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사다
초침이 유독 빠르게 움직이는 낮이 있다. 나는 턱을 괴기에 적당한 테이블에 기대앉아 비스듬히 몸을 말았고 그는 자세를 여러 번 고치다 금방 척추를 세웠다. 날이 흐리던가. 구름이 높던가. 창 밖의 어수선함이 물러난다. 오가는 말소리가 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주파수에 안착하면 지나오고 지나가고 있는, 지나갈 수도 있었던 시간이 테이블 위로 양껏 쏟아졌다가 몸 안 쪽 구석으로 사라진다. 살갗에 닿는 기운이 제법 차가워지고 나서야 해가 기운 것을 알아챘다. 다 식은 커피로 마른 목을 달랬다. 절기는 추분을 지난 지 오래였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를 어느 계절의 초입에서 한여름의 장단을 오래 그리워했다.
며칠 전 10년 가까이 만나지 않은 친구와 돌연 식사 약속을 잡았다. 이쪽으로 온다는 메시지를 꽤 오래 들여다보았다. 몇 년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으레 그렇듯 얼굴 한 번 보자는 식으로 성사되지는 않았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에 담긴 진정성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일이 기대를 품을 만큼 순수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이 쓰였다. 정말로 오느냐고 묻고서 일정을 조율하기까지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커피를 나눴다.
검은 물이 주는 경미한 낭만과 여유가 조금씩 몸집을 불리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외력이 늘었다는 이야기다. 얼굴 한 번 보자는 말이 정말로 얼굴 한 번 보는 일이 되기까지 세상 거사를 죄다 독점한 듯 살았다. 저라고 달랐을까.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이는 어깨 위의 하중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식어빠진 커피를 들이키며 세상 사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변을 토하는 나를 두고 그는 눈썹을 구기며 웃었다. 신 맛 하나 없는 미적지근한 커피는 정말이지 형편 없었다. 그 형편 없음을 두고 우리는 또 한 번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