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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수산책 Jul 11. 2023

일상화된 폭력과 폭력의 전염

영화의 숲에서 영화 읽기-<원스어폰어 타임...인 할리우드>

'원스 어폰 어 타임'(Once upon a time)은 영어 사용자들이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붙이는 관용구입니다. ‘옛날 옛적에~'식의 이야기 시작은 우리도 낯설지 않습니다. 이 표현은 시대를 특정하지 않기에 과장이나 왜곡을 해도 크게 문제 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화에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특정 시대를 제시하면 회상의 형식이 되는데, 이런 영화가 적잖습니다.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지나간 시대를 들여다보곤 합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뒤에 ’아메리카‘ ’웨스트‘ ’베니스‘ ‘멕시코’ 등이 붙는데 액션이나 코믹영화 정도입니다.


아름다운 영화도 있습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영화의 전편에 흐르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때문에 기억이 새롭습니다. 영화를 본 지 오래돼 스토리는 가물하지만 '데보라의 테마'만큼은 기억에 선명합니다. 중년의 누들스(로버트 드니로 역)가 눈물이 그렁한 채 어린 시절 데보라를 피핑했던 틈새로 눈을 가져갑니다. 허름한 곡물 창고에서 발레복을 입고 춤을 추는 소녀 데보라, ‘피핑 톰'이 된 어린 누들스, 필름 영화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부연 영상,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이 재생됩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에는 그런 아름다운 회상은 없었습니다. <기생충>과 칸 영화제에서 경쟁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으로 잔혹한 영상으로 화면을 채운 <킬빌>의 감독답게 폭력적 장면을 가감 없이 가져옵니다.  <킬빌>을 볼 때 웃음이 나온 장면이 있죠. 노란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주인공이 장검을 갖고 비행기에 타고 간다거나, 일본 갱단원과 싸울 때 어린 갱의 볼기를 때려 쫓아낼 때 감독이 ‘이건 영화야’라고 말을 거는 듯했습니다.


<~... 할리우드>는 미소년 출신의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등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좀 본 사람들만 본 정도의 관객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개봉날 영화관으로 달려간 나는 아마도 배우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161분의 러닝 타임, 느린 서사, 영화를 보는 내내 힘겨웠던 게 사실입니다.


배경은 1969년의 할리우드, 이때 미국은 베트남 전쟁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당시에는 이 정보를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미국 사회는 광포한 폭력의 시간대를 지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난날의 영광만을 좇는 한물간 이들의 낙담,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릭 달튼'의 역겨운 속물근성, 일거리가 없는 전쟁 영웅 출신 스턴트맨 클리프(브래드 피트)의 주먹질 등은 그들이 처한 시대의 빈곤함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영화는 지루하게 흘러갑니다. 그런데 히피들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속도를 내고, 나도 그제야 집중이 가능했다.


히피(hippie),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히피 문화는 베트남 전쟁이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것이죠.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기존 질서에 대해 저항하고자 한 히피, 그런데 영화에 등장한 히피는 그 사회를 채운 증오의 세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최악의 폭력인 살인을 공모하고, '베트남전의 영웅' 클리프를 공격하는데, 클리프는 애견 브랜디와 함께 무표정하게 히피들을 가혹하게 살해합니다. 달튼 역시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했던 화염방사기로 끔찍한 살상을 자행합니다. 뭐, 이런 장면이야 액션 영화에서 수없이 본 것들이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 살육이 끝나고 난 후 이웃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라고 묻습니다. 달튼은 집에 쳐들어온 히피를 '바싹 구워버렸다고 자랑'을 합니다. 그리고 이웃의 초대에 반갑게 응하게 됩니다. 가공할 폭력은 일상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영화는 선악의 구분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야만의 폭력을 나열하고 그 폭력의 전염과 일상화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잔혹한 폭력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세계,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촉발된 악마성의 발현, 그런 인간들이 선한 표정으로 본성을 감추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 우리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 그래서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때 자못 섬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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