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My Mother the Mermaid, 2004)
으이구, 싱거운년. 웃지 울겄어?
- 연순(고두심)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인어 공주>는 참 따뜻합니다. '진국(김봉근)'과 '연순(고두심)'이 겪고 있는 '지독한 현실'을 계속해서 보여주기보단, 그 옛날 그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시간'들을 보여주니까요. 그래서 슬픕니다. 그놈의 현실이 뭐길래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그때, 그 시절. 한없이 행복하고, 순수하고, 아름다웠는데... 그토록 서로를 사랑했는데...
참 잔인합니다. 삶의 생기가 넘쳤던 그들을 이지경으로 만들었으니 말이죠. 그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날이 갈수록 걱정해야 할 건 쌓여가고, 해결되는 건 없고, 어떻게든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지만 온 몸에 기운이 빠지는 건 매한가지니 말이죠.
하지만 '연순(고두심)'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버스를 사이에 두고 찍은 빛바랜 사진 속 '진국(박해일)'의 미소를요. '연순'은 나직이 마지막 대사를 말하며, '진국'이 그러했듯 미소 짓습니다. 그 미소를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이젠 피식 웃고 마는 기억일지라도, '연순(고두심)’을 숨 쉬게 만드는 힘이 바로 '진국'과 함께했던 시절이란 것을요. 그런 기억이 선명하기에 지독한 현실 앞에서도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을요.
그들의 아름다웠던 시간 가운데, 여기 '나영'이 서있습니다. 그녀는 보았습니다. 억척스러운 '연순(고두심)'이 아닌, 사랑 앞에서 수줍기만 한 '연순(전도연)'의 모습을. 줄담배를 피기만 하는 '진국(김봉근)'이 아닌, 따뜻함이 가득한 '진국(박해일)'의 모습을. 서로를 향한 사랑의 물결이 흘러넘쳤던 모습을. 그 기억이 지금의 그들을 버텨주게 만드는 위로였다는 것을.
'나영'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펼쳐보며, 딸에게 말합니다. 그녀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그 기억이 나를 웃게 만든다는 것을. 지금의 너처럼, 우리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etc.
나의 부모님의 시간은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그들의 시간은 아름다웠는지... 무엇이 그들을 웃게 만드는지... 영화를 통해 여러 '시간여행'을 다녀왔지만 '나영'의 '시간여행'만큼 특별한 게 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