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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Sep 04. 2021

모든 존버가 성공하지는 않는다

너무 아픈 존버는 버티기가 아니였음을

검사 결과에서 말해주듯 나는 이미 마음이 다칠 대로 다친 상태였다. 이 상태로 일을 하는 것은 피가 철철 흐르는 손으로 손을 다치게 한 일을 계속하는 것과 같았다.


특히 내게 상처가  부분은  회사였다. 의외로 가해자에 대한 분노보다 믿었던 회사에 대한 분노가  컸다. 내가 가해자가 우연히 던진 돌에 맞았다면,  돌을 쥐고 신고하러 갔다가 마을 관청에서 오히려  잘못이라고 몰아 상처를 받은 꼴이었다.


사건을 이유로 병가를 내고 이후 퇴사를 하면서 그동안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병가를 내겠다고 말하고 ‘오늘 마지막이니 같이 점심 먹자’는 카톡에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고 가는 순간까지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병가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모든 단톡방에서 나갔던 내가 제대로 된 설명이나 인사도 없이 떠난다는 서운함 때문에 그랬을 것이라고 믿어보기도 한다.


다만 이후 병가 중 나는 조부상을 당하게 됐는데 거의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은 점이 충격적이었다. 왜냐하면 불과 몇 달 전 별로 친하지 않던 팀원이 조모상을 당했을 때 우리 모두는 조의금을 보냈고 몇몇이 대표로 직접 조문도 갔기 때문이다.


비록 퇴사를 생각한 병가 중이었지만 돌아오려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데 그들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는 이미 나를 버린 회사의 바짓 가락을 붙잡고 섭섭하다고 말하고 있는 꼴은 아닌지, 스스로가 비참하고 서럽게 느껴져 장례식장 근처 들판에서 소리 내 울었다. 장례식장 근처였기 때문에 소리 내 울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아 주어서 고마웠다.


그 일은 생각보다 큰 비수가 되었다. 언뜻 헤어짐의 절차가 서툴렀던 쌍방과실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누구든 자기 가슴의 꽂힌 바늘 하나가 제일 아픈 법이다. 다른 사람의 상처는 헤아릴 틈도 없이 나는 깊이 상처에 매몰되고 말았다.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같이 팀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던 내가 팀을 버리고 혼자 하는 일을 향후 택하게 된 것도 이때가 계기가 됐다.


회사를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간절했지만 당장 수입원도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는 그저 ‘존버’가 답이려니 생각했다. 흔히들 말하는 ‘존버는 성공한다’는 말을 격언처럼 마음에 품고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시기를 지나가 보니 더 이상 존버는 존 X 버티기가 아닌 존 X 시간 버리기가 되어있었다. 너무 아픈 존버는 성공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서 너무나 어려운 결정이었기 때문에 스스로 용단이라고 믿은 결정은 퇴사였다. 뒤늦게라도 손을 내민 회사를 걷어차고 혼자 해결하기로 결심한 시점이기도 했다.


내 사건은 뒤늦게 회사의 법무 담당에게 흘러가 도움을 준다는 태도로 회사는 돌아섰다. 먼저 번 ‘자문 변호사가 없다. 있어도 도와줄 수 없는 네 사건이다’라는 팀장의 진단이 틀렸던 것이다. 나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인사팀 친구에게 한탄조로 이 이야기를 했는데, 곧바로 회사 내 법무담당에게 흘러들어 갔다. 담당자는 여러 번 사과하며 “이 일은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는 게 당연히 맞다”며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팀장의 오판이었다.


실제로 앞으로 고소사건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재판 참석 시 회사 자문 변호사의 도움 등 회사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죽고 싶었던 순간에 제대로 공감도 지원도 해주지 않았던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직접적 도움은 받지 않기로 했다.


앞으로 나 홀로 대응해야 한다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 시점에 이미 사건은 혼자 고소장 작성, 경찰 신고와 조사받기, 가해자 신원 찾기까지 이뤄졌기 때문이다. 혼자 속을 얼마나 끓이고 삭히며 상담에 상담을 했는지, 이제는 혼자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골이 났고 특별히 모르는 게 없는 상태였다.


다만 이미 소문이 날 대로 나서 회사를 다니기가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사건을 가장 친한 동료들한테, 그리고 상사들에게만 이야기한 상태였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장실에서 손을 씻다가 평소에 왕래가 없어 잘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었다.

“범인이 여자였다면서요?”

“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묻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당황하자 그쪽은 더 당황한 듯 보였다.

“아 아니 회사에 기자님 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어차피.”


둘러대는 말에도 쉽게 넘어가지지 않았다. 이 일을 오래 마음에 남아 평소 믿고 따랐던 PD언니에게 털어놨다.

“PD님, 전에 화장실에서 손 씻는데 Y 씨까지 이 사건을 아는 거 있죠. 도대체 이 회사에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걸까요?”

 “어… Y 씨가 결재를 담당하니까 기자님 사건을 알게 된 거 아닐까요?”

 “그렇다기엔 가해자 성별까지 알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물어서 소문이 얼마나 자세히 났으면 싶어서 당황했어요.”


내 이야기에 한참 동안 말이 없던 PD언니는 사실 그 이야기를 Y 씨에게 전한 건 자신이라고 털어놓았다. 장문의 메시지에서 언니가 나쁜 의도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느껴졌지만 믿을 사람 하나 없다는 한탄이 들면서 해당 회사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모두 정리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퇴사 후에도 친하게 지내는 일이 흔했던 나로서는 한동안 마음이 몸으로 이어져 아플 만큼 힘든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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