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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달래 Jun 05. 2020

이제... 엄마를 이해해요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개학 전에 김천에 가서 쉬다 오겠다며 기차표를 예매하고 이틀 후 신천지와 코로나로 대구경북이 난리가 났다. 지금 안 가면 오래 못 보게 될까 예매 당일까지 쉽사리 기차표를 취소하지 못했다. 결국 기차표를 취소하고 개학도 연기되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가족 생각을 많이 한다. 의도치 않게 생이별 중이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읽은 책이 하필 엄마의 이야기여서 그런 걸까.



 책을 읽으며 줄곧 엄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지금 묻지 않으면 나중에는 까먹고, 낯간지러워서, 쑥스러워서 와 같은 시답잖은 이유로 묻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충동적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다 깨서 전화를 받은 엄마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언제나 나의 건강 상태 체크이다. 내가 먼저 하려 해도 언제나 엄마가 한 발, 아니 세 발은 더 빠르다. 괜히 부끄러워 다른 이야기를 주섬주섬 늘어놓다 어렵사리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엄마의 어렸을 적 꿈은 뭐였냐고.


 엄마는 비몽사몽 중에 답했다. 엄마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시인이 꿈이었다고. 믿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그래서 책도 많이 읽었었노라고 쐐기를 박았다. 28년 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와 나의 공통점을 찾았다는 신기함과 책을 많이 '읽었었다'라는 먼 과거형의 문장이 주는 씁쓸함이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나는 왜 엄마의 꿈에 시인이었다는 말에 그리 놀랐는지, 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는지, 왜 지금껏 궁금해하지 않았는지. 왜 엄마는 과거형의 서술을 해야만 했는지. 내가 알지 못하는 이십대의 엄마는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 하나가 수십 개의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묻지 못했다. 그냥, 내가 궁금한 모든 것을 물으면 어쩐지 엄마와 나 둘 다 울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닮은 얼굴을 하고 교실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을 엄마를 상상한다. 다송이 엄마가 아니라 시인을 꿈꾸던 효주씨를 떠올린다. 진짜 삶을 가진 엄마가 아닌 엄마를 그려본다.



 소설 속 문장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그녀도 아이를 가져서 두려웠을까. 그렇지만 사랑하겠다고 결심했을까. 세계 속에서 분실된 엄마. 그러나 한때는, 누구보다도 선명하고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이 세계에 존재했을...]


2020.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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