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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훈 Sep 20. 2020

신혼여행의 시작,

신혼여행은 한 번뿐이니까. 


   유독 결혼식과 신혼여행에 관심이 많은 나라다. 누가 어디서 결혼식을 하는지,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는 뭘 입었는지, 어떤 업체에서 스냅을 촬영했는지, 어떤 플래너를 끼고 결혼을 진행하는지. 또 어디로 신혼여행을 가는지, 며칠이나 가는지, 얼마나 좋은 숙소에 머물다 오는지. 뭐가 그렇게나 대단한 일이라고, 다들 그렇게 남일에 관심이 많은지. 참 지겹다. 


   라고 결혼 전까지는 생각했었다. 막상 결혼을 할 사람을 만나 결혼식을 준비해보니 남들의 시선은 둘째요 내가 가장 고민하고 내가 가장 극성이었다. 아내가 어떤 웨딩드레스를 입을지, 우리 결혼식장은 어디로 할지, 어디로 신혼여행을 다녀올지 고민하고 결정할 게 수없이 많았고, 고민한 보상을 받으려는 듯 결과물들을 남들에게 자랑하며 말하기 바빴다. 뭐 스튜디오 사진 결과물을 올린다든지, 신혼여행을 어디로 다녀올 거라고 지인들에게 말하고 다닌다든지 등 뻔한 자랑들 말이다. 


   이 글 역시 그 자랑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사회화 과정에서 "나 이거 자랑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그닥 박수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조금 눈치를 보며 의미를 덧붙이려고 한다. 이 글은 우리가 신혼여행을 어떻게 다녀왔는지 단순한 정보를 나누는 글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일정이 변하고 때로는 두려워야 했으며 다투기도 했던 날들에 대한 그리움의 기록이다. 벌써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대상이 되어 기억들이 희미해지니, 훗날 만나게 될 아들 딸들에게 "엄마 아빠 이렇게 여행 다녀왔었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지금에서라도 기록을 남겨야 할 것 같다는 필요 때문에 도출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매우 심각해지기 전, 2월 초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학수고대했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일정을 계획했던 유럽여행을 떠났다. 미리 밝혀두지만 우리가 여행을 떠나던 시점의 유럽은 지금처럼 방역에 실패해 국가적인 혼란을 마주하기 전,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안전한 것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우리 부부가 마주하고 있던 개인적인 상황 역시, 그러한 작은 위험성 정도는 "불구하고"라는 표현에 의존해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보게 하기도 했다. 딱히 변명할 거리도 아니지만 앞으로 나누는 이야기들을 통해 "코로나가 한창일 때 유럽여행 떠났으니 알아서 책임질 일들이지 뭐", "이기적인 부부네"라는 평가와 반응들을 받는 것은 사절이기에 구구절절 말들을 나열해봤다. 


   아무튼. 우리는 영국에서부터 신혼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계획의 변동과 취소를 마주하다 독일에서 여행을 마쳤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 시작부터 끝까지 있었던 일들을 지금의 눈으로 기억하고 추억하며 풀어보려고 한다. 기대할 사람도 없겠지만, 기대하진 마시라. SNS스타들 같은 화려한 풍경은 거의 볼 수 없을 것이고, 맛집 소개는 일절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사진은 좀 찍어왔던 사람인지라, 내 눈으로 바라봤던 유럽의 풍경 일부 정도는 함께 볼 수 있는 통로가 될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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