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th. Issue
강릉으로 이주하고 3년 차를 맞이했던 지난해.
모든 것이 불안했던 그때.
둘이서 여행을 가는 일 조차도
또 다른 걱정을 만들어 내는 일은 아닐까 싶어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2020년의 봄,
세차게 몰아치는 겨울을 보내고
텅텅 비어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숨 좀 쉬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제주도를 다녀왔다.
그저 좀 조용하면 좋겠다.
바다가 예쁘면 좋겠다.
큰 나무가 많은 숲을 종일 걸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어젯밤을 새운 사람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낯선 잠자리에서 일어난 날이었다.
잠이 깬 김에 동네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며 든 생각은
이곳은 어쩌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지,
지금은 좋기만 한데,
막상 이곳에 살아보면 또 다르겠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이제는 작게나마 경험이 있다고
이주와 정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생겼다.
매일 무엇인가 발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바쁘게 약속들을 잡고,
잠시 스쳐갈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그리고 술에 취해 공허하게 잠이 들면
오늘도 나는 열심히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이렇게 한적하고 게으르게 지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일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숲을 걸으며,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눈앞에 보이는 나무가 얼마나 큰지,
지금 걷고 있는 숲이 얼마나 넓은지,
이곳의 공기가 얼마나 좋은지 같은
제주도의 찬양으로 시작해서
지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맡겨두고 온 우리 집 고양이들은 잘 지내고 있을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이
손 쓸 수 없는 걱정거리로 끝이 났다.
우리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묻어 버렸지만
이 고민은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돌아오는 날은 비가 왔다.
아내는 오래전부터 비가 오는 날을 좋아했는데,
길냥이들을 돌보게 된 이후로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우리가,
잠시 집을 떠나서도
비슷한 패턴으로 지내는 것을 보면,
우리는 지금의 사이클에
만족하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 9th.Issu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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