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면서 본 것
덥다. 밤산책이 묘미를 잃어가고 있다.
집을 나서는데 천국과 지옥의 중간 같은 여름의 후덥지근함이 벌써 감지됐다. 사람은 온도에 크게 영향받는 동물이다. 선선한 공기만 한 줌 있으면 낭만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보사노바 선율이 흘러나오고 잔디밭에 연인들이 누워있는 풍경 같은 건 없지만, 동네 공원을 걷다 보면 여름 축제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따라서 그린민트페스티벌이 되었다가 재즈페스티벌이 되었다가 K팝 대전이 되었다가.
후덥지근해서 그런지 하늘도 답답해 보였다. 그러다 달과 눈이 마주쳤다.
꼭 안개에 가리어진 전조등처럼 보였다. 거의 테두리가 지워진 사진 속 불빛보다는 조금 더 선명한 편이었는데, 머릿속에 딱 떠오른 건 계란 노른자였다. 얇은 막 아래 숨어 있는 노른자, 딱히 숨거나 위장할 마음도 없이, 가장 가느다란 바늘로 살짝만 톡 찔러도 노랗게 흘러나올 것 같은 노른자.
그 노른자를 보면서 꼭 흘러나올 것 같은 무언가를 생각했다. 속에서 가볍게 찰랑일 때는 나를 살게 하지만, 제어의 영역을 벗어난 순간부터 나를 괴롭게 하는 것. 이를테면 갈망 같은 것.
가장 얇은 난각막 아래로 훤히 비칠 때까지 고이고 또 고이는 일은 괴롭고 또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