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지속되어 온 낡고 눅눅한 마음이 명치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분노의 양치질을 하며 애써 개운함을 되찾아보려 하지만, 나의 시선은 거울 속 누렇게 뜬 얼굴에 머문다.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모습. '도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야?' 마치 분출되지 못한 부정의 감각들이 잔뜩 욱여넣어져 입술 사이로 새어져 나갈까 봐 노심초사하는 복어 같다. 그럼에도 애써 웃고 있는 모습이 기이하다.
저장 강박이 있는 사람 마냥 온갖 군데에서 받은 불편한 감정들이 내 몸 안에 가득 채워진 것 같다. 있는 줄도 몰랐던 창고에 켜켜이 쌓아 놓고 방치된 것들. 복리로 불어난 해소되지 못한 감정 덩어리들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또다시 웃는다. 빌어먹을 입꼬리를 잡아 내려보아도 파블로프의 개 마냥 절로 올라간다. 누군가에게는 호의일지 모를 이 웃음은 나의 통제를 벗어나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웃음 뒤에 남는 공허함. 적어도 나를 위한 웃음은 아니었던, 습관처럼 미소가 주름 새겨진 내 얼굴이 지독히도 싫었다. 언제나 웃는 여자.
그때 바로 털지 못하고 주저했던 마음을 묻어두는 게 배려라 착각한 채 신나게 좋은 사람인 척하더니 이제야 눈덩이처럼 커진 응어리를 껴안으며 자기 위안에 빠졌다. 치졸한 나는 타인의 감정은 헤아리면서 왜 나의 감정이 온전히 소화되는 시간은 살피지 못했을까.
나의 언어로 번역되지 못하고 방치된 감정들은 거친 파도가 되어 도리어 나를 내리꽂는다.
쿨하지 못하면서 쿨한 척했던 나를 치졸함 앞에 곧추 세운다. 말끔하게 소거하지 못한다면 그 감정이 왜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지 규명하고 풀어주자. 그리하여 나조차 알지 못한 채 깊은 불안 속에 침잠했던 나를 다시 들어 올리자. 오래 걸리더라도 곳곳에 묻은 마음의 때를 외면하지 말자.
다만 나의 주춤거림이 당신을 향한 무관심이 아닐지며 나의 침묵이 무신경이 아니라고. 정제되지 못한 단어가 날뛰지 못하게 뒤늦게 그 감정의 적확한 단어를 찾아 헤매는 중이고, 꽉 막힌 감정의 질감을 이해하려 애쓰는 중이니 나의 대답이 조금 늦더라도 당신의 너그러움을 나에게 권해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