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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시 May 19. 2016

파도 앞에 선 당신에게

카탈루냐의 바르셀로나에서

바쁜 일정을 끝내고 여유롭게 바르셀로나의 해변가를 찾아왔다. 매섭게 덮쳐오는 파도 소리는 웅장한 해변가를 적시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모래사장의 한복판에 서서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연인들이 나란히 앉아 일광욕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고 또 다른 한편에는 봄의 문턱을 즐기려 나온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한편에서 조개 껍데기를 줍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보았다. 자신을 삼킬듯이 아직은 너무나도 거대한 파도와 나란히 서서 시간의 흐름조차도 잊은듯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소년, 그를 들여다보며 나는 그 안에서 나를 발견했다.


떠올려 보면 어렸을 적 나는 정말이지 조심스럽지 못했던 아이였던 것 같다. 종종 부모님 손을 떠나 여기저기 휘젓고 다녔던 나는 지금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내 멋대로 인생을 사는 건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먼 길을 돌아가게 되더라도 언제나 자신이 가는 길에 의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그 끝에 내가 마주했던 것은 결국에는 종착점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정말이지 미친듯한 속도로 변해가고 있다. 내가 서있을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손에 쥐고 있었던 장난감들은 쓰레기통을 지나 어딘가에서 재활용되었거나 흙 속에 파묻혔을 것이고, 나를 거쳐 갔던 책들은 낡아버린 채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것이다. 파도 앞에 서서 바라보는 세상은 언제나 무능하게 나이만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던 자신에게 뭐라고 한 마디 소리지르고 있는 것 같다. 그 목소리에 담긴 단어들이 무엇일지 고민해볼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던 걸까.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허망한 것들과 내 손에 닿지도 않을 기적 따위를 소원하였던 내 자신은 어느덧 다시 대학교 졸업이라는 또 하나의 종착점을 앞두고 있다. 그 시간 동안 이전의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기를. 그러다가 또 문득 드는 생각은 이것이 종착점이 아닌 정류장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미래에 대해 가정을 사용하며 현실의 불안감을 억지로 덮어버리고자 애쓴다. 이상적인 미래를 설계해가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지만 현실은 우리를 더욱 더 매서운 파도 앞으로 몰아세운다.

카탈루냐의 본산인 바르셀로나에서, 나는 파도 너머의 세상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파도가 내게 외쳤던 단어는 '겁먹지 마'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저 뻔한 길을 걸어가려 하지 않고, 어렸을 적 자신이 꿈꾸었던 허무맹랑한 일에서부터 출발해보는 건 어떨까. 파도 앞에 선 당신에게 한마디를 전해줄 수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작은 돗단배에 올라 보는 건 어떨까 말해주고 싶다. 세계를 항해하기에 커다란 페리는 적절한 여유를 선물해 줄지 모르지만 선장 외에는 그저 끌려가는 무리들에 불과한게 아닌가. 작은 배라도 좋다. 우리는 선장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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