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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차나 Oct 17. 2021

우울증, 증상과 정상 사이

chapter 7. 약간의 신경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울 증상과 정상 사이, 종이 한 장 차 같은 간극 사이에서 살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날은 이제 다 나은 거 같다고 느끼고 다음 날엔 아직 멀었다고 느꼈다. 중증우울에피소드에서 중증이라는 말이 빠지면서였던 거 같다.

대학병원 K주치의 선생님도 내가 어떤 행동을 ‘왜’ 하느냐에 따라 정상과 증상을 다르게 구분했다. 일례로 나는 우울증이 생긴 후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증상이 생겼다. 처음 선생님한테 그 이야기를 한지 오래됐는데 최근 다시 이 행동을 이야기하자 선생님은 이렇게 반응하셨다.

“그건 원래 그러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면 증상이 아니죠.”

“우울증이 생기기 전엔 그러지 않았어요.”

“아 그래요? 그러면 증상이 맞군요.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서 그런 건가요?”

“아뇨. 잘 모르겠는데 그냥 지루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지루해서라. 조금 애매하네요.”


그 밖에도 우울증이 생긴 후에는 이를 자꾸만 갈고 이를 악 무는 습관이 생겼다. 선생님께 매번 털어놓기는 하지만 이게 우울증 때문에 생긴 강박인지 치아구조상의 문제로 생긴 문제인지는 구분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떤 날은 모든 게 우울증 때문에 잘못되는 것 같다가도, 차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데에는 정말 여러 가지 맥락이 겹쳐 있었고 때론 ‘그냥’ 하기도 했다. 우울증이라는 증상에 묶이지 않고,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 짓기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차라리 현명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우울증 환자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만 약간의 신경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때론 심하게 흔들리는 날도 있으니 다 괜찮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럭저럭, 그 정도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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