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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May 24. 2022

25. 길을 입양하세요! Adopt a Road

자원봉사활동으로 도로 옆 쓰레기를 줍다.

입양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지는 않지만 아주 낯선 단어는 아니다. 반려견이나 묘를 입양한다 이렇게 쓰기도 하고 유명인들이 아이를 입양했다는 기사도 종종 나온다. 미국에 와서 나는 이 단어를 도로에서 발견했다. 한참 길을 달리다 보면 ‘Adopt a Road Program’ 혹은 ‘Adopt a Highway’라는 말이 적힌 초록색 작은 표지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길을, 도로를 입양하라고? 오늘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Adopt a Road Program’은 미국의 각 카운티에서 진행하고 있는 주민 사회봉사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해당 카운티에 주소지가 있는 개인, 가족, 사업체 등이 신청을 하면, 편도 1~2 마일 정도 되는 길지 않은 길을 할당받게 된다. 이 길을 개인 상황에 맞게 일 년에 최소 2회 이상 청소하면 된다. 청소라고 해서 대단한 건 아니고 쓰레기를 줍는 것이 주요 활동이다. 이렇게 참여하면 참여자들의 헌신과 봉사를 기리기 위해 표지판 아래에 이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적히게 된다. 사는 지역을 위해 자발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주인의식을 고양시켜줄 수 있다. 표지판 아래 이름이 적히게 되니 만약 사업을 하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봉사자들을 지원하는 정도의 적은 돈으로 깨끗한 도로를 유지할 수 있게 되니 지역 정부의 자금운용에서도 효율적이라 일석 삼조라고 할 수 있겠다. 남편의 가족 역시 이 프로그램에 몇 년째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때마침 우리의 미국 체류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번에는 나도 직접 어떤 프로그램인지 볼 수 있게 되었다.

카운티에서 혹은 시에서 실시하고 있는 Adopt a Road 프로그램 사인들

먼저 카운티의 ‘커뮤니티 서비스(Community Service)’라는 곳에 갔다. 이곳에서는 올해  참여를 확인하고, 쓰레기 수거에 필요한 각종 장비들을 대여해주거나 무상으로 제공해준다. 간단한 양식에 서명을 하고 필요한 서류를 받아온 뒤 장비들을 인계받았다. 노란색 쓰레기봉투와 쓰레기 집게, 도로 작업이니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안전조끼, 장갑, 작업 안내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작은 깃발들도 있었는데, 너무 크거나 개인이 처리하기 어려운 노천 쓰레기들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도구들 중에 일회용품들은 사용 후 참여자들이 가질 수 있다. 그 외의 것들은 작업이 종료된 후 다시 커뮤니티 서비스로 돌려준다.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제공해주는 활동 물품들

작업은 커뮤니티 서비스에 다녀온 후 이튿날 오후에 이뤄졌다. 남편 가족이 채택한 도로는 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할당된 구간은 초록색 표지판으로 시작과 끝점이 표시되어 있다. 이 각각의 표지판 아래에 ‘Litter Crew Ahead’라고 적힌, 앞에 쓰레기 줍는 사람들이 있으니 조심해달라는 경고(안내) 문구가 적힌 주황색 작업 안내판을 설치하는 것으로 작업은 시작된다. 설치하는 도중 지나가던 차가 경적을 빵빵 울렸다. 남편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우리가 봉사하니까 열심히 하라고 응원차 울려주는 거라고 한다. 안내판이 모두 설치되면 이제 안전장비들을 챙겨 입는다.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와중에 진행되기 때문에 안전은 제일 중요하다. Safety First! 형광 주황색 안전조끼 착용은 필수다. 이 외에도 눈에 잘 띄게 하기 위해서인지 고무장갑도 형광 주황색이고 쓰레기봉투는 노란색이다. 장비를 다 장착하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 집게를 들고 쓰레기 줍기를 시작하면 된다.

안전을 위해 작업 안내 표지판을 설치한다

나보다 걸음이 빠른 남편은 저만치 앞서가면서 굵직한 것들을 처리했다. 나는 뒤를 따르며 남편이 미처 수거하지 못한 쓰레기를 주웠다. 도로변에는 참 다양한 쓰레기들이 있었다. 내가 가장 많이 본 것은 담배필터들이었다. 썩지도 않고 미세 플라스틱을 방출시킬 수 있으니 작아도 보이는 족족 열심히 주워 담았다. 다행히 집게가 생각보다 잘 집혀 섬세한 줍기가 가능했다. 낡은 캔이나 과자봉지, 비닐봉지, 알 수 없는 플라스틱/철 조각 부품들도 많았다. 좀 의아했던 물건은 일회용 치실이었다. 운전 도중에 차 안에서 치실을 이렇게 열심히 쓰고 창문 밖으로 버리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실이다. 뭐, 아메리칸들의 치아 건강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는 긍정적인 흔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걸 이런 식으로 확인해버리니 좀 황당했다. 구석에 숨어있던 검은 운동화도 한쪽 주웠다.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는데 나머지 한쪽은 어디로 갔나. 평소에는 차를 타고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도로를 걸으며 자세히 보니, 중간부터는 마치 보물찾기 하는 것 마냥 재미가 느껴졌다. 아마 혼자였거나, 길이 길었거나, 혹은 쓰레기 양이 너무 많았으면 힘들어 지쳤을 거다. 운동 삼아 남편과 함께 왕복 6km 남짓한 거리를 걸으며 쓰레기도 줍는다는 생각으로 임하니 잠시지만 놀이 기분이 난 것 같다. 도중에 형부도 오셔서 합류하셨다.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 날 열심히 주웠던 담배 필터와 일회용 치실들

봉투에 넣은 쓰레기들은 잘 묶어 도로변에 그냥 두면 된다. 다만 집게로 주울 수 없는 큰 것들,  예를 들어 큰 플라스틱 조각이나 타이어 찢어진 것들 옆에는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나눠 준 깃발을 꼽아 놓는다. 그러면 나중에 카운티 쓰레기차가 지나가면서 노란색 봉투와 깃발 표시된 쓰레기들을 모두 수거해 간다. 그렇게 1시간 반 가량이 지나자 우리 가족에게 할당된 길 청소가 모두 끝났다. 다행히도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몸도 기분도 가뿐한 오후!

큰 쓰레기들 옆에는 깃발을 꼽아놓는다. 주운 쓰레기도 잘 묶어 길 옆에 두면 카운티 청소차들이 이후 수거해간다.

내 소유의 땅은 아니지만 잠시나마 책임감을 갖고 돌봤다고 이 구간 도로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로 ‘입양하다’ 혹은 ‘채택하다’고 번역되는 ‘Adopt a Road Program’은 재밌는 이름을 가진 괜찮은 제도인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유행한 한국의 줍킹(줍다와 워킹이 더해진, 걸으며 운동하고 쓰레기도 줍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도 참 좋은 캠페인이라고 생각하는데, 돌아가면 마을 분들과 함께 참여해보거나 혹은 홀로라도 자주 가는 길을 ‘내가 입양했다’ 여기며 주기적으로 돌보고 가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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