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고 말해

feat. 지는 안되유

by 한 장

“좋다고 말해! 좋다고 말 안 할 테야? 응?”


“아이구 아씨, 암만해도 지 같은 것들은 이런 거 못 먹어유. 우리 마나님한테 된통 혼나유.”


“아무염녀말고 먹으라구. 개똥이, 너두 안 먹을거니? 그냥 좋다 허고 먹어주면 안 되니?”

어릴 적부터 우리 아기씨는 좀 달랐어요. 뒷산으로 언년이와 저를 끌고 와서, 흰쌀밥을 맥이질 않나, 나으리 나가면 뒷마당에 앉혀놓고 모래바닥에 글자를 가르쳐주질 않나. 덕분에 머슴 주제에 지는 흰쌀밥도 먹어보고 글자도 좀 알았쥬.


“너네도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고 해. 너네는 노비가 아니구, 내 친구야. 신분제도 없어진 마당에 뭔 헛소리니?. 자, 지두 흰쌀밥이 좋아유 해봐”


근디, 그 고운 얼굴에 한 번도 좋다고 말 허본 적이 없어요. 지들은 보리밥만 먹어야 허고 또 흰쌀밥이 좋다 허면 아기씨가 굶거든요. 좋다는 말도 없이 겨우 밥을 삼키는 우리를 보면서 아기씨는 섭하다며 입술을 빼죽이곤 했었죠.


지는 사내라, 크면서는 아기씨 얼굴을 별로 본 적이 없어요. 종종 몸종 언년이가 우리 아기씨가 조선 제일 가는 미인이라며 전해주는 소리는 들었죠. 온 동네방네, 사십리 바깥에서도 아기씨랑 연을 맺겠다며 찾아오는디 아기씨는 혼기가 꽉 차도 시집 갈 생각이 없드라고요. 김진사댁 도련님과 혼사가 엎어졌을 때였나. 아기씨가 만주에서 독립 운동 하는 사내를 몰래 만난다는 소문이 동네에 펴졌어요. 그 날, 나으리가 첨으로 아기씨한테 성을 내드라구요. 나으리는 니때매 우리 집안이 다 망한다며 고함을 질렀고, 마나님은 아기씨를 안고 밤새 울었죠.

다음 날, 나으리는 총독부에 갔어요. 그 거시기 총독부 왜놈 장군 아들이 아기씨를 좋아했거든요. 저녁 나절, 나으리는 넋이 나간 얼굴로 혼서를 받아왔어요. 아참, 그 때쯤 온 동네에 우리 아기씨가 만난다는 독립군 사내의 얼굴이 걸렸을 거에요. 아기씨는 며칠을 울더니 결국 시집을 가겠다고 했죠.


아기씨는 가마를 타고 싶다 했어요. 남들은 타고 싶어도 못 타는 자동차를, 왜놈이 그리 준다 해도 가마 없인 시집을 안 간다 했죠. 덕분에 지는 좋았어유. 우리 고운 아기씨 시집가는 길, 가마잡이를 허니까요. 날이 밝고, 가마를 잡고 가는디 좀 이상헌게, 우리 아기씨가, 무슨 소만치로 무겁드라구요. 뒤에 사내놈이 무겁다며 징징대는데, 우리 아기씨 들을까 주둥이 닥치라했죠. 내 말이 뭐가 웃긴지 좌쪽에 가마 잡은 놈은 생긋 웃드라구요. 계집애 같이 곱게 생겨갖곤 앙팡스레 웃는디, 사내놈한테 제 가슴이 벌렁거리드라구유. 저리 고와서 힘은 쓰겠나 싶어, 내 밥을 나눠주는디 한산코 거절했어요. 우리 아기씨 혼사라고, 흰쌀밥이었는디, 무슨 종놈이 흰쌀밥을 거절한디야 했죠.


밥을 먹고 다시 가마를 잡는데, 갑자기 왜놈들이 달려왔어요. 우리 아기씨 마중 왔나 허는데, 총으로 가마를 노리더라구요. 저 쌍놈들이 미쳤나, 가마를 막으려는디 아니 가마에서 아기씨가 아닌 연지곤지를 찍은 독립군 사내가 튀어나오는게 아니겠어유!


연지곤지 사내는 내 좌쪽 가마잡이 손을 잡더니 냅따 뛰었어요. 지는 그 때 알았쥬. 그 앙팡스런 웃음이 우리 아기씨였던걸.


“팡!파앙!”

왜놈들은 총을 쏘고 지는 오줌을 지렸죠. 다른 가마잡이들은 싹 다 도망가는디, 지랑 언년이는 못 도망가겠드라구유. 무섭긴헌데, 우리 아기씨 저 총에 뒤지면 우짜냐 싶어서 왜놈들한테 달려들었어요. 지랑 언년이가 왜놈들한테 맞으니 우리 아기씨가 주춤 거리며 뒤를 돌드라구요. 그 고운 얼굴에 눈물이 고이는데, 그 때 지가 소리쳤죠.


“좋아유! 좋아유!! 좋다구유! 지는 좋아유!!!!!”

왜놈들한테 맞는디 좋드라구요. 지 같은 게 살면서 우리 아기씨 도와보기도 허고 좋드라구요. 옆에 언년이도 뭐가 좋은지 좋다구 소리를 질러 싸는디 왜놈이 총으로 언년이 대가리를 날렸어요. 피는 철철 나는데 언년이는 웃드라구유. 망할 년두 참, 걘 거기서 뒤졌어요.


지유? 지는 다리 하나 나갔어요. 절뚝 거리긴 허는디, 아무 문제 없어요. 덕분에 우리 아기씨가 두 발로 뛰어갔는디. 뭔 문제에유?


뭐 유공자? 훈장이요? 지는 그런 거 받음 안 돼요. 못 받아요. 지는 독립군을 지킨 게 아니라, 우리 아기씨 지킨 거에요. 내 사람 취급해 준 우리 아기씨를. 이런 거 받으면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우리 아기씨 볼 낯짝 없어유. 내가 볼 낯짝이 있어야, 우리 아기씨한테 흰쌀밥도 좀 얻어먹고 허지 않겠어요?. 지 하늘나라에서 흰쌀밥 먹을 수 있게 좀 도와줘요. 우리 아기씨 이야기 다 했으니 인제 퍼뜩 돌아가유. 퍼뜩. 퍼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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