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16. 2020

괜찮은 남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

혹시, 2015년에 나온 '인턴'(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이라는 영화 기억하니? 아빠가 꽤 좋아하는 영화였다. TV 영화채널에서도 몇 번 상영했는데, 넌 재미없는지 늘 아이폰 들고 유튜브로 도망쳤지. 아빠는 은퇴하면 로버트 드니로처럼 저런 인턴 생활을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어디까지나 영화적 상상이지.  

이 영화를 보면서 아빠의 주목을 끈 재미난 대화가 있었다. 줄스(앤 해서웨이 분)가 엄마한테 잘못 보낸 메일을 삭제하기 위해 남자 직원들을 엄마 집에 보내서 컴퓨터를 탈취하는 소동을 벌이고서, 줄스가 고맙다면서 그들에게 술을 한 잔 사면서 술에 취해서 했던 얘기다. 어떻게 한 세대 만에 잭 니컬슨이나 해리슨 포드 같은 '남자'들이 사라지고 'boy'들만 남겨졌는지, 왜 요즘은 벤(로버트 드니로) 같은 남자가 없냐면서 말이다. 정확한 워딩이 생각이 안 나서 인터넷에서 대본 찾아봤다. 미안, 영어다. 이제 아빠보다 영어를 잘할 테니 상관없겠지. 


<Jules>: Salud! Mmm. Whoo! Boys, what can I say... I'm sorry. I didn't mean to call you "boys". Nobody calls men "men" anymore. Have you noticed? Women went from "girls" to "women" Men went from "men" to "boys"? This is a problem in the big picture. Do you know what I mean?

<Jules>: Yep. Okay. Here's my theory about this. We all grew up during the "Take Your Daughter to Work Day" thing, right? Mmm-hmm. So we were always told we could be anything, do anything. And I think guys got, maybe not left behind, but not quite as nurtured, you know? I mean, like, we were the generation of, "You go, girl." We had Oprah. And I wonder sometimes how guys fit in, you know? They still seem to be trying to figure it out. They're still dressing like little boys. They're still playing video games.

<Jules>: Mmm. Oh, boy. How, in one generation, have men gone from guys like Jack Nicholson and Harrison Ford to... Take Ben, here. A dying breed. You know? Look and learn, boys, because if you ask me, this is what cool is.

<Ben>: Thanks, Ace. You're not gonna drink anymore, right?

<Jules>: Callin' me "Ace"?  That's just super cool, right?


요즘 왜 젊은 남자들 중에 벤 같은 사람이 없는지 줄스가 자기의 이론을 말할 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가 쓴 <소년은 어떻게 사라지는가>를 보니 이해가 되더구나. 


어떤 사람은 이 책을 안티-페미니즘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빠 생각에 그건 아니고, 대신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지나친 일반화와 젠더 평등을 위해 여학생들만을 위한 정책을 고수한 결과들에 대한 반성으로 보인다. 책의 원제도 "The War Against Boys", 즉, 페미니즘의 소년들을 향한 전쟁으로 정한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난 딸 하나를 둔 아빠고, 저자인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는 이름에서 알아보듯이 여자다. 대신 아들을 키우는 엄마지. 입장이 같은 듯 다르다. 최소한 둘 다 극단적인 안티-페미니스트가 될 여지는 상대적으로 작다는 얘기다. 사실 이런 오해를 걱정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페미니즘이 이미 정치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빠가 20년 넘게 일하면서 보니 결혼을 안 한 여자들이 크게 늘었다. 아빠는 가끔 후배 여직원들한테 '괜찮은 여자에 비해 쓸만한 남자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얘기를 하곤 했었다. 그 와중에 더 젊은 여자들이 결혼시장에 계속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한다는 현실도 알려주고 말이지. 근데, 궁금하지 않아? 왜 상대적으로 괜찮은(특히, 학벌이나 경제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적어졌을까? 미국은 그 경향이 더 한가 보더라고. 미국의 경우 1981년을 기점으로 여학생의 대학 학위 비중이 남자를 추월했으며, 조만간 여학생이 60%, 남학생이 40%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4년제 대학을 나온 25~34세 인구 중 여자가 35.7%, 남자가 27.1%다. 인종에 따른 차이는 통계적으로 미미하며 남녀에 따른 차이가 두드러진다고 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학교생활에서 훨씬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많은 교육자가 인정하지만, 이를 심각하게 다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학생 친화적 교육법, 읽기와 쓰기의 의무 수업, 직업 기술, 성별 분리 학급 등은 시류를 거스르는 것으로 취급되고 있으며, 그러한 방법을 시행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대개 그 기세가 꺾이고 만다. 여성 압력 단체들은 여전히 그런 프로젝트들을 가리켜 여학생들의 성과에 대한 “백래시”라고 부르면서 여성들의 보다 큰 진전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의 일부라고 여긴다."  


