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05. 2020

거울 앞에서

백설공주를 위해

 왕비가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고 물을 때마다 그 거울은 "그야 물론, 왕비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곤 했다. 백설공주가 7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왕비는 여느 때처럼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 받으려 거울에게 질문을 하지만, 거울은 "왕비님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설공주가 더 아름답습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래. 너도 알다시피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지. 독일의 그림형제(Brüder Grimm)가 1812년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집>에 수록한 이야기이다. 어릴 때는 몰랐는데, 그림형제는 지금 읽으면 섬뜩한 이야기를 참 많이 썼어. 왕비의 질투가 겨우 7살 딸을 향했다니 말이 되니? 그리고 왕자가 7살짜리 어린 여자애를 보고 아름다움에 이끌려 키스를 했다니 사체 간음을 넘어 유아 성추행죄도 추가되지 않나? 그래서 디즈니는 만화로 만들 때 백설공주 나이를 14살로 올려놓기는 했지. 그래도 여전히 너무 어리지? 어쩌면 그림형제가 처음 동화를 썼을 때도 17살인데 앞에 1이 지워졌던 것이길 바래. 그래야 결혼도 말이 되지. 디즈니는 왕비가 죽는 것도 달군 쇠로 만든 신발을 신게 한 후 죽을 때까지 춤을 추도록 하는 벌을 내렸다는 것을 그냥 번개를 맞고 떨어져 죽는 것으로 바꿨다. 어린 동심을 파괴하면 안 되니까. 재미난 건 디즈니가 악당들의 과거를 그려내는 것을 만들었는데, 왕비에 대해서는 놀랍게도 결혼 직후까지는 백설공주를 엄마로서 사랑하는 것으로 나와. 그러나 왕이 사망하고 세 마녀의 꼬임에 넘어가 점점 타락한다는 설정이지. 왕비가 왜 그리 거울에 집착했던가도 그렸다. 여왕은 왕국에서 소문난 거울 장인의 딸이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출생과 동시에 아내가 사망해, 딸인 여왕에게 자신이 사망할 때까지 폭언을 퍼붓는다. 매일 '너는 늙고 못생겼다.'고 저주를 한 것이지. 어느 날 왕의 친척인 세 마녀가 거울에 대한 비밀을 말해주지. 거울에 있는 영혼은 바로 여왕의 아버지라는 것. 소원을 빌미로 거울에 갇힌 아버지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던 여왕은 거울에 중독되고, 백설공주를 죽이려다 자멸했다는 설정이다. 


 예쁜 우리 딸. 이렇게 말하면 넌 '그건 아빠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라고 늘 의심했지. 다소 합리적인 의심이긴 했다. 그래도 넌 '예쁜 우리 딸'이다. 네가 중학생이 되면서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더니 중2 올라가서는 더욱더 외모에 관심이 깊어지고, 화장과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래서 화가 난 엄마는 '라떼는~'을 달고 살게 되고 말이야. 이제 서른인 지금은 어떠니? 여전히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니? 


 아빠는 나름 딸을 키우며 젠더에 대한 교육을 세심히 하고 싶었지만, 사실상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군. 성 역할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하려고 했지만,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엄마로부터 듣는 여성스러움에 대한 교육(모든 엄마가 딸에게 전할 수밖에 없는 섹시함과 관련한 끔찍한 교훈들과 함께 말이지), 친구들과 생활하며(특히, '예쁘다'는 것이 학교 교육현장에서 어떻게 대접받는지를 보면서 말이다) 강화되는 편견은 이미 굳어져 있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가 한마디 던지면 돌아오는 말이 곱지 않았지. T.T


 남자들에게도 외모에 대한 압박이 일부 존재하지만, 여자들이 겪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여자라 하더라도 외모가 떨어진다고 공격을 받기 마련이고, 이러한 공격은 물론, 남성이 주도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오히려 여자들에 의해서, 시기심 혹은 자신이 고통받는 만큼 다른 여자도 고통받길 바라는 마음과 곁들여지며 만들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 여성의 아름다움은 강력한 권력이지만 그러나 그 권력은 비민주적이다. 타고나야 하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그리고 나이 앞에서 항상 소멸하게 마련이다. 반면, 우리 남성은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중후함'이라는 것으로 버텨볼 수 있긴 하지. (물론, 다는 아닌 거 안다) 거울 앞에 선 왕비의 심정이 그런 것이지 않았을까? 점점 늙어가는 자신과 점점 여성으로 성숙해 가는 백설공주을 비교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동화 속의 거울은 분명 남자였다.  

 여자들은 거울(아니, 이제는 스마트폰을 통한 SNS가 마법거울이다) 앞에서 자기를 대상화(언제든지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내면화한다는 뜻이다)와 더불어 스스로 자기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에 나오는 여자들은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아니고, SNS의 수많은 사진들은 편집을 거친 것이고, 수많은 사진 중에 나름 잘 나온 것만 올린 것임을 알지만, 그것을 기준으로 자신을 계속 모니터링한다(이 지점에 이르러서 넌 아빠에게 쌍꺼풀 수술과 함께 더 좋은 카메라 성능의 모바일폰을 요구했었지). 이를 통해 생기는 자기 수치심, 비만에 대한 문화적 혐오, 미모를 바꾸는 데 소비하는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신적 자산의 소모는 더 말이 필요 없을 정도지 않나? 거기에 더불어 미디어에 의해 강요되는 비정상적이고 서양, 특히 백인 기준, 단순한 백인이 아니라 하얀 피부와 납작한 배, 풍만하면서도 적당한(?) 크기의 가슴, 쌍꺼풀 있는 큰 눈, 가늘고 긴 팔다리, 찰랑찰랑한 머릿결을 가진 절대 존재할 수 없는 기준을 강요한다. 그게 미디어들의 전략이지. 미디어는 계속적으로 여자들에게 외모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여 그 불안감을 달래 줄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광고에 의해 유지된다는 걸 잊으면 안 돼. SNS의 발달로 24시간 노출되는 외모에 대한 심리적 소비와 완벽한 셀카를 만들기 위한 노력, 마법거울이 '왕비님이 가장 아름답습니다'고 말하는 대신에 SNS의 '좋아요' 숫자로 평가되는 일상들이 너를 지배하지 않길 바란다. 


