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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제이비 Feb 11. 2020

다른사람 말에서 자유로워지기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관련된 기사를 보면 '댓글'이 아주 재미납니다. 그걸 보노라면 시간이 아주 잘 갑니다. 얼마 전, 미국이 중국 우한에 있는 미국인들을 전세기를 띄워 데려온다는 기사가 났을 때, 모든 댓글은 '대한민국의 욕' 었어요. 미국은 선진국이고 우리는 개한민국이라느니, 대통령에 대한 비난이 난무했죠. 그런데 막상 대한민국 정부도 우한 교민을 데려 온다는 기사가 뜨니, 또 댓글에는 바이러스 덩어리를 데리고 온다느니, 그 세금은 누가 내냐느니. 사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막말은 아무 책임 없이 누군가를 향하기도 하고요.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사람들은 '책임도 안질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함부로 할까? 평가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고, 남의 인생인데 옳다 그르다 하면서 말이지요.

혹시 많은 분들의 좋아하는 소설가 목록에 꼭 있는 '김연수 작가님' 이 첫 소설책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를 내을 때, 받은 평가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작가 김연수, 단명의 예감" 이라는 평가였다고 합니다. 김연수 작가의 그 다른 사람의 말들에 연연해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고 소설가를 접었으면 어땠을까요?

하정우씨의 책 <걷는 사람>에서도 나와요. 그가 연출한 <허삼관>이  개봉하고 관객이 들지 않자, 그때 부터 사람들이 너무 의식 되기 시작해서 우울해 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말, 표정, 마음 하나하나가 다 신경이 쓰였고, 바로 이어 그림 '개인전'을 열어야 하는데, 두려움에만 휩싸여 그림을 그렸다고요.

김연수 작가도 자신의 첫 작품에 저런 '소설가로써 단명 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솔직히 얼마나 신경이 쓰였을까요? 엄청 단단해 보이는 하정우씨도 첫 연출 영화의 흥행 실패 후 그렇게까지 남들을 신경 쓴 것을 보면, 누군가의 말과 평가를 생각 안하고 산다는 건 물론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늘 '알아차리려고' 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려 합니다.
'남의 평가, 남의 생각 = 말 그대로 남일 뿐이다'

초반에도 이야기 했지만 사람은 원래 남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걸 좋아하죠. (저를 포함하지요), 그런데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아무도 책임을 안져요. 그 '책임 없는 이야기'는 공중에 떠다닙니다. 그런데! 그 가치 없는 이야기에 내가 좌지우지 된다는건, 그 주인없는 책임을 본인이 굳이 낚아서 이고 지고 있는 셈이에요. 스스로 괴로워 지는 지름길입니다. 왜 말은 남이 하고 책임은 내가 질까요? 뭔가 억울합니다.


남의 말에 따라가는 그 순간 '나'는 없어지게 되지요. 그래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하정우씨도 <허삼관> 이후에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신경썼다는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차리고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자꾸 잃어버리지?" 라는 의문을 품고 나서야,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알아차린 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못 받는 신경 쓰지 않고' 이후 그림을 그려 나간 것이었어요. 그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가기로 했다고요. 내 인생도 그림도.


의도 하지 않게 상처를 주는 말들, 좋던 싫던 나오는 타인의 표정들, 우린 이렇게 사람들에 묶여 살기도 하고 인정도 받아가면서 살아가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의미없는 상처에 끄떡 하지 않는 중심을 갖는 힘, 불필요한 말들을 걸러낼 수 있는 힘, 뚜벅 뚜벅 그냥 내가 생각하는 것을 향해 걸어가는 힘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이런 힘들이 제 안에 꽉 찰 때까지 읽고, 쓰고, 나누며 더 튼튼한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 나가야 할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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