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er 2. 내 편인 줄 알았습니다
회사와 함께 대응하기가 좌절되면서 나는 남몰래 독기를 품었다. 이미 진행한 고소는 물론, 끝까지 가보기로 한 것이다. 가해자의 협박 메일은 물론 회사의 초동 대응이 부실해 정신적 상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산업재해를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산재라니. 단어가 주는 어감은 적어도 공사장에서 다리나 팔이 부러져 입원하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견딜 수 없이 산산이 부딪혀 죽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산재까지 하려니 자신이 너무 별난 사람처럼 보였다.
정신적 질병에 대한 편견에 그렇게 부딪히면서도 스스로도 나는 그냥 성격상 우울한 거고 꾀병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하곤 했다. 인정받을 자신도 없었다.
그래도 후회 없는 내일을 맞기 위해선 지금 해야 할 일을 마주해야 한다고 다짐하듯 생각했다. 크라브마가가 가르쳐 줬듯, 나는 마치 코너에 물린 쥐가 고양이를 물 듯 반격에 나섰다. 이 사건은 업무 과정에서 생긴 질병이며 회사 대응의 부당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산재 서류를 작성했다.
산재 서류 작성은 결코 쉽지 않았다. 특히 정신적 피해에 대한 산재는 입을 모아 ‘정말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는 듯 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환자가 써야 하는 서류는 많게는 수십 장에 달했다. 산재가 발생하기 전 직장의 조직도부터 업무적, 사회적, 혹은 가정, 유년시절부터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는지 혹은 지병은 있지 않았는 지를 낱낱이 확인하는 문답지였다.
그 과정에서 괴로웠던 시간을 떠올려야 함은 물론이었다. 노무사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나는 나의 고통을 정면으로 직시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이 대신해준다고 해도 이 고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였으므로, 결국 내가 손 대어야 하는 일이라 느꼈다.
말은 그럴 법하게 하지만 산재 서류를 쓰는 것 자체가 마치 탄원서처럼 괴로워서 컴퓨터를 켜지도 못하는 나날이 반복됐다. 그래도 나를 위로해 주는 주치의 선생님, 그리고 운동이 있었기에 어떻게든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절차상 필요해 통상 4시간이 걸리는 종합심리평가를 진행했다. 종합심리평가는 내가 정신적으로 힘들다는 것이 사실인지 증명하는 검사로, 유일하게 국제적으로 법적 효력이 있는 검사로 알고 있다.
결과는 있는 그대로였다.
‘환자는 우울감, 무망감과 무력감을 경험하고, 부정적 사건을 위협적으로 지각하면서 불안감 또한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대처 자원 또는 부족하고 지속적으로 심리적 불편감을 느낄 것으로 시사된다. 외부 자극을 위협적으로 지각하며 때때로 자신과 무관한 외부 자극을 연관 지어 생각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 볼 때 일상생활에서 사소하고 중립적인 단어에도 쉬이 위협감을 느끼면서 피해사고를 경험할 것으로 보인다. 병전에 환자는 스스로 당면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을 것으로 보이나, 최근 부정적인 사건에 적절히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고 여기면서 이에 대한 무력감 또한 느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