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재손금 Oct 05. 2024

불의 왕국

재앙의 서막

불의 나라는 언제나 붉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는 타오르는 불길과 짙은 연기가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대전의 중심, 왕좌에 앉은 자는 불의 왕이었다. 그는 대형화재 그 자체였으며, 그의 눈빛은 언제나 탐욕과 증오로 불타올랐다. 왕의 주위에는 불꽃군단의 장군들과 연기군단의 참모들이 차례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다해 불의 왕을 돕고, 인간들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불의 왕국에서 열리는 회의의 목적은 항상 같았다. 어떻게 하면 인간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인가? 재산뿐만 아니라, 그들의 목숨마저 빼앗는 것이 불의 군단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이번 회의는 그들 모두에게 불안감과 좌절을 안겨주는 자리였다. 최근 작전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좌에 앉아 있던 불의 왕은 불안한 표정으로 눈앞에 서 있는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분노는 뜨겁게 불타올랐고, 모든 신하들은 그의 눈빛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왕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지난번 창고 화재 작전은 어찌 된 것이냐?” 왕의 목소리가 대전의 벽을 울렸다. “엄청난 재산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인간도 죽이지 못하였다 하니! 소방대가 와서 모두 구하여 버렸다더냐! 이게 다 누구의 잘못이냐?”


불의 왕이 말을 마치자, 신하들 사이에 긴장감이 퍼졌다. 불꽃군단의 장군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고, 연기군단의 참모들 역시 침묵을 지켰다. 누구도 왕의 분노를 직접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불꽃 장군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연기군단 참모를 지목했다. “전하, 이는 연기군단의 소홀함이었사옵니다. 유독가스를 널리 퍼뜨리지 못하여 인명 피해를 내지 못한 것이옵니다.”


연기 참모는 즉각 반박하며 말했다. “그리 말씀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불꽃군단이 불을 크게 일으키지 못하였사옵니다. 저희가 아무리 연기를 퍼뜨린들, 불길이 크지 않으면 소용이 없사옵니다!”


두 신하는 서로를 향해 책임을 떠넘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언성이 높아지자 대전 안은 혼란스러워졌다. 한쪽에서는 불이 너무 약했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연기가 충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왕의 신하들은 서로 비난하기에 바빴고, 그 모습을 보며 불의 왕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을 튕기며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킥킥... 인간들처럼 너희들도 서로 죄를 떠넘기느라 바쁘구나.”


불의 왕은 불꽃 장군과 연기 참모의 다툼을 잠시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무관심 부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그간 인간들의 안전 불감증을 틈타 화재를 키우는 역할을 해왔다. 왕은 그들에게 묻듯이 말했다. “너희들은 대체 무엇을 하였느냐? 인간들이 그토록 무관심했건만, 왜 더 큰 화재를 내지 못했느냐?”


무관심 부대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전하, 저희는 비상구를 막고 대피로를 차단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최대한 이용하려 하였사오나... 결국 그 소방대가 너무 빨리 와버렸사옵니다. 소방대가 오는 날이면 우리 모두 죽음이니, 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사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몸을 떨었다.


불의 왕은 그 말을 듣자마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킥킥킥... 인간 소방대라... 과연. 그들만이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로구나. 인간들은 어리석으나, 그 소방대만큼은 우리에게 치명적이니.”


불꽃 장군은 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전하, 저도 지난번 소방대를 마주했을 때가 떠오르옵니다. 저희가 불길을 한창 일으키고 있을 때, 그들이 나타나더니 한 방울의 물로 우리를 꺼버렸사옵니다. 참으로 무서운 자들이옵니다. 그들의 물줄기는 마치 저주처럼 우리를 휩쓸었고, 불길이 순식간에 사그라졌사옵니다.”


연기 참모도 두려움에 떨며 덧붙였다. “전하, 그들은 유독가스를 퍼뜨려도 아랑곳하지 않사옵니다. 마스크를 쓰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지나가더이다. 마치 우리를 업신여기는 것처럼 보였사옵니다.”


불의 군단은 이전에도 소방대와 맞붙은 적이 있었다. 특히 그들이 기억하는 사건은 수년 전, 한 대형 건물에서 발생한 대화재였다. 불의 군단은 그곳에서 모든 것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지만, 소방대의 빠른 출동과 치밀한 대응으로 그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 불꽃 장군은 불길을 더욱 거세게 일으키려고 온 힘을 쏟아부었다. 건물의 구조물이 불에 타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사람들은 대피할 수 없었다. 연기군단은 짙은 연기를 퍼뜨리며 사람들의 호흡을 막았고, 모든 것이 그들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 순간, 소방대가 도착했다. 소방대원들은 연기 속을 헤치고 들어와, 유독가스에 쓰러진 사람들을 구출해 냈다. 불의 군단은 소방대의 물줄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었고, 결국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끝났다.


