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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 Sep 17. 2023

나도 한다, 새벽 기상

누구에게나 같지만 들여다보면 조금은 다른 더 나은 삶

숱한 실패를 맛본 후, 그럼에도 다시 시작한 새벽 기상. 

검색창에 새벽 기상 혹은 미라클 모닝을 쳐보면 이미 새벽 기상의 장점에 대해 줄줄이 써놓은 글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토록 좋은 것 투성인 새벽 기상을 나는 왜 하지 안 했는가, 못했는가. 그리고 이제 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가.


나는 잠을 좋아한다. 오복 중에 하나라고, 그곳이 울루루 사막 한가운데든 폭풍우가 휘몰아치든 가슴 절절한 이별을 했든 사기를 당했든 베개에 머리를 대는 순간 바로 잠들어버린다. 이렇게 잘 자는 거만 보면 걱정 없이 사는 애라고 볼 수 있겠지만(따지고 보면 그게 맞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속으로 오만가지 잡념과 상념에 사로잡혀 스스로 맘고생 하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잠은 잘잔다. 개인적으로 낮잠보다는 늦잠을 선호한다. 어쨌든 이래나 저래나 잠을 좋아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중이다. 


그런 내가, 수면 시간을 줄여가며 새벽 기상을 시작한 이유는 너무 뻔하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이미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다. 신선 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유지만, 왜 이제 와서 이 네 글자는 나에게 조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걸까. 왜 하필 지금! 


내가 살아온 궤적을 다시 훑어보자면, 전 국민 평균 바이오 리듬에 맞춰 적당히 무난하게 잘 살아왔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평균 오차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그 안에서 남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무던하게 해결해 가며 사는 중이다. 제이가 없었다면 그저 자기합리화하며 이런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며 자조하며 살지도 모르겠다. 단조롭다 느껴질 때면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며 회한 섞인 자기 성찰에 잠시 발을 담갔다가 다시금 원래 삶의 궤도로 돌아올 것이다. 어쩌면 이대로만 차곡차곡 살다 보면 그렇게 나쁘진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에 사로잡혀 살지도 모르겠다. 내가 마흔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불혹을 앞에 두고 있고, 29살엔 느끼지 못했던 어떤 격렬한 위기감과 간절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어쩌면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언의 압박에 못 이겨 현재까지의 내 삶의 평가지를 펼쳐두고 적당한 타협안을 만들어 날치기로 내년 계획안을 통과시키려고 바둥거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전자든 후자든 나는 지금 동동거리고 있고, 30대라면 용인되지 않을까 싶어 적당히 뭉갰던 모든 미숙한, 이 정도면 나쁘지 않지라며 눈감아왔던 정비되지 않은 것들을 도저히 40이라는 숫자 안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지 않은 마음이 굳건해졌다. 그렇게 40, 50을 맞이하면 과거 찰나의 영광(사실 그럴만한 것도 없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사소한 것에도 시간이 지나면 온갖 양념을 쳐대며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니까)에 취해 정면에 자리해야 할 눈을 뒤통수에 갖다 붙여놓을까 염려되 서다. 유일하게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눈인데, 이 마지노선이 뚫리면 모든 게 끝장난다. 절대 지켜.


자, 그래서 나는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 것인가? 명쾌한 답을 내놓으면 속 시원하겠지만,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는 중이다. 사춘기에 종결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이런 자아정체성 탐색을 20대, 30대 그리고 40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끊임없이 고뇌한다. 아직도, 정답을 못 찾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답을 못 찾는 질문인 줄 알았으면, 너무 괴로워하지 말걸 그랬다. 차라리 떡볶이나 한 접시 더 먹고, 더 놀걸 그랬다. 어차피 지금도 이리 헤맬 줄 알았다면. 


어쨌든, 나는 다시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고 이제는 나와 내가 서로 용인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1차 계획안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 가장 쉬운 것. 현재 내 그릇 안에 담긴 재료들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게 나의 목표다. 나는 지금 무얼 할 수 있지? 내가 좋아하는 건 뭐였지? 내가 좋아하는 걸 나는 지속적으로 해왔나? 나중을 위해 좋아하는 마음만 남겨 두고 미뤄뒀던 건 뭐가 있을까? 차곡차곡 목록을 적어나가 지난날 나를 공허하게 했던, 물론 앞으로도 여전히 나를 괴롭힐 테지만 처음 겪어보는 아홉수의 애타는 다짐으로, 흔들리는 아홉수의 애절함으로, 앞으로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조금은 분명해 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새벽 5시에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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