발한다.

“눈물 흘릴 시간이 없으니 빨리 들어가세요.”모녀가 직원 안내로 기내로 들어가니 비행기의 문이 철컥 닫힌다. 


그제야 내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알았다. 3살쯤 된 아이를 보니 아마 이번 고향 행은 최소 5년은 넘은 것 같다.


 왜 그녀가 남편도 없이 어린 딸과 함께 하노이행 비행기에 올랐는지 난 모른다. 어렵게 고향을 가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만약 이 비행기를 놓쳤다면 얼마나 절망 속에 살았을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연을 품고 고향에 갔으면 좋겠는데 설사 그러지 못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한 사람쯤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하노이행 베트남 항공

 저 멀리 하노이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보고 그제야 자리를 떴다. 왜냐하면 난 짧은 시간이나마 그녀의 남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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