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zi Apr 29. 2022

019. 미국 아이들의 티볼(Tee Ball) 레슨

어릴 때부터 팀 스포츠를 경험한다

미국 아이들은 일찍부터 팀 스포츠를 시작한다. 미국 나이로 4살인 남편의 조카는 몇 주 전부터 티볼(Tee Ball)을 시작했다. 단어 자체가 낯설어 따로 찾아보니 야구를 간소화시킨 게임으로 투수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대신 타자는 배팅 티(Tee) 위에 공을 올려놓고 친다. 티볼은 모두가 수비, 공격에 참여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협력 경험이 강화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진다. 한 아이 당 50달러 정도를 내면 3개월 정도 일주일에 1번(야외 스포츠임으로 기상상황이 불가능할 경우는 제외) 레슨을 받고 후에는 실제 경기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4~6세 미취학 남녀 아이들이 한 팀이 되어 경기를 한다니 흥미가 갔다. 그래서 레슨이 잡힌 어느 볕 좋은 날, 조카 응원 겸 또 티볼에 대해 알아볼 겸 가족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잔디밭 밖에 없는 넓은 공터에 티볼, 소프트볼 경기장이 여러 개 있었다.

넓은 운동장에 익숙한 다이아몬드 경기장이 보였다. 다른 아이들도 보호자와 가족들이 함께 와 있었다. 코치는 총 3명이었는데 그들 역시 학부모이기도 했다. 각각 3~4명의 아이들을 맡아 지도하는 형식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유니폼과 헬멧, 글러브, 티볼 배트를 잡고 레슨을 준비했다. 노란색 유니폼을 입으니 다들 갓 태어난 병아리 같아 보였다. 한껏 상기된 모습들이었지만 한편으로 약간 긴장된 모습들이 엿보이기도 했다. 평소에 이 시간이면 다들 어린이집을 다녀와 집에서 편하게 놀고 쉬고 있었을 텐데, 훈련에서는 기본자세부터 시작해서 승패를 가르게 될 수도 있는 규칙도 익혀야 하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꼬꼬마 병아리 부대가 일렬로 섰다. 제일 먼저 코치를 따라, 1루! 2루! 3루! 홈 HOME! 을 외치며 경기장을 가볍게 몇 바퀴 뛰기 시작했다. 웜업 후에는 수비부터 연습했다. 코치가 공을 던지거나 굴려서 주면 아이들은 글러브로 공을 받아야 했다. 아직은 아이들의 주의가 쉽게 산만해질 때라 그런지 공을 받는 것이 쉽지는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코치들은 진지하게 아이들을 불러 세우며 힘을 북돋아 주었고 작은 성취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칭찬했다. 이어서 아이들끼리 둘씩 짝을 지어 던지고 받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건 더 어려워 보였다. 누군가와 공을 주고받으려면 상대방을 잘 보고 내 몸을 잘 조절해 움직여야 한다. 아직은 서로를 맞춰주기 쉽지 않으니 공들은 코 앞에서 떨어지거나 훌쩍 키를 넘어가기 일쑤였다. 수비 연습을 모두 마친 뒤엔 공격 연습, 즉 배팅을 시작한다. 어린 어깨, 팔 근육으로 공을 쳐도 어른들처럼 쌩! 하고 멀리 보내기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떤 아이들은 꽤 진지한 표정으로 어디서 본듯한 포즈를 취하며 방망이를 휘두른다. 저쪽에서 공을 치면 다른 아이들은 아까 연습한 수비 자세로 공을 잡아 다시 보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친구들과 장난하며 흩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이든 괜찮다. 상호작용이란 서로가 서툰 과정을 지나면서 다듬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니 말이다.


마지막 레슨은 지금까지 배운 수비, 공격 연습을 종합한 모의 경기였다. 한 명씩 차례로 공을 치고 1루로 진격해보는 경험을 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수비를 연습하며 전체 경기 규칙을 익힌다. 아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바쁘다. 코치들은 대단한 인내심으로 모든 아이들의 순서가 빠짐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돕는다. 공만 치고 잠시 자기가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있는 아이에게는 가족들이 ‘뛰어서 1루로 가’라고 소리를 외쳐 알려준다. 그렇게 결국 모두가 참여하는 경기가 된다. 준비된 모든 레슨이 끝났다. 팀 스포츠의 마무리는 뭐니 뭐니 해도 구호! 아이들과 코치들이 모두 모여 오늘의 구호를 상의하고, 손을 모아 ‘티볼!’을 외치며 1시간 정도의 모든 활동을 마쳤다. 조카는 우리에게 달려와서 ‘내가 해냈어 I did it!’라고 자축하고 기뻐한다. 경험을 성취감으로 연결시킨 아이의 마음에 자존감이 채워진다. 그런 모습이 너무 귀엽고 또 대견하다.


마지막 구호로 힘찬 마무리!


미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어렸을 때부터 이런 팀 스포츠에 참여하는 기회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 같다.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고 부담스러운 비용이 청구되는 것도 아니기에 더 좋다. 돌아보면 나도 학창 시절 팀으로 하는 경기들을 참 좋아했다. 정규 체육 시간에는 대부분 기초체력을 연습했지만, 가끔씩 피구나 발야구 같은 활동이 선물처럼 주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40분이 모자랐고,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공 하나를 빌려 우리끼리 게임을 하고 헤어지는 자율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필요에 비해 턱없이 작은 운동장과 적은 기구들, 그리고 중학교부터 시작되었던 입시 환경은 생기 가득한 우리들을 조금씩 시들게 했다. 결국엔 멀어졌고, 끊어졌다. 조카라도 그렇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아쉬움에 마음이 괜히 텁텁하고 씁쓸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018. 미국에서 타코를 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