그날 이후, 불의 군단은 소방대를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자신들에게 저항할 수 있는 존재였다. 아무리 큰 화재를 일으키려 해도, 소방대가 나타나면 그들의 계획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불의 왕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불의 왕은 불길한 미소를 지으며 신하들을 내려다보았다. “지하에 있는 다중이용업소, 그곳은 인간들의 욕심과 무관심이 넘쳐흐르느니라. 그 업소의 사장이 안전을 무시하고 돈만을 탐하니, 이번엔 그곳을 이용하여 큰 화를 낼 것이다. 소방대가 오기 전에 끝을 보리라.”


연기 참모가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전하, 그 업소의 사장은 불법 증축을 하였사옵니다. 대피로는 좁아졌고, 소방시설은 일부러 훼손해 두었사옵니다. 특히 스프링클러는 이미 차단되어 먹통입니다 킥킥. 불이 나면 피할 곳이 없을 것이옵니다.”


불의 왕과 신하들은 모두 낄낄대며 웃었다. 그들은 인간의 탐욕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고 있었다. “킥킥킥... 돈을 위해 안전을 팔아넘기다니,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들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였구나!”


무관심 부대장은 더욱 신나서 말을 이었다.  “전하, 그 사장은 소방점검이 끝나면 다시 소방설비를 망가뜨리느니라. 저희에게 방해될 것이 전혀 없사옵니다.”


불의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펼치며 외쳤다. “좋도다! 그곳에서 더 큰 화를 일으키리라. 연기군단은 유독가스를 퍼뜨리고, 불꽃군단은 불길을 더 크게 지피도록 하라. 인간들이 고통받는 그 모습을 즐기도록 하자!”


곧 불의 군단은 지하의 다중이용업소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업소는 외관상 아무 문제 없이 영업을 계속하는 듯 보였지만, 그 속에서는 불법 증축과 안전 불감증이 도사리고 있었다. 업주는 돈벌이에만 눈이 멀어, 스프링클러를 꺼두고 피난구조를 망가뜨리며 더 많은 손님을 받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불의 군단은 은밀하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무더운 여름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었다. 건물 한 구석, 전기 배선이 오래되어 누전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배선 정비를 무시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 그 순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선이 합선되었다.


“찰칵!”


스파크가 일어나며 전선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전기는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져나갔고, 곧 불길이 치솟았다. 작은 불꽃이었지만, 곧바로 다중이용업소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곳의 낡은 구조물들은 불을 더욱 쉽게 키웠다.


연기군단이 먼저 지하층을 점령했다. 그들은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건물 안으로 유독가스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확산되는 연기는 고객들의 호흡을 막고 공포를 심어주었다. 불꽃군단 역시 불길을 퍼뜨리며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었다. 지하 공간에서 불길은 더 빠르게 번져갔고, 엘리베이터와 계단조차 불길에 휩싸였다.


“불이다! 불이야!”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업소 전체에 퍼졌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비상구를 찾아 뛰쳐나갔으나, 비상구는 이미 막혀 있었다. 불법 증축으로 인해 대피로는 좁아져 있었고, 소방시설은 고장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사이 불의 군단은 이 모든 장면을 보며 기뻐하고 있었다. 불꽃군단이 불길을 더 크게 일으켰고, 연기군단은 유독가스를 퍼뜨려 사람들이 숨을 쉴 수 없게 만들었다. 신하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킥킥킥... 인간들아, 더 괴로워하라! 죽음이 너희를 덮칠 것이니!”


불의 왕은 흐뭇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반드시 많은 목숨을 앗아가리라. 소방대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밀쳤다. 혼란 속에서 다치는 자들이 속출했고, 연기는 순식간에 모든 것을 뒤덮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연기 속에서 사람들은 숨을 헐떡였다. 그들의 절망이 불의 왕과 신하들에게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제 끝났다! 인간들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불의 왕이 외쳤다. 그의 신하들 역시 그를 따라 크게 웃으며 불타오르는 건물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 순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소방대가 도착한 것이다. 그들의 빠른 출동에 불의 군단은 한순간 긴장했다.  