크리스티나 호프 소머즈의 주장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젠더(성) 평등 교육을 주장하면서라고 한다. 젠더 평등이란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 미국의 학교들은 점점 더 감성을 중시하고 위험을 회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런 흐름은 여학생들에게 잘 맞을지 모르지만 남학생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재미난 예를 들었는데, 학급에서 사막으로 캠핑을 가서 선생님이 필기도구와 공책, 초, 성냥을 나눠주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라'는 주제를 주면, 여학생들은 고분고분 따른다. 반면, 남학생들은 우왕좌왕 하다가 공책을 쌓아 놓고 캠프파이어를 연다. 남학생들이 소시오패스일까? 학교마다 가만히 그리고 조용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선호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소머즈는 이런 일들이 남학생들이 갖고 있는 구조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해법이라는 것이다.  


소녀들과 달리 소년들은 야외에서 위계 구조가 확실한 큰 무리를 이뤄서 노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학교에서 운동장은 없어지고, 술래잡기는 술래의 자존감을 손상시킬 우려가 있어서 없어지고, 경쟁을 하는 스포츠나 놀이는 '수치심의 전당'에 올랐으며, 신체적 접촉을 하는 놀이, 영웅과 악당, 난장판은 소년들이 재미있어 하지만 모두 금지되었단다. 이를 통해 남아들이 상상력이 커지고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배울 기회가 사라졌다. 쉬는 시간은 줄어들고, 작은 사고도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되어 정학처분을 받는다. 여성단체들이 남성성이 초강력 범죄자의 원인이라는 미신을 만들어 내고, 이에 따른 두려움이 극소수의 성폭행이나 폭력사건을 전체 남학생의 성향으로 몰아붙인 것이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10대 소년처럼 굴었다는 이유"로, 미래의 범죄자로 간주하여 작은 일에도 퇴학이나 정학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기준이면 아빠 동창들은 절반 이상이 학폭위에 불려 가 다 정학을 받았을 거야.)  


"건강한 젊은 남성은 육체적 형태의 경쟁적 노력으로 남성다움을 표현한다. 이들은 성숙해가면서 책임을 맡게 되고, 우수함을 얻으려고 애쓰며, 무언가를 달성하고 “성취한다”. 육체적이고 지적인 능력 및 자기 규율을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내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다수의 건강하고 평범한 젊은 남성은 여성을 공격하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성들을 존중하고 친구로 대한다. 불행하게도 남성성 그 자체가 폭력의 원인이라는 말이 무차별적으로 반복되면서 많은 교육자는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교육자들은 대부분의 폭력이 남성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전제 아래 남성이 폭력의 제1원인이라는 주장으로 잘못된 결론을 짓는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남자아이는 범죄자의 원형이다." 


소머즈가 볼 때 하버드대학 여성학과 최초의 교수인 캐럴 길리건이 엉터리 연구로 잘못된 인식을 교육계에 심게 되었고, 남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여성성을 강화하기 위한 감성교육으로 '개조'를 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의 정치화로 언론도 가세하게 되고, 정치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기 싫은 학교들은 남자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필요한 규율과 도덕 교육보다는 공감과 보살핌에 중점을 둔 교육제도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콜롬바인 고등학교 총기사건(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였다. K-마트에서 총기를 구입하고, 교실과 교실을 오가며 자신들을 평소에 무시하고 깔본 모든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하였다. 왕따를 당한 데 대한 분풀이요, 보복이었다.자세한 내용이 알고 싶다면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렴)은 불에 기름을 붓게 되었다. 한마디로 소년들에 대한 전쟁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재발명”함으로써 향상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적 고착은 대답이 될 수 없다. 진정한 자존감은 성취에서 오는 자부심으로부터 나오며 그 성취는 올바른 노력의 결과물이다. 미국의 남자아이들은 구조될 필요가 없다. 이 아이들은 병리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 억눌린 분노로 끓고 있지도, ‘남성성이라는 구속복’ 안에 갇혀 있지도 않다. 미국의 여자아이들은 자신감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으며, 현재 우리의 문화로 인해 침묵당하고 있지도 않다. 도덕적 방황이나 인지적이고 학업적인 부족 등 우리 아이들의 전망을 위협하는 진짜 문제에 관해 치료사들, 사회 개혁론자들, 자존감 강사들은 대답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진정한 해결책을 가로막고 서 있을 뿐이다." 


