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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05. 2016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 아주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

     

생각은 해볼 수 있으니까. 나른하지만 쉽게 잠은 오지 않는 밤에, 이정도 상상쯤은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름의 가정을 해본다. 아주 진부한 삼류 소설처럼 자고 일어났더니 모두 꿈이었다거나, 어떤 외계 행성의 폭발로 시간축이 비틀렸다든가 해서 우리가 헤어지기 일주일 쯤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얼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사실은 혼자로 지내는 게 편하다는 생각을 너에게 미안할 정도로 자주 한다. 서너 시간이나 혼자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그러다가 문득 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깜짝 놀라고, 거의 동시에 헤어졌음을 실감하고는 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에게 너는 서너 시간에 한 번씩 필요한 존재였다는 생각도 들어서 가끔은 이렇게 괜찮아도 좋은 걸까 미안하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런 와중이다.      


대학에서 치르는 마지막 시험을 하루 앞두고 나는 자취방에서 하루 종일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밥을 시켜먹고 한가롭게 누워서 한량처럼 배도 두드리고 답답한 느낌이 들어 환기를 시키고, 그러면서 하늘도 잠깐 쳐다보고 그랬다. 공부는 손에 안 잡혀서 수업자료를 읽는둥 마는둥 하다가... 부끄러운 얘기지만 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도 한번 훔쳐봤다.

      

나한테 보내는 메시지인가? 너의 프로필 사진이 나는 괜시리 이상하게 느껴졌다. 물어보고 싶지만 나를 전혀 염두하지 않은 것 일수도 있어서 나는 그냥 궁금해 할 뿐이었다. 그냥 궁금해하면서. 너의 마음을 헷갈려하면서. 그래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 다시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자장면 비비다가 반쯤 부러진 나무젓가락 같을 것 같다. 반쯤 부러진 나무젓가락을 조심스럽게 맞추면 얼핏 감쪽같이 복구되는데 그걸로는 자장면을 비빌 수도, 먹을 수도 없다. 금세 지저분하게 절단된 나뭇결을 드러내며 갈라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물어보지 못하겠다.     


잘 지내?     


여기서만 적어보기로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건 이제 싫다. 깨진 도자기를 맞추고 싶지는 않다. 아예 리셋이 가능하다는 가정으로 상상해보고 싶다. 우리가 헤어지기 한참 전인 평범한 날. 평범한 데이트 중 하루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


갈등도 없고, 그냥 서로가 운명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최면같은 연애의 날.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면서 나에게 안기던 네가 있던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네가 약속시간에 한 시간씩이나 늦어도 익살스럽게 웃으며 볼을 꼬집어주고 아무 말 없이 사람들이 쏟아지는 번화가 길거리에서 너를 오 분이나 십 분쯤 안고 있을 것 같다. 아주 느리게 네 볼에 뽀뽀를 하고 니 손등을 들어 내 볼에 비벼볼 것 같다.     


갑자기 왜 이래?     


너는 의아하다는 듯 찌푸리면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오 초안에 피식 웃겠지.

그럼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능청스럽게 네 손을 끌고 어디든 걸어 다닐 것이다. ‘우리 사실 헤어졌다.’ 이런 말은 내뱉고 싶어도 잠시 꾹 참을 거고.     


나를 쳐다보는 너의 눈빛을 보고싶다는 생각. 한없이 차갑게 된 그 눈빛 말고, 한계없이 따뜻하게 나를 덮치던 너의 시선이 그리운 밤이다.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이별을 후회하는 건 아니고, 그걸 돌이키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리우면 그리워하기로 나 혼자 생각했기 때문에 잠시 그리워진 것을 그리워 할 뿐.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는 시간이 나에겐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이별을 극복하려고 한다.     


검정치마의 노래를 듣고 있다. 너에게 내가 사준 앨범이었지. 검정치마 2집. 넌 아마 가끔 그걸 꺼내 들을 거다. 그리고 내 생각도 하겠지. 그러고보니 앨범을 선물하길 잘한 것 같다. 만날 때는 선물이었지만 헤어지고 나면 스위치가 되는 셈이다. 스위치를 켜면 아마 내 생각이 날 거다. 너와 내가 공유하고 있는 스위치 하나 남겨져있다는 거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나만 네 생각에 휘청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어처구니 없게도 조금 억울해진다.

그래서 내가 너에 대해서는 아무렇지도 않아진 몇 년 후의 어느 날 네가 먼지 덮인 그 앨범을 문득 꺼내서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도 새벽 두시쯤에 달빛 비치는 구름 너머를 언뜻 보고 내 생각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때는 하늘을 향해 이렇게 말해줬으면 좋을 것 같다.

오빠 잘 지내?     


그럼 네가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고. 나는 미리 대답해놓으련다.

응.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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