“소... 소방대다!” 불꽃 장군이 놀라 소리쳤다. 신하들은 즉시 공포에 휩싸였다. 그들은 이전의 패배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불의 왕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겁먹을 것 없다! 더 큰 불길을 일으켜라! 연기군단, 유독가스를 더욱 짙게 퍼뜨려라!” 불의 왕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느니라!”


하지만 소방대는 이미 현장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염 속으로 뛰어들었다. 소방대원들의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불길을 순식간에 잡았다. 그들이 마주하는 유독가스마저 아무런 두려움 없이 헤쳐 나갔고, 불의 군단이 아무리 저항하려 해도 그들의 빠른 대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불의 왕은 혼란스러워졌다. “안 돼! 저 인간들이 왜 이렇게 빨리 도착한 것이냐! 더 강하게 불을 지피거라!”불꽃 장군과 연기 참모는 안간힘을 다해 불길과 연기를 더욱 거세게 만들려 했지만, 소방대의 물줄기는 그들의 힘을 무력화시켰다. 물이 뿌려지는 곳마다 불길은 사그라졌고, 연기는 흩어졌다. 불의 군단은 점점 힘을 잃고 있었다. “더! 더!..” 불의 왕은 절규하며 외쳤지만, 불길은 차츰 사그라졌다. 소방대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조직적인 대응은 완벽에 가까웠다. 대원들은 대피로가 막힌 상황에서도 창문을 깨뜨리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고, 연기에 휩싸인 사람들을 한 명씩 안전하게 구출해 냈다. 불의 왕이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불길과 연기는 더 이상 소방대의 물줄기와 용맹 앞에 저항할 수 없었다.


“이럴 수가... 이놈의 소방대...!” 불의 왕은 주먹을 쥐고 왕좌에서 일어섰다. 그의 분노는 점점 커졌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불길은 점차 소멸해 갔고, 연기마저도 서서히 사라졌다. 신하들은 이미 패배의 기운을 느끼고 몸을 웅크리며 뒤로 물러섰다.


“전하, 이제 어쩌옵니까...” 연기 참모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불꽃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소방대가 너무 강하옵니다. 이번에도 인간들을 해치지 못하였사옵니다.”


불의 왕은 이를 갈며 분노했다. 그의 눈빛은 살기를 띠었지만, 이제 그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길은 이미 모두 진압되었고, 구조된 사람들은 안전하게 대피하고 있었다.


불의 왕국 대전은 패배의 침묵에 휩싸였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불의 왕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패배했구나... 소방대는 강하도다.”


불의 왕은 참담한 표정으로 왕좌에 주저앉았다. 신하들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 속에서 서로 눈치를 살폈다. 그때 무관심 부대장이 조심스럽게 나섰다.


“전하, 너무 실망하지 마시옵소서. 인간들이 어리석고 탐욕에 눈이 먼 한, 이와 같은 곳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옵니다. 안전보다 돈을 중시하는 자들, 비상구를 막고 소방시설을 훼손하는 자들은 수두룩하옵니다. 오히려 이런 기회는 무궁무진하옵니다.”


불꽃 장군이 맞장구를 치며 덧붙였다. “전하, 어찌 인간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이 한순간에 사라지겠사옵니까? 그들은 여전히 안전불감증에 빠져 있으니, 우리가 성공할 기회는 언제든 다시 올 것이옵니다.”


연기 참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하, 이번에는 소방대가 너무 빨리 도착하였사오나, 다음에는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옵니다. 인간들이 제 손으로 무너뜨린 그 안전망을 다시 이용하면, 반드시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불의 왕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에는 새로운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래... 맞다. 인간들은 그들의 탐욕과 무관심을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의 방심을 영원히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왕은 과거 선대왕들의 시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선대 왕들께서 이룩하셨던 대 화재들... 그때는 수많은 인간들이 목숨을 잃었지. 나는 그 영광을 반드시 재현할 것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그 옛날 대재앙을 꿈꾸는 듯한 일그러진 희망과 집착이 서려 있었다.


불의 왕은 결연한 표정으로 왕좌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인간들의 안전불감증을 이용할 것이니라. 탐욕에 눈이 먼 자들, 제 손으로 화를 부르는 어리석은 자들이여, 그들을 모두 집어삼키겠다. 다음에는, 반드시 더 큰 불길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리라.”


신하들은 그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숙였고, 불의 왕은 다시 한번 자신의 결의를 다졌다. 그의 눈앞에는 앞으로도 인간들이 불러올 수많은 재난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왕국 안에는 더 큰 화재의 음모가 차츰차츰 불타오르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