다양한 연구결과에서 IQ를 비롯한 지적 능력에서 남자들은 표준편차가 큰 반면, 여자들은 작다. 평균적으로 여자들의 능력이 뛰어나지만, 남자들한테는 아주 뛰어난 천재도 있는 반면, 아주 멍청한 남자들도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여자들에 비해 괜찮은 남자 수가 적다. 분명 학생들 중에 수학/과학 분야에서 천재적인 남학생들이 더 많이 출현하는 것을 보면(평균은 역시 여학생이 높다) 최소학 일부 과목에 대해서는 이 논리가 맞아 보이긴 한다. 또 관계와 공감에 강한 여학생과 달리 서사와 역사, 영웅을 좋아하는 남학생들이(그래서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허구'를 더 잘 믿는다) 역사나 정치에 상대적으로 더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그래서 네가 역사를 어려워하나?)   


"“남성들은 필요한가?” 그렇다. 필요하다. […] 성별은 동등하지만 그 동등함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한다. 남녀 간에 잘 알려진 상호 보완성이 있다. 서로를 필요로 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이 간단한 진실을 잊을 수 있단 말인가? […] 남녀 어느 쪽도 ‘재활’되거나 ‘구조’될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이든 ‘재발명’될 필요도 없다. 할 필요가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대신 필요하고 가능한 힘든 임무에 헌신해야 한다." 


남자들을 잘 가르치는 것은 분명 여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들을 잠재적 성범죄자 내지는 폭력범으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에너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고, 사회에 대한 정의와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동물(본능적 폭력성과 번식에 대한 욕구 측면에서 말이다.)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규율과 윤리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아빠가 젊었을 때는 존 그레이가 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두고 얘기하면서 남녀의 다름을 얘기했었는데,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이 다름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성차별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분명한가 보다. 다르다는 것과 차별하는 것은 또 다른 것인데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논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남자와 여자는 다른가'다.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지만, 기회의 평등이 꼭 기계적 균등은 아니지 않을까?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다면, 현재 남녀 동일한(어쩌면 여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일부 돌려놓든지, 사춘기의 남자아이들을 분리해서, 즉 성별 전형을 받아들여 남녀공학을 대폭 줄이고 분리 수업을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 한편, 소머즈의 주장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않된다. 그녀 말대로 남학생들을 교육한다면 전체주의 내지는 국가주의 성향의 남자들을 대량으로 양산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즉, 아빠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처럼 남자들은 늘 육체적으로 경쟁하고, 선생들은 학생들을 억압과 통제(가끔은 물리적인) 속에 정신교육을 강화하면서 가르쳐야 한다고 오도할 위험성도 있다. 저자는 공화당 지지자다. 즉, 보수우파에 속하지. 반면 젠더 평등과 페미니즘은 민주당 또는 진보 친화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또, 소머즈는 스치듯 언급했지만, 남자 중에도 분명히 여성성이 강한 사람이 있고, 여성 중에도 남성성이 두드러진 사람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오히려 남녀 공학은 훨씬 더 좋은 기회가 되는 것도 분명하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사회현실에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여성의 기회를 분명히 제한하고 있는가'도 살펴봐야 한다. 고임금 일자리에 남자가 많은 것은 분명하다. 이 부분에서 소머즈는 현실적으로 남녀가 동일 성과(동일 노동 말고...)에 임금차별이 있다면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을 더 고용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다양한 이유로 남자의 성과가 높은 점을 암시한다. 즉, 남녀 임금격차는 성과격차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빠 생각에는 남녀의 성과 차이 원인 중 일부는, 아니 상당 부분은 분명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남자들의 암묵적 카르텔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남자들의 뛰어난 성과는 주로 남자들끼리 술을 마시며 끈끈한 관계(일단, 형님-동생은 기본이다)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자기분야에 확신을 가지고 훌륭한 리더로 활약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역시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참 잘하는 것 같다.  

 

왜곡된 급진 페미니즘의 개입은 분명 경계가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페미니즘의 성과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미국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갈길이 멀다. 우리 사회가 학교에서는 실컷 젠더 평등을 가르쳐 놓고, 막상 사회에 나오면 다시 차별이 시작된다. 여전히 육아는 여자의 몫이 큰 것으로 간주한다. 미모에 대한 수치심을 자극하고 여성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드라마에서 여자들은 여전히 남자의 영향력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영화에서 세상을 구하는 역할의 중심은 여전히 남자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사회에서,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더 애들은 많이 배운다. 교육만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좀 더 달라져야 한다. 어디서나 역시 균형감이 중요하다.


우리 딸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제대로 된 남자 어른을 만날 확률이 낮아질까? 그런 고민보다 너를 우선 괜찮은 어른으로 키워야 하는데, 쉽지 않다. 누구나 자기 자식이 제일 어렵다. 어차피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는 아무도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겠지? 그래, 그럼 괜찮은 남자가 적은 게 뭐가 중요하겠니. 어쨌거나, 혼자 살든, 결혼해서 남자애를 키우든 주위 절반은 남자다. 이 문제를 잘 고민해봐. 



이전 03화 남들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