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해야만 하는, 신뢰와 신념이 사라져 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이 글은 브런치에서 제공한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 후 작성한 글입니다.
자폐를 갖고 있는 지우(김향기 배우)는 늦은 밤 집 건너편에서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가정부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임된 순호(정우성 배우). 순호는 가정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지우를 찾아가고, 지우에게 사건에 대한 진실을 듣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폐를 갖고 있는 지우의 신뢰를 얻는 것도, 대화를 이끌어 내기도 쉽지가 않다. 국선 변호이지만, 자신이속한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자리가 걸린 중요한 사건이다. 순호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중요한 증인, 지우의 신뢰를 얻어 성공적인 변호를 이끌어 내야만 한다. 순호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서 성공적인 변호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영화 <증인>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사건의 중심에 선 목격자로 등장하는 자폐를 가진 중학생 소녀 지우. 기저귀를 떼기도 전에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받았던 지우는 자폐 스팩트럼 장애로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버렸다.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어린 지우는, 장애라는 벽에 갇힌 존재였다. 그러나 사건을 목격한 뒤, 어렵고 무섭지만 벽을 깨고 증인이 되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선다.
변호사인 순호는 지금은 대형 로펌에 들어와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원래는 ‘민변’ 출신으로 인권운동을 하던 변호사였다. 아버지의 보증으로 인해 빚을 떠안았고, 현실과 금전의 벽 앞에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순호.
순호에게는 아직 민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절친한 친구이자 사랑하는 사람인 ‘수인(송윤아 배우)’이 있다. 수인은 암을 유발하는 생리대를 판매한 회사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긴 싸움을 이어가고, 순호는 수인에게 현실도 좀 볼 필요가 있지 않냐 이야기한다.
순호의 아버지는 파킨슨 병을 앓고 있다. 너무나 해맑고, 인자하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점점 자신의 몸이 굳어가는 병에 걸린 아버지. 누구보다도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아직도 결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노총각 아들이 걱정스럽다. 신체가 굳어가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외려 한없이 밝고 천진난만한 존재로 그려진다.
지우의 엄마는 지우가 처음 말을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이가 분명 천재일 거라고 기대했던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지우에겐 장애가 있었고, 그럼에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지우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는 진짜 ‘엄마’다. 다만, 아직 마음 한편의 미련을 저버리지 못해 지우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내고 있다.
장애가 있는 지우에겐 유일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을 가진 아이로 그려진다. 지우 엄마의 부탁에 따라 약간의 용돈을 받고 지우를 보살피는 친구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함께 다닌다는 이유로 주변의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가정부. 집주인 할아버지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가정부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을 변호해 주겠다고 나타난 순호에게 연신 눈물 섞인 감사 인사를 건넨다. 자식도, 다른 가족도 없이 자신뿐이라던 그녀에겐 사실 몸이 아픈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녀가 숨기고 있는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모두 어딘가의 벽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 그리고 그 벽을 깨고 나가려는 노력과 그 과정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정신적인 장애에 갇힌 지우는 타인과의 소통이 어렵고 서투르기만 하다.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읽어내기조차 어렵지만 지우는 세상 앞에 증인으로 서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파킨슨 병을 앓는 순호의 아버지는 신체가 점점 굳어져 움직이기도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스탠드 불 빛 아래에서 인간사의 긴 여정을 담은 대하소설 <토지>를 읽고, 아들에게 편지를 적는다
타인과의 소통에 서투른 지우, 그리고 서툴러진 아버지의 글씨,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 보이는 대기업과의 싸움을 하는 수인. 지우를 차마 특수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지우의 부모, 학교 폭력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지우의 친구.
모두가 서투르고, 모두가 저마다의 벽에 갇혀 있지만 사실 전부 저마다의 방법으로 벽을 깨고 나가려는 중이다. 순호 역시 수인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하라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건네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다.
<증인>을 볼 계획이 있다면 영화 속 지우네 집의 철문을 유심히 보길 바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지우네 집의 철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장면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우네 집으로 그려지는 공간은 마당이 딸린 아담한 주택이다. 골목과 마당 사이의 철문 위쪽은 장식이 되어있어 장식 사이사이 구멍들을 통해 철문 안쪽의 사람과 철문 밖의 사람을 내다볼 수 있다. 마당 안쪽의 사람과 문 밖에 선 사람이 서로를 완벽히 볼 수는 없지만, 틈새를 통해 서로 들여다볼 수 있다. 영화 내내 지우와 순호는 닫힌 철문과 창문 등을 통해 서로를 들여다보기만 한다. 그러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마지막의 두 사람은 활짝 열린 철문을 통해 안과 밖을 자유롭게 통과하고 서로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지우의 증언으로 대변되는 키워드 ‘진실’. 진실은 항상 한 방향을 향해 이야기하지만 그걸 듣고 재단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소통할지 결정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영화 속에서 지우는 하굣길에 마주치는 큰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강아지의 짖는 소리가 청각이 예민한 지우에게는 날카로운 데시벨의 소리로 들어와 더 무섭게 들렸던 것이다. 그런 지우에게 순호는 사실 강아지가 지우를 위협하려던 것이 아니라, 친해지려고 짖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우는 내내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장애로 인한 상황 판단 오류에서 비롯되었든, 실제 목격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이든 간에 지우의 입장에선 100% 완벽한 진실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나 장애아동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지우의 이야기엔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다. 순호는 강아지의 오해를 벗겨 주었듯이, 우리에게 지우의 진실을 알려줄 수 있을까?
법조인으로 등장하는 순호는 법원 앞이나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서초동의 대로가 아니라 광화문 거리를 더 많이 걷는다. 영화 속 순호는 첫 등장부터 계속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다.
광화문. 그곳에는 2016년 겨울 촛불이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세월호가 있고, 여전히 세상에 목소리를 내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사회의 벽에, 강자의 벽에, 세상의 벽에 부딪힌 사람들이 저마다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여드는 곳, 광화문. 소통의 광장 광화문을 걷는 순호가 기억에 남았다.
소통과 신뢰, 그리고 본질적인 신념의 가치가 보여주는 인간미가 가득한 영화였다. 뻔하지만 결코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 세상과, 타인과, 그리고 나 자신과의 소통 조차 쉽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영화. 잊혀 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영화였다. 2월 개봉하는 영화 <증인>. 봄을 앞두고 <증인>의 흥행 소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