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인류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고 ‘길에서 전단지를 받는 마음’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당시 글쓰기 수업 중이었는데 사람들은 신선하고 공감 가는 답변이라고 화색 했다. 나로서는 순간 떠오르는 말을 그냥 한 거라 그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같이 수업을 듣던 학생은 내게 허락을 구하고 자기 글에 그 말을 인용씩이나 했는데, 꽤나 낯선 경험이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
전단지. 전단지란 무엇인가.
출근길 지하철 출구나 번화가에서 일면식 없는 이가 불쑥 내미는 뜻 모를 종이. 그 안에 내가 원하는 정보가 있을 가능성은 꽤나 적다.
그럼에도 아침 일찍 나와 오늘 돌려야만 퇴근할 수 있는 전단지를 받아 들고 거리에 나온 이들의 심정을 생각해서 가끔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런 대가 없는 친절인 셈이다.
그러나 내가 한 말이 무색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전단지를 받지 않게 됐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전단지 하나를 받으면, 조금 떨어져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내미는 종이를 받고, 그 후에 또 받게 되는 식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 손에는 코팅까지 된 빳빳한 쓰레기가 가득 차고 나는 버릴 곳을 찾아 헤매야 한다.
도시 생활이 십 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이해관계도 친분도 없는 이들을 위해 베푼 호의가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느껴서 일지도 몰랐다.
그러다 살해 협박 내용으로 메일을 보내던 신변 불상의 사람과 법적 다툼을 하던 날이었다.
정신과 선생님께 ‘악성메일로 인한 우울증, 불안장애’라는 진단서를 받아 가는 길. 나는 진단서를 흰 봉투에 둘둘 말아 넣었다. 긴 봉투는 핸드백에 끝까지 들어가지 않아 반쯤 꽂고 집으로 향했다.
종로 한 복판을 걸으니 어김없이 전단지를 내미는 이들이 보였다. 그 순간 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살면서 가장 인류애를 잃은 순간에 하필 그것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가 했던 말에 책임감이라도 느낀 듯 아주 오랜만에 전단지를 받았다. 그리고 곧 불이 켜진 횡단보도를 바쁘게 건넜다.
전단지를 손에 들고 한참 길을 걷던 순간 “저기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번 당했던 경험으로,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붙잡고 말을 걸면 뭐라고 하든 눈길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철칙을 깨고 살짝 돌아봤다.
그런데 나를 불러 세운 사람 손에는 정신이 빠진 통에 제대로 챙기지 못한 진단서 봉투가 들려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횡단보도 중간까지 달려와 내가 떨어뜨린 봉투를 건네주고, 반대방향으로 자기 갈 길을 갔다.
아, 인류애가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