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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wledge nomad Oct 30. 2018

2005. 1. 8.

맑은 밤 하늘 총총이 떠 있는 별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도시에서 바라보는 별들은 드문드문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북적북적 모여서 행복하다 못해 아찔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외로운 모습이든 아찔한 모습이든 별을 바라보는 그 마음은 항상 행복합니다.


시골 큰 집에서 몇 년간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바쁘고 쪼달리는 생활속에 부모님은 어린 아들 둘을 같이 키우는 것이 힘들었었나 봅니다.

부모님 손을 잡고 시골 집에 들어섰을 때,

오랫만에 만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큰아빠, 큰엄마, 사촌형, 누나들,

시끌시끌한 돼지네 가족들, 촐랑거리며 마당을 돌아다니던 닭들,

큰집에 갈때면 항상 볏짚을 하나 둘 주어가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던 소의 큰 눈망울,

참새를 쫓으러 논을 뛰어 다닐 일이며,

게를 잡으러 갯벌을 뒹굴 일이며,

생각만 해도 즐거웠습니다.

캄캄한 밤 멀리 떨어진 화장실을 혼자 다녀와야 한다는 무서움 따윈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참 신이 났었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시골에서 보내고 난 후,

부모님은 저와 동생을 그대로 놔두고 떠나셨습니다.

정말 안 데리고 가냐고 동생은 버스 타는 곳까지 부모님을 쫓아가며 울며 매달렸지만,

왜 그랬을까요? 저는 큰 집 문 앞에서 부모님을 배웅하고는 더 이상 나가보지도 않았습니다.

1년이었는지 2년이었는지 한참이 지나 부모님이 저희를 다시 데리러 오셨을 때,

저는 엄마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했습니다.

너무나 낯설어서 한참을 피해다니다,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서도 몇번이나 물었었죠. 정말 엄마 맞냐고, 우리 엄마 맞냐고.

놀거리, 먹을거리, 일거리 모두가 너무 많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곤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엄마, 아빠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골 마을은 한없이 조용해 집니다.

일찌감치 집집마다 전기불이 꺼지고 곧이어 잠시 밤길을 비추던 가로등마저 꺼집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잠이 안 드는 밤이면,

가끔 혼자 몰래 마당에 나와 쪼그리고 앉아서 밤하늘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 시절 하늘의 별들을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정말 은하수가 하늘을 흐르고 있었는데...

밝고 예쁜 별들이 너무 많아 어느 하나에 눈을 가만히 두고 있을 수 없었는데...

별을 바라보면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커지기도 했지만

별이 주는 행복감에 취하다 보면 그리움은, 그 상실감은 조금씩 잊혀져 갔습니다


조금 더 커서는 미끄럼틀에 가만히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곤 하기도 했습니다.

녹슨 미끄럼틀에 옷을 다 버리는 줄도 모르고,

정말 한없이 그렇게 누워있곤 했습니다.

밤 늦게까지 일하시느라 들어오지 않는 부모님,

형의 손을 꼭 붙잡고 티비를 보다 잠이 들어버린 동생,

피곤에 지쳐 또는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간 친구들,

그러고 나면 항상 세상엔 나 혼자 밖에 없는 듯 했습니다.

그 시절 하늘의 별들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처음엔 무척 외롭고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그 홀로있음이 꽤나 뿌듯해지기도 했습니다.

저 아름다운 별들, 찬란한 축복이 나 혼자만의 것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텅 빈 놀이터 미끄럼틀 속에서 저는 그렇게 참 행복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하늘의 별은 희망이었습니다.

서울 하늘에 드문 드문 밖에 보이지 않는 별들은

드문드문 있어서 더욱 소중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잠시 바라보는 별은

하루의 피곤함도 잊게 해주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했었습니다.

오랜 시간 앉아 하늘을 쳐다보는 시간도 아까울 때였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 잠시 바라보는 하늘의 별만 해도 저에겐 넘치는 행복이었습니다.


고3을 앞두고 설악산을 등반한 적이 있습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늦은 시간에 설악산을 오르기 시작해서

하룻밤은 산장에서 잘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기도 없는 그 곳 산장은 화장실을 갈 때에도 후레시를 들고 가야했습니다.

등산 경험이 별로 없었던 시절,

우리는 김밥 몇개와 초코파이 몇개, 생수만 들고 그 곳을 올라갔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가 되었을 때,

한겨울 추위에 김밥은 땡땡 얼어서 도저히 그냥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설픈 초보 등산가의 난처함을 해결해 준 건

우리와 같은 방에서 잠을 자게 된 어느 분들이었습니다.

