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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Jun 22. 2024

달, 숨어있는 노른자 같은

산책하면서 본 것

덥다. 밤산책이 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집을 나서는데 천국과 지옥의 중간 같은 여름의 후덥지근함이 벌써 감지됐다. 사람은 온도에 크게 영향받는 동물이다. 선선한 공기만 한 줌 있으면 낭만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보사노바 선율이 흘러나오고 잔디밭에 연인들이 누워있는 풍경 같은 건 없지만, 동네 공원을 걷다 보면 여름 축제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서 그린민트페스티벌이 되었다가 재즈페스티벌이 되었다가 K팝 대전이 되었다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하늘도 답답해 보였다. 그러다 달과 눈이 마주쳤다.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401499


꼭 안개에 가리어진 전조등처럼 보였다. 거의 테두리가 지워진 사진 속 불빛보다는 조금 더 선명한 편이었는데, 머릿속에 딱 떠오른 건 계란 노른자였다. 얇은 막 아래 숨어 있는 노른자, 딱히 숨거나 위장할 마음도 없이, 가장 가느다란 바늘로 살짝만 톡 찔러도 노랗게 흘러나올 것 같은 노른자.


그 노른자를 보면서 꼭 흘러나올 것 같은 무언가를 생각했다. 속에서 가볍게 찰랑일 때는 나를 살게 하지만, 제어의 영역을 벗어난 순간부터 나를 괴롭게 하는 것. 이를테면 갈망 같은 것. 


가장 얇은 난각막 아래로 훤히 비칠 때까지 고이고 또 고이는 일은 괴롭고 또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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