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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형 Feb 11. 2022

허무주의자의 편지

생일 선물을 샀다


  네 선물을 고르는 동안 믿을 수 없이 즐거웠어. 나는 엿볼 수 없는 너의 시간들을 상상해보았거든. 부리나케 출근 준비를 하다가도 들숨 한 번에 불현듯 네가 들려준 말소리들이 날아와 곯은 허기가 가셨어. 이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워. 당장 옆에 없어도 너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정황이 내게 있다는 게, 또 그것이 제 쓰임을 다할 만큼 충분하다는 게 이상하리만큼 신기하고 위로가 됐어.

  사실 정말 이상한 것은 그럼에도 나는 너를 잘 알지 못한다는 거야. 이 말에 네가 서운해할까 싶다가도 여전히 너에 관해서는 알지만 너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그런 거. 모든 인간사의 비극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곤 하는데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음절 하나하나마다 힘이 실려. 그러니까 진위를 가릴 재주가 인간에게는 도무지 없는 거지. 그냥 믿는 수밖에. 끌어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힘껏 당겨 안을 수밖에 없는 거야. 어쩌면 품 안은 텅 비어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냥 팔만 부여잡고 있는 걸지도.

  그런 의미에서 너의 생일은 나에게도 축복이었어. 내 양팔 안 쪽에서 물성이 있는 마음이 반짝이는 걸 오늘 보았거든. 확언할 수는 없지만 투명하지 않은 어떤 것을 말이야. 너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여러 번에 걸쳐 내게 전해 왔겠지. 이 반짝임에 살을 붙여 네게 보내. 삶이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면 비로소 몸을 입은 마음들을 꺼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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