산에서 만나 형제자매처럼 지내게 됐다는 그 분들은 겨울이면 항상 같이 설악산을 오른다고 했습니다.

얼어버린 김밥을 들고 당황해 하는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그분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식사에 우리를 끼워 주셨습니다.

설겆이는 우리보고 하라셨지만,

한겨울 산장에서 설겆이라고 해봐야 남은 음식물을 모아서 버리고

눈과 휴지로 그릇들을 닦아 내는 것뿐이었습니다.

아.... 그곳 산장에서 바라본 하늘의 별들은 정말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높은 산의 능선이 하늘에 울타리를 쳤고 그 안에서 별들은 쏟아질 정도로 빛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깍아지른 듯 솟아있는 산의 능선과 밤하늘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은

내일 아침 일찍 등반을 포기하고 밤새 구경하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내일 당장 먹을거리도 걱정이었지만 그런 걱정쯤은 문제도 되지 않았습니다.

너무 행복해서 존재감마저 잊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춥고 배고프고 외로운 군대 시절

하지만 그곳에도 낭만은 있었습니다.

야간에 부대에서 한참 떨어진 탄약고 근무를 설 때면

대부분의 고참들은 피곤에 못이겨 쪼그리고 앉아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 한 고참은 어느 날 군장을 풀고 총과 하이바도 벗어서 옆에 걸어놓고

탄약고 초소 밖으로 나가 초소 창틀에 걸터앉자 하더군여.

그러고 얘기나 하자고.

별것 아닌 일이었지만 항상 바짝 긴장해 지내던 이등병에겐

무한한 해방감과 자유가 느껴지던 순간이었습니다.

탄띠며, 총이며, 하이바며 군대생활 만큼이나 답답한 것들을 풀어놓고 나니

순간 너무나 편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자연스레 하늘을 봤습니다.

아.... 별이 참 많더군여.

조용한 전방 마을의 하늘은 저리도 많은 별을 품고 있었습니다.

평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군대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여기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계급이 좀 올라가고 사수가 되어 탄약고에 근무를 나오면

나도 후임병에게 꼭 이 자유를, 낭만을 느끼게 해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 후임병 한 놈과 같이 탄약고에 야간근무를 나갔습니다.

깊은 새벽이었습니다.

저도 이 녀석에게 탄띠는 풀고 총은 옆에 걸어두고 그 위에 하이바를 걸쳐놓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초소 창틀에 걸터 앉자고 했습니다.

순순히 시키는대로 했다가는 빠졌다고 혼날줄 알았는지

한참을 괜찮다고 하더니 말 안 듣는다고 한마디 듣고 나서야 제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고, 간혹 지나가는 부대앞 도로의 차를 바라보고

밖에서 무슨 일을 했었는지 주저리 주저리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나중에 한참뒤 계급 차이가 정말 한참 차이가 나는 다른 후임병 놈하고 탄약고 근무를 나갔습니다.

이 얘기 저 얘기 두서없이 하다가 문득 그 놈이 앞서 그 후임병 얘기를 하더군여.

그 후임병이 사수가 되어 첫 근무를 나갔는데 그때 부사수가 이 녀석 이었나 봅니다.

그때 그 후임병이 이 녀석하고 같이 군장을 모두 풀고 초소 창틀에 걸터앉아 근무를 섰었나 봅니다.

그리고 제 얘기를 했다더군요.

자기가 처음 근무 나갔을 때 나랑 그렇게 근무를 섰었는데,

그때 그게 너무 좋았다고, 너무 고마웠다고.

그래서 자기도 사수가 되서 탄약고 근무를 나가면 후임병들한테 꼭 시켜주고 싶었다구요.

그렇게 나란히 편하게 걸터앉아서 멀리 하늘이며, 별이며, 자동차 불빛이며를 바라보는 것이 참 좋았다구요.

답답하고 무섭고 외로운 그 군 시절에도 낭만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낭만은 별이 되어 저의 고참에게서 저에게로 제 밑 후임병에게로 또 그 후임병에게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바라본 하늘의 별은 유난히 밝게 빛났습니다.

곧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기대감,

담배 한대의 짜릿함에 대한 흥분,

때로는 관물대에 넣어놓은 라면 생각에 감도는 군침이며,

그 행복을 별은 말없이 밝게 빛나며 저와 함께 했습니다.


아름다운 별

그 아름다움은 제게 늘 행복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름다움이란 곧 행복의 다른 이름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름다울 순 없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별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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