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를 사다
새로 들인 침대 위에 엎드려 머리맡의 나무 살로 손을 뻗었다. 청록색 커튼 자락이 손 끝에서 한 번 달싹이더니 손목까지 물빛이 들이찬다. 이제는 붉은 기를 다 잃어버린 손가락으로 가늘게 뻗은 나무 살을 툭툭 건드리다 오래전 개켜놓은 낭만을 헤집어본다. 유감스럽게도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다. 나중에 꺼내 보겠다는 말과 함께 무언가 내려놓았던 기억만이 유난할 뿐 오래도록 남겨 놓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행방이 영 묘연하다.
낭만보다는 기능을 택하는 편이 익숙했다. 이를테면 일전에 썼던 침대나 커튼을 고르는 일이 꼭 그랬다. 짙은 색 커튼을 머리께에 두고 고동색 나무 살이 달린 원목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날을 상상하면서도 살 사이로 웃풍이 스며올 것을 염두에 두어 편평한 헤드가 붙은 침대를 들이고 밝은 색 커튼을 써야 집이 넓어 보인다는 말에 흰 커튼을 달았다. 감각적인 자극을 주는 물건은 마음 한 켠에 외따로 담아두고서 보기에는 그저 그런 대신 제 구실 그 이상을 할 것이라는 기대에 더 많은 지출을 했다. 그렇게 꾸며진 방은 나쁘지 않았지만 늘 모자랐다.
분명 제 방인데도 저보다는 다른 사람의 체향이 짙었다. 어느 날은 옆동네의 아무개가 찾아와 이 곳을 제 방이라고 우긴다면 냉큼 고개를 주억이며 자리를 비켜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난 데 없이 투박한 헤드가 달린 침대는 저가 그곳에 놓일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양 제 자리에 꼭 어울렸다. 이곳에 알맞지 않은 것은 나 하나라는 기시감이 들었다. 자기만의 방은 언제나 저 편에 있었다.
토요일이 되면 물색으로 잠긴 천장 위로 지난날 유보하다 끝내 잃어버리고만 낭만을 그려 본다. 먼젓번의 붓질로 이미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난 환부에 색도 물기도 없는 것을 덧칠하고 또 덧칠하다 보면 맨살이 드러난 검은 자리에 이제는 가까스로 기억하는 얼굴 몇 개가 스친다. 나와 꼭 닮았지만 결단코 내가 아닌, 어쩌면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나의 얼굴들이 만연하다. 가장 처음 잃어버린 나와 그다음 잃어버린 나와 또 그다음 잃어버린 나. 나는 무엇을 유기하였기에 저것이 되지 못했는지 골몰하면 자주 숨이 가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