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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제이비 Nov 27. 2023

결핍이 동력이 될 수 있다

마흔의 사춘기

나는 30대 낮은 자존감을 메우기 위해 돈을 선택했다. 20대 때 돈 없는 거로 치자면 누구와 경쟁해서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대학교 다닐때 학식에서 2500원짜리 라면 먹을 돈이 없어 머뭇거릴때 식당 앞에서 부자였던 내 친구가 나한테 나한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거의 마리앙투아네트가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라고 했던 것 같은....


"돈이 없으면 엄마한테 달라고해"



그 당시 엄마는 대학교 1학년인 나에게 "혹시 친구한테 20만원만 꿔올 수 없니" 전화를 해대고, 집에선 싱크대가 고장나 물이 새는데 고칠 돈이 없어 설저기를 베란다에서 하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나를 잠에서 깨우는 소리는 예쁜 새소리도 좋은 음악의 알람도 아닌 돈 때문에 싸우는 엄마아빠의 싸우는 소리였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엄마는 그렇게 밤낮으로 웅진코웨이 코디일을 하고, 또 책도 팔고 밤낮 가리지 않고 돈을 버렸다. 나도 학원강사 과외 닥치는대로 일을 하며 집에 돈을 가져다 부어댔지만 새는 항아리에 물붓기였다.


엄마는 친척들한테 그렇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늘 거절을 당하고 내앞에서 울었다. 어떻게 언니가 그럴 수 있냐며, 어떻게 남동생이 그럴 수 있냐며,


그렇게 친척들의 무시를 당하며 청소년기와 20대를 보낸 나는 자존감이 낮아질대로 낮아졌고, 어디서 싸우는 소리만 나도 불안해 했고 나는 늘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0대 초반 가진 거 하나 없는 나는 당시 꿈이 하나 생겼다. "저 망할놈의 친척들이 놀랄만큼 좋은 직장을 갖자" 이름만 들으면 "거길 들어갔다고?" 할만큼 좋은 회사를 들어가자 그럼 저 친척들이 우리집을 무시하지 못하겠지.  우리 엄마 아빠를 무시하지 못하겠지.


그 생각하나로 대기업을 들어갔다.




그런데 그 자존감이라는게 대기업을 들어가도 메워지지가 않는거다.


누구는 외교관의 딸, 오빠는 미국 변호사, 누구는 영국 옥스포드 대학출신, 또 내 윗사람은 서울대, 또 내 아랫사람은 그룹 임원딸에 부자. 하수구 같은 곳에서  기어나와 기껏 회사 다운 회사로 들어왔더니 또 잘 사는 사람들 수백 수천명이 날 기다리고 있는거다.

 그래서 또 이번에는 돈을 선택했다. 돈.


S그룹에 들어가고 내가 얻은 신혼집은 1,500만원에 월세 60만원 오피스텔이었다. 그 1,500 만원 조차도 은행 빚을내 들어간 신혼집이었다.


"그래 이번엔 돈이다. 돈을 벌면 '늘 나는 못났다'고 생각하는 이 자존감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그래서 정말 5년간 돈생각만 했다. 남편과 수백만원 주고 강의를 듣고 경매를 배우고 집을 10채를 사고 팔고 지분경매도 하고, 책을 읽어댔다. 소위 갭투자라고 하는 전세끼고 집도 사고 내집도 샀다.


돈도 없다고 해놓고 어디서 돈이 나서 집을 샀냐고 묻는 다면 이 모든 시작은 내 마이너스통장 - 4000만원으로 한거다. 그게 불어 불어 5년~6년 지난 지금, 구축이지만 서울에 한강뷰 아파트를 살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돈도 내 자존감을 채워주지 못했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채워줬다. 속물 처럼 느껴지겠지만



돈은. 집들은. 재산은 내 자존감을 나에게 안정감을 드디어 안겨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돈 때문에 생겼던 설움과 무너진 자존감이었기에 약간의 돈을 모으니 그 모든 것이 보상받듯 낮은 자존감이 치유된 것 같다.


더 애초로 돌아가서 돈이 있건 없건 내가 낮은 자존감 없이 구김살 없이 살 수 있었던 행복한 가정과 성격이었다면 너무나 좋았겠지만, 나는 잘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지만 한편으로 굉장히 부정적인 감정이 머리에 세팅되되어있는 사람이기에, 나에게는 돈돈돈 거리는 이 모든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다. 살기 위한.




결핍은, 욕심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동력이 될 수 있다. 결핍은 동력이 될 수 있고, 사십춘기를 겪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가졌던 그 결핍이 나빳던 것 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40이 된 지금 나는 또 행복을 향한 다른 결핍 아니, 이젠 꿈이 생겼고, 그 선택지 앞에서 또한번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길 또 바래본다.


 

우리집 뷰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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