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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부산_05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송도해수욕장'

by 밤비


松島, 소나무가 많은 섬이라 지어진 이름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공통된 내용은 단연 소나무가 아름답게 울창하여 이름 붙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곳 동쪽에 작은 구릉 자체가 이미 '송림산(松林山)'이니 말 다했다.


송도라 지칭되기 전까지 이 일대는 해변과 맞닿아 있는 바위섬으로 인해 '거북섬'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 또한 직관적인 이름답게 섬의 모양이 거북을 닮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송도해수욕장에 가면 '송도 거북섬 테마 휴양공간'이란 이름으로 구름산책로, 송도호, 방파제, 연육교, 거북섬, 해안도로 등이 수려하게 조성돼 있다. 특히 명물은 구름산책로 입구에 거북섬을 스토리텔링한 청동조각상이다.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 인룡(人龍)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았다는데 내용은 이렇다.

오랜 옛날 송도에 효성이 지극한 어부가 살았는데 고기잡이를 하다 큰 파도를 만나서 가까운 용굴로 피신했다가 괴물과 싸우다 상처 입은 용왕의 딸인 한 여인을 만나게 됐다. 어부는 약초를 구해 여인을 정성껏 치료해 주었고 이에 감동한 여인은 어부와 결혼했다. 용왕은 노여워했으나 이내 어부의 정성을 알게 되어 결혼을 허락하고 딸이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그것은 달의 기운을 받아 1,000일 동안 기도하면서 햇빛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용굴에서 정성스레 기도하지만 999일째 되는 날, 갑자기 나타난 바다괴물에 쫓겨 그만 햇빛을 보고 말았고 반인반룡(半人半龍)이 되었다. 뒤늦게 나타난 어부는 괴물의 가슴에 칼을 꽂다가 결국 괴물과 함께 죽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용왕은 어부를 거북바위로 만들어 영생케 하고, 이들의 사랑을 기리며 거북섬을 찾는 사람에게 재복과 장수를 준다고 한다.

마케팅의 냄새가 솔솔 나는 이 설화는 거북섬, 용굴 등의 자연 지형물을 활용하여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서구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지만은, 명칭과 형태를 꽤나 잘 녹여낸 것 같다. 부산 갈맷길 4코스 1구간 중 하나로 송도해수욕장에서 현인광장, 해안산책로, 송도용궁구름다리, 동섬, 포구나무쉼터, 두도전망대, 조각공원, 암남공원길까지 갔다가 다시 송도해수욕장으로 순환하는 9.3km 구간의 '송도해안볼레길(볼거리가 많은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이야기를 되새겨 보는 것도 좋겠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해변, 항구, 바다와 기암, 숲길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구전된 대로 거북섬 해수욕장, 혹은 한자로 변환해 구도(?) 해수욕장이라 지었으면 될 것을 왜 '갑툭튀 송도'가 된 걸까?

사실 송도는 바위와 자갈로 이루어진 해변이었는데, 현재 송림공원의 연맥으로 남아있는 거북 모양의 그 낮고 작은 섬에 놀랍게도 소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송도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거류민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 해수욕장 개발 사업을 위해 암남반도 주변 해안에 소나무 다량 식재, 휴게소/케이블카 조성 등을 하며 해안단구 지형으로 이어진 옛날의 자취가 허물어졌다. 넓은 해안가에 흰모래를 잔뜩 채워 넣어 그럴싸한 백사장으로 변모되었기 때문. '송도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된 것도 이때다. 있던 것에 더 추가하여 특징을 살린 셈. 뭐 소나무가 많은 섬이면 어떻고 거북을 닮은 섬이면 또 어떤가! 송도가 하루종일 머물러도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란 게 중요하지!

송도해수욕장은 1912년 착공하여 1913년 7월 개장했다. 비교적 차분한 파도와 함께 백사장 길이 800m, 너비 50m, 평균 수심 1~1.5m로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천혜의 해수욕장으로 손꼽히던 'Hot Spot'이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탓에 태풍 피해로 인해 매년 백사장이 유실되는 고초를 겪었고, 수질 악화, 타 관광지의 급부상(해운대, 광안리) 등으로 점차 쇠퇴하는 듯했었다. 그러다 2000년대 보수·정비 사업을 거치며 특징을 살려 다양한 인공 조형물 및 자연 지형 강화로 떠오르는 관광 명소로 재도약했다고 한다.

인근에 부산항, 영도 등 '부산'하면 생각나는 경치를 해변에서든 케이블카에서든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나 오래된 명소인 만큼 노포의 찐 맛집도 즐비해 있고, 개인적 취향인 레트로함도 겸비하고 있는 그야말로 '부산'스러운 곳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해운대나 광안리와 같은 현대적 명소보다 더더욱)

현지인들은 주로 낚시나 암남공원 산책을 위해 많이들 방문하고, 뛰어난 경관과 각종 놀잇거리로 관광객들의 발길도 소소하게 들끓는 곳.

그 사람과의 관계는 다소 특별하다. 지금은 유행을 지나 한물 간 플랫폼이 된 '게스트 하우스'의 파티 문화 초반, 이별 후 리프레시를 위해 방문한 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꽤나 건전한 '게하'의 파티 분위기와 그날 모인 사람들의 건실한 성향들에 힘입어 단톡방을 만들고 몇 주간은 연락을 이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러한 단발성 만남의 지속 기한이 그렇듯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방에서 나가며 사장되었고 나도 그들을 잊고 살았다.

3년 후 인생 첫 부산 여행을 계획하며 관광객 한정 광고 맛집이 아닌 현지인's Pick에 가고 싶었다. 그때 연락처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생각나 추천 목록에 있던 그 사람의 친구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렇게 그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날, 어찌 보면 아직도 가슴 설레고 소중하기도 하지만 잊고 싶을 만큼 가슴 아픈 그날, 드라이브를 하다 잠시 송도 바닷가에 들렀다. 당시 나는 날씨 요정으로 어딜 가든 비바람을 몰고 다녔었는데 그날도 그랬다. 몰아치는 비바람을 뚫고 나름 명물이라고 소문난 거북섬까지 모난 현무암들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바람이 너무 세차서 중심을 잡고 내딛기가 어려웠다. 잠시 넘어질 뻔하기도. 그런데 앞서 가던 그 사람은 여느 연상들과는 달리 이런 상황을 틈타 손을 잡거나 허리를 감싸거나 하는 등의 어쭙잖은 스킨십을 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조심하라고, 내디딜 위치를 알려줄 뿐이었다. 거기에 호감이 갔달까. 뭔가 깔끔하고 반듯해 보였다. 신선한 채소처럼 싱그러워 보였다. 순수해 보였다. 뭐 일단 외모가 너무 나의 이상형이었지만.

그래서 나는 송도에 가지 않는다. 외모에 더해 내면의 순수함에 마음을 빼앗겨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니, 지금까지 쉬지 않고 사랑하고 있기에. 나는 그곳이 유독 마음이 아프다.

후회한 들 달라지는 건 없다. 과거는 이미 기억에만 존재할 뿐 사라지고 없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다짐할 뿐이다. 어리석은 내가 과연 그 과거를 통해 성숙해질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다만 다시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는 꼭 변하고 싶다. 아직 꺼지지 않은 이 사랑을 다시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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