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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Sep 21. 2020

전집을 사지 않는 육아

멀고먼 미니멀라이프 육아의 길..


육아를 하다 보면 또래 엄마들과 자연스레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 아이가 첫돌이 지난 후부터 엄마들의 대화에서 주기적으로, 꽤나 잦은 빈도로 대화 주제에 오르는 게 `전집`이다. 어떤 전집을 샀느냐, 이제 책을 바꿔 줄 때가 됐는데 무엇으로 바꿔 줄 예정이냐. 이제는 자연관찰책을 읽혀야 한다. 자연관찰책은 이게 좋다더라. 돌잡이용 수학과 과학은 어떤 게 있다더라. 전집도 트렌드가 있다. 물려 쓰는 책으로 아이가 만족을 못할 거다….


나 역시 이러한 정보 수집에 목을 맬 때가 있었다. 내 아이가 책을 잘 읽는 아이로 커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아직 책상에 앉혀 놓고 공부를 시킬 나이는 아니지만 아침저녁 읽어주는 책을 통해 자연스레 아이가 숫자와 한글, 각종 지식을 접할 수 있었으면 했다.


독서는 아이들에게 어휘력과 문장력은 물론 상상력과 창의력, 문제해결력, 이해력도 향상시켜준다. 독서의 효과는 말을 하면 입 아플 지경이다. 너무나도 많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어 굳이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부모라면 누구나 내 아이가 책을 사랑하길 원하고, 그래서 열심히 책을 읽어주려 한다. 또래 엄마들과의 대화에서 주기적으로 전집에 대한 정보가 오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터다.


다만 이 부분에서 나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든다. 항상 비슷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독서의 중요성이 늘 전집 구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한 세트에 적게는 20여 권에서 100권에 달하고, 가격은 수십만 원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어가는 전집을 사야만 내 아이가 책을 사랑하게끔 도와주는 부모가 되는 것일까. 연령에 맞게 철마다 전집을 구매해야만 내 아이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걸까. 전집을 사지 않으면 왜인지 내 아이가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한 기분도 든다. 아, 나도 사야 하나.


하지만 이 시점에 나는 내 유년 시절을 떠올려본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많이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책을 너무나도 좋아했던 아이였다(자랑은 아니다, 하하). 하루 종일 책을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책을 손에서 놓기 싫어 수업시간에도 책상 밑에 두고 몰래 꺼내 읽다가 벌을 선 적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엄마가 나한테 전집을 사줬던가? 안타깝게도 나의 집안형편은 세계명작동화전집을 사 줄 만큼 넉넉하지 않았다. 엄마는 가끔 서점에 가서 책 한두 권을 사주고, 도서관 회원증을 끊어주었다. 나는 회원증을 들고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 원하는 책을 빌려 와서 읽었다. 나중에는 사촌오빠가 읽던 전집을 물려받아 전집이 생겼지만, 사실 반도 채 읽지 않았다.


나는 전집 없이도 충분히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했는데 `요즘 것들은 쯧쯧…`이라는 꼰대스러운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이미 꼰대처럼 보였다면 죄송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이미 겪어온 바에 따르면 전집은 장식품에 가까웠다. 꼭 책장에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책들이 열을 맞춰 세워져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뿐만 아니라 이미 대부분의 부모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나는 내 아이에게 때마다 전집을 사 주지 못해 안달할까?

어쩌면 나를 포함한 꽤 많은 부모들이 전집을 구매하면서 마음의 안정 혹은 위안을 얻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책이 빼곡한 책장을 아이에게 선사할(?!) 수 있으면서도 연령에 맞는 책을 일일이 고르는 수고를 덜 수 있으니 말이다. 일단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기본 `준비물`인 책을 갖춰야 하고, 전집 구매를 통해 적어도 그 준비는 마친 셈이 되는 것 아닌가.


영재들이 나오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한 아빠는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갔다. 그는 가서 아이에게 책을 읽히는 게 아니라 도서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한참을 놀다 아이가 배가 고파하면 도서관 매점에 가서 간식을 사 먹였다. 열람실에는 발을 디디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어느덧 도서관에 친숙해졌고, 매점을 가거나 화장실을 가러 도서관 건물 안에 들어가기를 반복하며 자연스레 스스로 열람실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 관심은 책으로도 이어졌다.


독서광이 되어 책을 통해 또래보다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된 이 영재에게 `어떤 전집을 읽었기에 독서광이 되었니`라고 묻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그 친구가 어떻게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가 더욱 궁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아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되려면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가. 적어도 이 고민은 무슨 전집을 사줘야만 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될까라는 고민보다는 나를 포함한 부모들에게 보다 다양한 답을 내 주지 않을까 한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얼마 전 옆 동 친구에게 추천받은 자연관찰 전집을 중고로라도 구매해 볼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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