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르디우스의 매듭 Feb 27. 2020

프롤로그 -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사랑하는(나중에라도 이 말을 절대로 의심치 마라) 우리 딸. 우리가 영화 <인터스텔라 Interstellar>를 같이 본 게 2014년 겨울이니까... 네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나 보다. 아빠한테는 아주 재미난 영화였지. 넌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뭔지는 잘 몰라도 아빠가 좋아하니까 나란히 앉아서 네 나이에 쏟을 수 있는 최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봤다고 기억한다. 고마웠어.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보렴. 우주에 관한 현재까지의 주류 이론들을 나름 잘 녹여낸 '유니버스 어드벤처 로드 무비'라고 할 수 있다.   


 서문을 이 영화 이름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아빠 노릇 참 힘들다는 불만이지. 이 영화 전에 우리가 같이 봤던 영화가 <2012>를 비롯해서 몇가지 있었지? 그 외 여러 편의 영화들이 있었지만, 할리우드의 감독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꼭 그렇게 그렸어야 했을까 싶었다.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있거나, 기막힌 운전 실력과 위기 대처능력이 있거나, 어떤 영화에서는 싸움을 아주 잘해서 가족들을 지켜내곤 했지.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아예 우주로 날아가서 시공을 넘어 딸이 살고 있는 지구를 구해낸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다행이라 생각하자. 남자들은 아마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분명 가족을 위해서 보다는 엉뚱한 데 썼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았을까?) 아빠는(말 안 해도 잘 알겠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단언컨대, 세상 아빠들의 99.9999%는 모두 그런 사람들이 아니란다. 두 번째는, 그 영화의 스토리 때문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블랙홀 속에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 시공을 뛰어넘어 딸이 풀지 못한 수식을 모르스 코드로 전달하는 장면을 기억하니? 그래서 이 글을 쓴단다. 이 글들은 미래의 딸에게 보내는 아빠의 모르스 코드란다. 

 아빠는 이 글을 우리 딸이 서른이 되었을 때 읽었으면 좋겠다(얍! 시공을 뛰어 넘어서 말이야). 사실 오래전부터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넌 들을 생각이 없더구나.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공부를 열심히 하느라 시간이 더 없지? 아빠와의 대화보다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도 SNS와 유튜브의 동영상이 더 재미있으니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아빠가 네 잘못을 지적하거나 조금만 충고를 해도 금방 '아, 좀, 내가 알아서 할게',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할 때마다 화가 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해. 네가 진짜 서른이 되었을 때, 가능성은 낮지만(그래, 절대로 낮을거야), 아빠는 환갑을 넘어 완벽한 꼰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고, 네가 먼 나라에서 일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우리가 가족이 아닐 수도 있고(여보, 농담인 거 알지?),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 영화 때문에 아빠가 살면서 읽고 느끼고 배웠던 작은 팁들을 같이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네게 전하고 싶었다. 아빠에게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차원의 벽을 넘는 웜홀은 이렇게 글로 남기는 거란다. 사실 오래전부터 마음먹었지만 시작을 몇 년을 미뤘는지 모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마흔 후반을 지나고 있는 아빠가 서른의 딸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것들을 전해야겠어. 

 

 이 글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게 있긴 하다. 우선, 아빠가 하는 말을 다 믿지는 마. 이건 아빠의 의견이고, 책을 인용한다면 그 저자의 의견일 뿐이야. 또, 나중에 인류가 발견한 새로운 이론과 과학적 근거들이 나타나 네가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볼 때 몇몇 장면이 오류가 있거나 거짓이 될 수도 있을거야. 마찬가지로 아빠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 새롭게 밝혀진 이론과 의견들이 나오면서 낡은 얘기가 될 수도 있을거야. 아니, 꼭 그런 것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래도 무조건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리다'고 하지 말고, 그때는 왜 맞았을까를 고민 한 번 해줘.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인류를 구원할 그런 코드를 네게 넘겨줄 수는 없단다. 그런 건 아빠도 몰라. 아빠가 남은 인생을 다 쏟아부어도 그걸 찾아낼 수는 없을거야. 그냥 내가 남기는 글이 네가 살아가면서 어쩌면 궁금해 할 수도 있는 것들, 그리고 네가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들, 때로는 작은 위로가, 가끔은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얘기였으면 좋겠다.  


 물리학에서 A지점과 B지점 사이를 우리는 '거리'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A시점과 B시점 사이의 거리를 '시간'이라 부르지. 그런 면에서 거리와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물리량이라 할 수 있어. 3차원을 사는 우리는 거리의 이동이 가능하듯이 시간의 이동을 인류에게 가능하게 만든 것은 문자였단다. 시간의 물리량을 넘어 지식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지. 지금 우리 둘의 생각은 행성 간의 거리만큼 크게 차이가 나기도 할거야. 우리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대화를 하고 싶지만 시간을 뛰어 넘어야 가능한 일이겠지? 그래, 이제 아빠와 딸의 진짜 인터스텔라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