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된 사랑이 부족합니다
“삑- 환승입니다.”
“삑- 환승입니다.”
“삑 화...환...생입니다? 삑! 삑! 삑! 환생입니다.”
체크기가 크게 울려대자, 버스 안의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쏠리는 시선에 민망해하며 다시 한번 체크기를 찍는데.
“삐이-익. 진실된 사랑의 잔액이 부족합니다.”
‘체크기가 고장 난 걸까, 뭐 환생 이게 무슨 소리야?’
당황한 그녀는 도와달라는 눈빛으로 운전수를 쳐다봤다.
“어이, 아가씨 소리 안 들려요? 잔액이 부족하대잖아. 내려요.”
“아...아니... 제..제가.. 저기...아니...”
부우우~웅.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렸고, 정류장 벤치로 다가갔다. 벽에는 이상한 공지문 한 장이 붙어있었다.
[Fake lover: 진실 된 사랑이 부족한 자는 버스를 탈 수 없습니다. 사막길을 걸어가야 하며,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할 때 까지, 자신에게 부족한 진실 된 사랑을 깨닫지 못할 시 지구로 환생해야 합니다.]
여자는 공고문에 의아한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사랑이 모자라다고? 내가? 아니, 그건 그렇고 지긋지긋한 지구로 다시 돌아가? 와, 나 미친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잠시 고민 했다. 그리곤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을 나서는 일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막길을 걸으며 자신의 생을 돌이켜 보기로 했다.
“내가 사귄 남자만 몇인데, 진실 된 사랑이 모자라? 그 새끼들, 입으로만 사랑한거야? 근데, 어라?”
그녀는 곰곰이 전 남친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그들을 사랑한 건 확실했고, 그들의 사랑이 부족했던걸까 의심했지만 그러기엔 버스 맨 뒷자석에 앉아있던 전 남친이 떠올랐다. 평생 모태 솔로였다가 나를 만난 전 남친, 그에게 유일한 여자친구는 나뿐이었다.
“남녀의 사랑이 부족한 건 아닌 것 같고, 어떤 사랑이 부족한 거지? 아니, 근데 걘 아직도 날 못 잊었나. 뭘 그렇게 날 짠하게 쳐다봐.”
걸음을 옮길 수록 햇빛은 더 뜨겁게 내리쬈다.
“사랑이 아니라, 고통이 부족한 거 아니야, 뭐 이렇게 뜨거워.”
끼이이-익
“엄마! 이거 받아요. 힘내요. 우리 같이 환승해요.”
그녀를 지나치던 버스의 창문에서 얼음물 페트병이 날라 왔다.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작은 체구의 까만 아이가 던진 것이었다. 그녀가 20살이 되던 해부터 NGO를 통해 후원한 남수단의 카만지였다.
“카만지, 넌 환승하구나. 다행이다.”
그녀는 얼음물을 이마에 갖다 대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은 고통에 있지만, 카만지가 지구보다 좋은 곳으로 환승하는 것이 기뻤다.
“어라, 근데 잠깐만...”
그녀는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카만지의 행복을 비는 자신을 보며, 자신이 진정 카만지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남녀 간의 사랑도 아니고, 인류를 위한 사랑도 했는데 대체 어떤 사랑이 부족 한 거야?”
가까이 마지막 정류장의 표지판이 보였다. 앞서간 발자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들 마지막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에게 부족한 사랑을 깨달은 것 같았다. 그녀는 초조해졌다.
“아, 진짜 내가 항상 이렇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죽어서도 똑같아 하...”
“으아악- 쿵”
자신을 책망하느라 잠시 정신을 놓았던 그녀는, 바닥의 돌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하늘의 햇살은 뜨거웠고, 돌에 찢어진 무릎에선 붉은 피가 흘렀다. 얼마나 걸었는지 신발은 다 헤졌고, 이리 저리 까인 발은 퉁퉁 부어있었다.
“하, 내가 못 산다. 변함이 없어. 진짜 싫다. 싫어. 뭐 하나 예쁜 구석이 없잖아. 어딜 가도, 어디에서도, 진짜 난 내가 마음에 안 든다.”
그녀는 짜증이 밀려왔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긴 소매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는데, 그녀의 시선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어?”
뾰족한 것으로 깊게 파인 선명한 일자의 선, 그녀의 왼쪽 손목에 그것이 있었다.
그녀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에게 부족했던 유일한, 진실의 사랑의 종류가 무엇인지 깨달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린 그녀는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나를 사랑 못 했다.”
부우웅-
울고 있는 그녀 앞에 버스가 멈춰섰고, 곧 버스의 문이 열렸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버스의 운전수가 그녀를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얼른 타세요. 부족하다고 깨달은 그 사랑을 이제 시작할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