 <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은 일단, 외모에 대한 얘기를 줄이라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더라. 부정적인 보디 토크, 특히, 노화, 비만, 못생김에 대한 미디어 노출과 대화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지. 여기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더 비참하거든. 그리고 신체에 관해 긍정적인 대화도 오히려 더 외모에 신경을 쓰게 만들 뿐이라는구나. 최소한 여자들끼리는 예쁘다는 사실을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신체와 관련하여 심미적인 기준보다 기능적인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내 팔이 할 수 있는 일, 내 다리가 데려다주는 장소, 내 머리가 해내는 멋진 생각들, 이런 것들이 더 중요함을 우리 딸에게 아빠도 얘기해 주고 싶다. 여자들이 외모에 쓰는 시간과 돈과 신경을 반으로만 줄여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것은 자명하다. 한국의 여자들은 그렇게 신경을 쓰고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면, 외모에 들이는 공을 반으로만 줄여도 엄청날 거야. 그리고 내면의 아름다움(비록, 이것은 남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에 대해 고민하길 바란다. 인간의 가치를 규정하는 수많은 기준들이 있음을 잊지 마라. 러네이 엥겔른은 그러기 위해서 여자들끼리, 거울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스스로 대화의 주제를 바꿔가야 한다고 말해. 특히 어릴 때 엄마가 딸에게 전하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신체의 변화가 시작되는 사춘기 시절, 딸들은 자기 신체가 TV에 나오는 모델들과 다르고, 친구들의 놀림과 칭찬을 받는 순간이 올 텐데, 이때 엄마들이 겪은 미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어떻게 딸들에게 얘기하는 가가 앞으로 살면서 딸들의 외모강박의 강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여자들에게 외모강박을 강요하는 문화는 쉽게 바뀔 것이라 생각 되지는 않는다. 미모가 경쟁력임을 여자들이 더 잘 알고 있거든. 물론, 이는 남성들이 성적 기준으로 만들어 놓은 문화가, 특히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러네이 엥겔른의 방법도 결국은 외모강박을 완전히 벗어 날 수 없지만, 나름 약화시키는 법을 얘기할 뿐이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암컷은 기본적으로 우수한 종의 수컷을 알아보는 
능력과 함께, 유전자를 전달하고자 하는 수컷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신체를 변화시키며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다행히도 인간의 경우 신체적인 조건만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기준도 있기에 아빠처럼 키 작고 배 나와도 짝이 있는 것이겠지? 아니었어? 흠...) 암컷으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한, 또는 원하는 만큼의 성적 욕구를 채우지 못한 수컷들은 늘 공격적이다. 이러한 수컷들 중 비겁한 수컷들이 수컷 알파를 향해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암컷들을 향해 공격을 감행하는 경우들도 있다. 인간사회에서는 이를 성폭력이라 부른다. 불행히도 평균적으로 좋은 여자는 많지만, 좋은 남자는 많지 않아 관계의 불균형이 나타나고, 남자 없이 살 수 있는 여자와 달리(어쩌면 더 잘 살지도...),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수컷들 때문에 성매매가 유지되어 왔었던 것일지도 몰라. 반면, 작은 권력이라도 쥔 수컷들은 자기가 진짜 알파인 줄 알고, 세상 여자들이 자기의 성기 아래 무릎 꿇기를 바라며 섹시함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화되어 온 게 아닐까? 네가 서른 일 때는 변했을까? 요즘 시대 변화의 추세로 봐서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자가 변해야 가능하겠지. 사실, 남자들도 미디어의 희생양이다. 생물학적으로 날씬한 팔다리와 가는 허리가 유전자의 전달에 유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더 섹시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미디어 탓이 크다. 얼마 전 홍현희라는 통통한 개그맨이 예능프로에 나와서 콩고에서는 자기가 전지현급이라고 하더라. (둘 다 누군지 기억 안 난다고? 아, 기억나지만 그래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아님 콩고를 무시하지 말라고? 흠... 뭔지 모르지만 미안하다.) 

 그래서... 여전히 네게 뭐라 얘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때 너의 신체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더 집중하라고 얘기했었지만 전혀 감흥이 없었다는 것도 기억한다.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적당한 비용을 들여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치료할 수 있다면 하지 마라고 할 수는 없을 거야. 그래도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을 줄이길 바란다. 동화 속의 왕비도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을 줄였다면 정치를 더 잘했을지도 몰라. 어쩌면 정치를 잘했는데, 남자들이 미녀 꼭두각시를 앉히려고 부린 수작 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네가 백설공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왕비가 된다. 거울의 평가에 기대지 마라. 



이전 01화 프롤로그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