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먹고 토한 날, 그 이후의 일들
폭식증의 무서움
극심한 식이제한의 부작용으로 처음 폭식이 온 날을 기억합니다.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길에 갑자기 꽈배기와 팥 도넛을 파는 가게가 눈이 띄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살찐다고 절대 사지 않았을 음식이지만 그날은 홀린 듯이 꽈배기와 도넛 네 개를 사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버스 맨 뒷자리에서 손에 설탕을 묻혀가며 순식간에 다 먹어치웠습니다.
대중교통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게 예의에 어긋나고 부끄럽다고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었습니다. 도넛을 다 먹은 뒤 저는 당황스러웠어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동안에 어떤 음식을 이렇게 통제력을 잃고 먹은 적이 처음이었고 또 너무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놀람과 두려운 마음을 갖고 집에 도착한 저는 초코파이 한 상자와 아이스크림을 더 먹었고, 너무 두려워져 변기 앞에 앉아 목구멍에 손을 넣었습니다. 토는 거의 나오지 않았고 제어할 수 없이 음식을 찾고 먹는 제 모습에 놀라 심장이 벌렁거렸습니다.
그날의 첫 폭식은 정말 적게 먹은 거였다는 걸 다음날 다다음날 그리고 몇 달 뒤의 폭식을 겪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식욕을 참고 참으면 억눌려있던 식욕은 해일이 되어서 나에게 덮쳐옵니다. 폭식증이 생기고 나서 '뭐에 씐 것 같다' '홀린 것 같다'라는 느낌이 뭔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폭식 욕구가 일어나면 가야 할 정거장까지 가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가 중간에 내리게 됩니다. 내려서 지하철 과자 자판기에서 과자를 사서 먹으면서 지하철 내에 있는 편의점에 갑니다. 편의점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삼각김밥이며 소시지며 온갖 것들을 사서 또 먹고 그걸로 부족해 초조해하면서 아예 역 밖으로 나갑니다. 역 밖에서 또 음식을 사 먹으려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기 보다 먹는 행위 자체를 계속해야 하고 배가 아플 때까지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생전 처음 가는 낯선 동네에 내려서 먹을 것을 사기 위해 헤매고 다닐 때는 눈앞이 흐릿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에는 먹고자 하는 욕구만 머릿속에 울려서 제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조차도 잘 깨닫지 못했지만.
자괴감은 음식을 목 끝까지 채워 놓고 폭식 행동이 끝났을 때 옵니다. 술이 취해있다가 깬 것처럼 정신이 돌아오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생각하고 비참해집니다. 그리고는 다시 토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면서 지하철 역으로 돌아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먹은 것을 한참을 토해냅니다. 정말 정말 비참했습니다. 더러운 지하철 화장실에서 누가 들을까 봐 소리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렇게 비참한대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저는 통제불능의 상태였습니다.
기숙사 화장실에서도, 집 화장실, 마트 화장실에서도 저는 토를 했습니다. 제가 토하는 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화장실을 정리하면서 제 눈은 구토 때문에 충혈되어있었고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화장실을 정리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씻고 귀한 음식을 먹고 토해버렸다는 죄책감을 느끼면서 그렇게 매일매일 일상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적게는 하루에 두세 번 많게는 하루에 일곱 번까지도 폭식과 토를 반복하면서도 저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척 연기를 했어요. 집안에서도 즐거운 척 행동했고 집 밖에서도 여러 개의 동아리 활동과 대외활동을 하고 있었고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항상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다음 이야기 coming soon :)
웃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폭식증을 겪고 치료해나가면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사람들에 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신적인 아픔은 신체적인 질병보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정말 꽁꽁 숨기고 싶어 하면 숨길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괜찮은 척하지만 사실은 정말 아픈 사람들이 많겠구나 생각했어요. 저부터도 그랬고, 항상 보살 같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사실은 우울증 상담을 일 년 동안 다녔다는 고백을 들을 때도 마음이 덜컹했었고. 참 많은 것 같아요 속으로 끙끙 아파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들에게 제가 우연히 다정한 사람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사람들 마음 아픈 걸 제가 다 눈치챌 순 없지만 제가 우연히 다정해서 그 사람들이 잠시나마 편한 숨을 쉬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자주, 다정하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