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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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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멜리 Dec 08. 2018

내 방안의 아지트

난방텐트, 전기장판, 넷플릭스 그리고 아이스크림

 거의 모든 어른이들의 기억속에 어린시절 책상이나 식탁밑에 나만의 아지트를 가져본 날들이 남아있을 거다. 나는 피아노 밑의 공간을 아지트 삼아 자리를 틀었는데, 자리가 넓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인형들만 골라 데리고 들어갔었다. 책도 제일 좋아하는 것들로만 고르고, 엄마가 아끼던 비싼 수입 물병과 물컵도 쟁여서 들어갔다. 엄마와 아빠는 그 꼴이 지저분하게 보였을 법도 한데, 집 한복판에 이불을 뒤집어쓴 피아노 아지트에도 허가를 내줬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빠가 큰 랜턴을 구해다 줬고, 그 안에서 책도 보고 작은 틈새를 만들어 방에 놓여있던 티비도 봤다. 가끔 사식처럼 쟁반에 올려 넣어주는 아빠의 간식을 받아먹으며 나는 나의 공간에서 자랄 수 있었다. 키가 부쩍 크면서 더이상 피아노 밑의 공간에서 몸을 일으키기 어려워 졌을때 쯤 나는 이불로 만든 아지트를 청산했다.


 몇년전 독립을 하면서 난방텐트를 샀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얼굴에 냉기가 느껴진다 싶으면 얼른 텐트를 꺼내 설치해야 할 계절이 온 것이다. 바깥의 수은주는 영하 9도를 가리키고 텐트안의 나는 전기매트 위에 올라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사식같은 간식을 넣어주던 아빠는 여전히 문자메세지함 가득 나의 겨울 안부를 걱정하고, 나는 작은 내 집안에 또 나의 아지트를 틀었다. 넷플릭스와 전기장판, 그리고 약간의 간식만 있으면 동장군도 무섭지 않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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