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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낯선생각 Oct 08. 2021

글쟁이의 노력

  방송하면 매번 다른 아이템에 관한 공부를 한다. 그래서 많은 자료수집을 거쳐서 새로운 정보들을 얻는다.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구성안도 쓰고 대본을 써야 하니, 관련 서적도 읽고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을 조금 멈췄던 시기에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방송도 하지 않는데 좀 쉬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내 머릿속이, 가슴 속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글쟁이는 책을 놓으면 안 된다. 책을 손에서 놓는 순간, 모든 것이 흐트러진다. 직접 경험하고 나니 느낀다. 그림을 아무리 잘 그리던 사람도 붓을 놓고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다시 그림을 그리기까지 시간이 걸리듯이 작가도 마찬가지다. 글을 주기적으로 쓰는 곳이 없다고 해서 손에서 펜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다. 글쟁이는 누구보다 센스있는 ‘말쟁이’여야 한다. 글이란 말이 쓰여진 것이다. 종이에 적어낸 말이 글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쏟아내는 것인데, 말을 잘할 줄 알아야 글도 쓸 수 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 말로 내뱉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뱉어낼 수 있는 능력, 말쟁이의 능력이 필요하다. 글이라고 하는 것은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자신의 말을 글로써 정리하여 내보낼 수 있을 만큼 숙달되고 단련된 이들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도 진리와 사상을 글이 아닌 말로 남겼다. 그러한 말을 들은 제자들에 의해 그들의 말은 글로 옮겨진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성경과 불경 등의 경전이 된 것이다. 사람에게 선善을 알게 하는 것으로 유익을 주는 말들은 그것이 언어로 전해지든, 글자로 전해지든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이 사람들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삶의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은 ‘말쟁이’도, ‘글쟁이’도 되어야 한다. 사실 글보다 말이 더 중요한 이유는 말이라는 것은 막 뱉어버리고 주워 담지도 못하고, 글은 썼다가도 다시 읽고 그래도 이상하면 지우면 되니 흔적이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토론을 즐긴다. 농담 삼아 시작한 토론이 끝장을 보자고 가는 일도 있지만,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머리를 돌아가게 만들고 생각이 숨 쉬게 해준다.     

  가끔 내가 듣는 말 중에 제일 머쓱한 말은 “에이 무슨 글쟁이가 이래?”라는 말이다. 작가라고 어떤 말을 할까 엄청나게 기대하고 있다가 기대 이하의 평이한 말에 실망했다는 반응인 거다. 말도, 글도 나는 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글이란 누가 읽더라도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는 글이니까 어려운 단어와 화려한 미사여구는 사절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기대치를 알기에, 어디선가 말을 할 일이 있으면 내 방 가득한 책들을 뒤진다. 그 상황에 제일 어울릴 법한 좋은 문구를 찾기 위해서, 사람들의 기대치에 어느 정도는 반응해주기 위해서. 특히 건배사를 해야 할 때 이런 짓을 종종 했다.  


   글쟁이도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방안에 켜켜이 쌓아둔 책을 찔끔씩이라도 읽고, 가끔은 필사도 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이라도 나오면 어딘가에 적는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언젠가 조금의 변형을 거쳐 나의 글 어디엔가 내려앉는다. 수많은 글쟁이의 좋은 글들을 보고 배우고 나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     


  생각해보면 작년에도, 제 작년에도 내 책을 다시 쓰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을까?’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5년 전쯤부터 내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버킷리스트에도 1번 정도로 적어두고. 물론 중간에 책을 내기는 했지만 내가 원했던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지도 못하고 그런데 빈 종이만 바라보다가 다시 책으로 도망치곤 했다. 도대체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 내려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매도 타이밍을 놓치고 한없이 떨어지는 주식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주식도 바닥까지 가면 결국 갈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을 먹는 것처럼 언젠가 한 줄이라도 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언젠가 있을 한방에 본전 이상을 기대하면서 기다려보자는 마음으로 여전히 빈 종이를 대신해 책을 찾고 있었다.     


  책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읽은 글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책을 읽으면서 대화하려는 노력도 멈추지 않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또 책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과정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해야 처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혹은 전혀 몰랐던 고민들이 보이는 것이다, 또 글을 통해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한 질문부터 답해야 하는데, 내가 나 자신에게 먼저 증명을 할 수 있어야 하니, 제대로 증명해 낼 수 있는, 내가 산 증인이 되는 내 이야기를 뱉어 보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몰입 중이다. 예전 같으면 공허함을 채울 요량으로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의미 있는 일들로 시간을 채우려고 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글쟁이의 노력이랍시고, 수많은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도 하다가 결국 서로가 존재하는 시간과 장소가 달라지면서 멀어지는 관계들을 보면서 그것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었나 하는 반문도 하게 되지만, 어쨌든 이제는 진짜 글을 쓴다. 다른 어떤 도피처도 찾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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