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사태선언 해제 후, 신주쿠에 다녀왔다
2020년 6월 1일 월요일
날씨 : 흐림+비 몇방울
기록자 : 야림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됐다. 다른 현은 이미 진작에 해제됐지만, 도쿄를 비롯, 내가 살고 있는 가나가와현을 포함한 4개의 지역에서는 가장 마지막까지도 눈치게임을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둘 수가 없었겠지. 모두가 외출을 자제하고 집안에 있는 동안 경제가 무너지고 있었으니까. 결국 여전히 감염자가 발생하고 있었지만 정부는 긴급사태선언을 단계적으로 해제했다. 8시까지 운영하던 가게들이 10시까지 영업을 할 수가 있게 되었고 쇼핑몰이나 백화점도 차차 영업을 재개하게 됐다. 임시휴업을 감행한지 2달만에 다시 가게에 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밖을 다니기 시작했다. 기념이랄 건 없었지만 나도 종종 친구들과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이게 됐다. 일주일 정도 전부터 겨우 생겨난 작고 소중한 일탈이다. 이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었으며, 외식이나 오프라인 모임을 갖는 일이 일탈이 되어버렸다.
"언니 요새 나 턴테이블이 너무 갖고 싶어.
그런데 온라인 말고 시내 나가서 직접 보고 싶다.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술을 마신 5월 29일,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후배 H가 말했다. 나도 분위기에 취해 대뜸 "그래 가자 가자! 나가자! 나도 마침 재료 살 거 있어" 라고 말해버렸지만 그날 실은 둘 다 서로에게 기대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언니도 재료 살 게 있다고 하니까' ... 'H가 턴테이블 사고싶다고 하니까' 라면서.
곧장 다음날인 토요일에 신주쿠에 나갈 생각이었지만 가려고 체크해 둔 매장들이 아직 영업을 재개하지 않았거나 정식 재개를 앞두고 임시휴업하는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일요일에 가기로 일정을 변경하는 중에도 '그러니까 그냥 가지말까'하는 말이 서로의 채팅창에 둥둥 떠다녔다. 그치만 실은 나가고 싶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내비치면서도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두렵지만, 걱정되지만, 질책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정말 나가고 싶었다.
일요일 오후 1시, H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왔다. 전날부터 뭘 입고 나갈지, 어떤 가방을 들고나갈지, 어떤 신발을 신을지, 향수는 어떤 걸 뿌리고 나갈지, 시계를 찰지 반지를 끼고 나갈지, 정말 많은 것들을 계획하고 상상했다. 바라던대로 옷을 입고 밖으로 나섰다. 이런 날을 위해 아껴둔 KF94 마스크를 하고서. 바깥은 나들이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자그마치 세달 만의 외출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개찰구로 향해 H와 함께 신주쿠행 전철에 올라탔다(우리동네에서는 환승없이 신주쿠에 갈 수 있다. 이 시국에는 신주쿠가 마지노선이다. 아직은 환승까지 해가며 외출을 하기엔 두려우니까). 주말 한낮인데도 전철은 한산했고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 여유롭게 앉아갈 수 있었다. 전철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이 생경해 아무말 없이 한참 창밖만 바라봤다. 오랜만에 전철에서 책도 읽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 우리는 때마침 신주쿠역에 도착했다.
신주쿠역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비할 데 없이 적은 수지만..) 가게에 들어찬 수많은 사람들, 버블티를 마시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의 모습을 구경하느라 걷는 내내 눈이 바삐 움직였고 걸음은 당연히 느려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의 일이라 두근거렸다.
디스크유니온에 들어가 가볍게 LP를 디깅했다. '크 역시 음악은 코로나도 이기는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LP가 담긴 상자를 뒤적이고 있었다. H는 몇 장의 LP를 '찜'해두었고 근처 다른 전자가게에 들러 턴테이블을 둘러봤다. 부피가 워낙 크다보니 구매할 것들을 정해둔 뒤, 다음엔 내 볼일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늘 내가 사야하는 건 종이 만들 때 쓸 나무 프레임과 새로 산 미싱에 쓸 재봉실이다.
신주쿠에 있는 아주 커~~~~다란 수예점에는 우리동네 수예점에서는 보지 못한 종류의 실이 너무도 많았다. 그것도 굵기별로, 제조사별로,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10평 정도가 그런 다양한 실로 가득 차있었다. 그런데 실을 고르면서도 자꾸만 마음에 조바심이 생겨났다. '빨리 보고 빨리 나가야해', '아무거나 살까' '무슨 색을 사려고 했었지' 온갖 두려움과 걱정과 긴장감에 머릿속이 새하얘져서는 나는 집히는 대로 실을 집어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H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바깥에 나와 돌아다니는 게 아직도 적응이 안되어서 나는 자꾸만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그러면서도 내 안에 악마는 H의 악마와 작당이라도 한 것인지 자꾸만 맥주 생각이 간절해졌다. 결국 우리는 베르크로 향했다. 오랜만에 맥주와 포크 아스픽크를 단숨에 먹어치웠다. 저런, 우리는 자연스럽게 2차로 어딜 갈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캐비넷에 턴테이블까지 넣어 두고서 두손 가볍게 우리는 대창을 먹으러 갔다. 막걸리와 빨간 양념을 묻힌 대창은 아주 잘 어울렸다. 자꾸만 불 아래로 기름을 떨구는 대창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불안함과 죄책감을 떨쳐낸 것일까. 우리는 기어코 3차까지 계획하기 시작했다. 조금 주변을 배회하며 괜찮아 보이는 곳에 앉자며 우리는 또 거리로 나섰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해방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주말다운 주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뜨거운 햇빛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가부키초의 활기였다.
눈에 들어온 가게는 가게 앞에 테이블을 내놓은 가부키초의 한 교자가게였다. 어차피 안주는 많이 못 먹으니까 교자랑 같이 간단히 맥주 한 잔만 하자며 걸터앉은 것이... 그렇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석 잔이 되고, 석 잔이 넉 잔을 넘어섰다. 진솔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퐁퐁 솟아났다.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전광판이 번쩍번쩍하고 연인들이 길을 지나고, 식당 직원들이 호객을 하고, 이상한 사람들이 몇몇 지나가는 뒤로 하늘이 빨갛게 타오르다가, 파랗게, 그렇게 까맣게 밤이 되었다.
캐비넷에서 턴테이블을 꺼내들고 다시 집에 가기 위해 플랫폼 앞에 섰다. 평소 같았으면 만원전철이었을텐데, 영락없이 텅빈 전철에 우리는 또 다시 아주 여유롭게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잠이 쏟아졌다. 헤드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다 노래가 끝난 줄도 모르고 꾸벅꾸벅 졸다가 깨기를 반복했다. 터널을 지나는 동안 건너편 유리창에 내 모습이 비쳤다.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말끔히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해야할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새벽 4시가 다 되었다. 피곤했지만 후회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신데렐라의 꿈같은 무도회는 끝이 났다. 잠에서 깨면 다시 외출을 자제하는 일상이 내 앞으로 찾아올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은 6월 1일이고, 월요일이고, 지도교수님 면담과 회사 전체회의가 있는 날이다. 과음으로 인해 아직 술이 덜 깬 것인지, 잠이 덜 깬 것인지 마치 어제의 일이 꿈같이 느껴졌다. H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나보다. 우리에게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신주쿠에 갈 날이 찾아올까? 신데렐라는 오늘도 무도회장을 꿈꾸며 잠에 들겠지. 오늘같은 날에는 왕자님이 아니라 내게 바깥에 나갈 기회를 줄 요정할머니 아니면 자크와 구스가 곁에 있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