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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06. 2020

남들 앞에서

또 다른 왕비를 위해

 왕비가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고 물을 때마다 그 거울은 "그야 물론, 왕비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백설공주가 7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왕비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 받으려 거울에게 질문을 하지만, 거울은 "왕비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다시 왜 백설공주 얘기냐고? 여자들이 가지는 불행의 또 다른 근원은 육아와 관련이 있어서다. 디즈니가 악당들의 과거를 그려내는 것을 만들었는데, 왕비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결혼 직후까지는 백설공주를 엄마로서 사랑하는 것으로 나온다고 했잖아. 만약 왕비가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했다는 설정으로 바꿨어도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지 않겠다 싶네. 


 브레네 브라운은 TED 강의로 유명한데, 그녀의 <Daring Greatly, 마음가면> 이라는 책에서 처음 TED 강의 후 그 동영상을 해킹해서 삭제하고 싶었다고 책에서 고백하기도 했어. 사람들이 뱃살이 나왔다느니, 보톡스나 맞으라는 둥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댓글에 상처를 받았거든. 역시 여자들이 강요당하는 수치심 중 첫 번째는 외모다(그 얘긴 앞에서 - 충분하진 않지만 - 어느 정도 했으니). 흥미롭게도 두 번째는 모성애라고 한다. 미혼의 여자들은 항상 결혼을 왜 안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결혼한 여자들은 왜 아직 아이가 없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이를 하나만 키우면 역시 왜 둘째를 낳지 않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아이가 둘인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요?', 연년생이거나 적다면 '왜 그랬어요? 아이들이 안됐네요.'를, 집 밖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애들은 어떡하고요?', 일하지 않는 엄마들은 '딸에게 모범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같은 질문에 시달리게 되지. 무엇보다도 세상은 여자들에게 완벽해지라고 요구하는데, 단, 완벽해지기 위해 법석을 떨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또 아이러니다. 자연미인이어야 하고, 엄마 노릇이 체질에 맞아야 하고, 타고난 리더이며, 자연스럽게 좋은 엄마이길 강요하면서 당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되,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해서도 안되고, 가족과 직장에 충실하며 완벽한 사람이길 강요하며, 자신감이 넘치는 섹시함을 가지되 학부모 모임에서는 그걸 또 감춰야 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되 히스테리는 절대 금물... 흠... 정말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지.   


 네 엄마도 너를 낳은 이래 단 한순간도 나쁜 엄마라는 자괴감에서 자유로워본 적이 없었을 거야.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고 할머니에게 너를 맡겨두고 직장을 다녀야 했던 순간부터 말이지. 비록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쁜 계집애라고 널 혼내고 통제하려 들었지만 사실은 그게 엄마가 불안해서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널 똑바로 키우지 못할까봐, 나중에 네게 원망을 들을까봐, 혹은 어떻게든 사고가 없기 바라고, 커서 더 많은 기회를 갖게 해주기 위해서 말이다. 어쩌면 모든 엄마들이 불안해하는 것이기도 해.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성격이 급한 것, 모든 걸 알지 못하는 것, 더 맛있는 밥을 해주지 못하는 것, 그냥 엄마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네게 더 많은 걸 원하는 것. 풀타임으로 일을 하는 엄마로서의 미안함도 있었을 거다. 대신에 학원에 돈을 싸다 바쳐 가면서 널 키운 거지. 아무리 흘려들으려고 노력해도 다른 엄마들이 수군거리는 몇 마디는 마음속에 남았겠지. 대한민국 엄마들이 애들 교육에 대해서 한탄을 하자면 끝이 없을 거야. 세상에 나와있는 수많은 교육 관련 이론들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도 컸다. 그게 엄마나 아빠에게 죄의식이나 한으로 남지 않길 바래. 그러려면 사실 네가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야 그간의 불안감을 덜어 낼텐데 말이야. 


