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날씨: 덥고 추웠다. 아직 일교차가 크다.
며칠 지각했다. 그래도 네가 보는 내 삶이 꽤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집에 꽃이 생기 건 얼마 안 됐다. 그러니까 불과 뽈이 오기 한 달 전쯤. 집들이 선물로 꽃을 받았는데, 마침 시간이 많았다. 혼자 집에서 드라마나 영화를 틀고 밥을 먹거나 설거지하거나 빨래를 돌리거나 빨래를 갰다. 거기에 꽃병의 물을 갈아주고, 때에 따라 줄기를 조금씩 잘라 주는 일이 포함되었다. 겨우 1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 잠깐의 시간이 변화를 가져왔다.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돌리는 것과 달리, 꽃병의 물은 내가 바쁘건 바쁘지 않건 매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루만 뛰어넘어도 금세 꽃의 생기가 사라졌고, 누구한테 대신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내 집에서 꽃은 보통 3-4일이면 오래 산 거였는데, 이번에는 3주 넘게 그 자리에 꽂혀 있었다. 그 후로그 자리에는 보오란 라넌큘러스가, 또 보란 소국이 꽂혔다.
뽈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가꾸고 매만진다는 형용사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영 소질이 없는 분야였다. 그래도 옆에서 보고 따라하는 중이다. 나와, 나의 마음과, 나의 신체와, 나의 물건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싶어졌다. 상처난 곳은 호호 불어주고 더러워진 곳은 깨끗히 닦아주고 싶었다. 그 무엇보다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아니, 주어가 결국 ‘나’이니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관심 없다. 위로 올라가고 싶지 않다. 그저 지금 이 자리에 가만히, 머물고 싶다.
‘지친 것 같다’는 말을 육성으로 들었을 때 맥이 탁 풀려버렸다. 나도 알아. 그래서 지친 마음을 돌보러 여기 온 거잖아. 하지만 기대했던 시간은 없었다. 끝없이 혼나는 기분이었고, 상대편에 앉은 사람은 나의 모든 말에 ‘당신이 틀렸다’라고 반박하며 외쳤다. 지금까지 비용을 매몰해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풀려버린 맥이 추슬러지지는 않았다.
오래 전부터 지방에 내려가서 살고 싶었다. 나고 자란 광주는 아니고, 좀 더 작고 나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도시에— 군산이라든가, 통영도 좋겠다. 그곳에서 80%의 성실함과 20%의 크리에이티브만 있다면 유지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요즘에는 목공수업을 기웃거리고 있다. 직업목수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 (최대 10년)이 필요하다는데, 나는 띄엄띄엄하는 걸 좋아하니 족히 6년은 걸려야 하나를 팔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꼭 배우고 싶다. 그리고 업으로 삼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순간 바로 티가 나는 영역으로. 그래서 그 일을 할 때면, 다른 생각같은 건 애초에 하지도 못하고 그저 성실하고 묵묵하게 하고 있던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영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