 모성 혹은 부성에 관한, 즉 자녀를 매개로 한 공격에 어른들은 약하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참 간사해. 처음엔 그냥 네 존재 자체가 희망이었다가 좀 자라고 보면 욕심이 끼어들게 되고, 아이의 꿈이 아니라 부모의 바람을 투영하며 분재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두려운 순간도 오더라. 우리 딸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면서도 네가 어릴 때 '나중에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했는데, 공부가 그 꿈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위협하면서 공부를 강요하긴 했다. 아빠도 어쩔 수 없는 평범한, 그리고 늘 자녀 교육에 불안해하던 그 시대의 부모 중 한 명이었던 것이지.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다면 남자들이 느끼는 수치심, 즉, '남자다움'에 대한 것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브레네 브라운은 남자들은 뭐가 되든지 간에 잘하지 못하고 실패한다는 것, 그리고 '계집애같이 굴지 말라'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남자들의 모든 규칙은 단 하나의 명령어 "약해지지 마라!"로 요약된다. 직장이나 운동경기, 혹은 작은 게임에서 조차 남자들은 경쟁 속에 놓이고, 뭐든 잘해야 하지. 심지어 집에서는 그게 더 하다. 자신과 가까운 여자들에게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돼. 약한 척은 해도 되지만 진짜로 약해지는 건 절대 안 되는 것이지. 여자들은 남자가 말에서 떨어지느니, 말 위에서 당당하게 죽는 모습을 더 바란다는 구나. 사실이니? 남자들도 기꺼이 취약해져서 진짜 자기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여자들은 그걸 감당하지 못할거야. 진짜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하면 여자들은 모두 달아날 테니까.  


 이제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아직 혼자일 수도 있겠다. 사회생활은 하고 있겠지? 네가 원하던 '그냥 회사원'이 되었든지, 아니면 자영업을 하든, 프리랜서(그냥 gig노동자겠지만)로 있든 말이다. 어쨌거나 넌 사회가 강요하는 여자로서의 취약성을 잘 극복하길 바래. 극복의 첫 단계는 인정하는 것이다. '난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면서 억지로 감추려 들면 더 큰 심리적 압박에 놓이게 될거야. 브레네 브라운은 여자들이 가지는 취약성을 감추기 위한 마음의 갑옷들이 몇 가지 예를 들었는데, 첫 번째로는 '기쁨 차단하기'다. 행복을 느낄 때 최악의 상황을 떠 올리며 스스로 불행해지는 것이지. 뭔가를 성취했을 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을 때 그냥 감사하고 즐겨야 할 텐데 괜히 실패를 떠올리고 불운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쁨을 차단하는 것이지. 두 번째는 '강박적 완벽주의'다. 이게 아마 제일 크지 않을까? 어쨌거나 '괜찮은 것'은 사실 엄청나게 좋은 것이라는 걸 우리가 잊고 산단다. '완벽하다'는 것은 어차피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 못하다고 자신을 채찍질한단다. 괜찮은 것으로도 충분해. 세 번째는 '감정 마비시키기'다. 마비와 중독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술이나 담배, 마약 같은 중독뿐만 아니라 TV나 오락, SNS 다 마찬가지로 네 감정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남들이 강요하는 감정인 것이지. 감정 마비는 다음 날 눈 뜨면 다시 풀려버리고 만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특히 회사와 학교에서 사람들이 가지는 다양한 수치심을 동원한 길들이기가 늘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을 관리하는 한 방편으로 취약성과 수치심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때로는 잘 먹히기는 해, 그 순간은 말이지. 대신에 상대는 그것을 극복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겠지? 스스로의 취약성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취약성을 공격하는 경우도 많다. 구나 본인이 취약한 점이 있다면 감추고 싶어해. 아빠도 그래.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드러내는 게 편한 것도 있지만, 드러내면 회사에서 바보 취급당할까 두렵고, 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혹시 너무 쉽게 받아들일 생각을 하는 거 아냐? 그렇다고 쉽게 포기하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스스로 취약함에서 회복하기 위한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 사실 많은 연습이 필요해. 상처 받지 않는 연습과 상처 주지 않는 연습. 그리고 상처를 빨리 극복하는 연습. 많이 깨져봐야 빨리 회복하기도 해. 결국은 관계 속에 답이 있다.  


 백설공주가 자라서 이제 왕비가 되었을 때, 자신의 거울을 바라보며 눈가의 주름을 걱정하는 순간이 올 거야. 자기 딸들은 조신하게 자라기는커녕 고삐 풀린 망아지 모양으로 뛰어다니겠지. 그리고 주위 다른 왕국의 왕비들이 수근거리기도 하고 말이다. 걱정마라. 다른 왕비들도 다 그렇고, 다른 집 애들도 다 그렇다. 넌 잘하고 있어. 누가 네게 수치심을 주려고 공격한다면 그(녀)가 그것 때문에 스스로 수치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네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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