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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Apr 28. 2019

망했는데, 괜찮아.

28/  작정에 잡아먹히지 않는 꿈꾸기



자, 그러니까 이 글은 작정하고 작정에 대해 쓰려는 글이다. -라고 '아 몰라 몰라' 하며 첫 문장을 써버리기까지 이번에도 참 오래 걸렸다. 마감 기한 내 글을 써야 한다는, 노트북보다 더 무거운 목적을 들고 이 카페 저 카페 전전하다 보니 커피값도 참 많이 깨졌다. 일단 작정하고 쓰려니 모든 글의 시작이 어렵다. 말하자면 글과 글 사이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글마다 조금씩이라도 새로웠음 좋겠다. 첫 문단의 흥미 요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갈수록 보다 복잡하고 깊은 이야기를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논리적이고도 감정적으로 풀어내고 싶다. 그래서 읽는 이가 아, 하며 이해하고 허! 하며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토스트기에서 갓 빠져나온 빵처럼 '겉바속촉'한 말투로 바스슥 사사삭 써내리고 싶다...!


당연히! 그런 것이 현실에서 쉽게 될 리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목표라기보다는 작정이다. 이렇게 작정하고 쓰려니 모든 글은 숙제다. 아침에 눈 떠서부터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만을 반복하며 눈썹 사이에서 진종일 온몸을 쪄누르는 숙제. 하기 싫어 죽겠고, 도망치고 싶어 죽겠다. 매일 머리 둘 달린 미친 용에 노트북 하나 달랑 들고 맞서는 심정으로 책상에 앉는다. 얼마를 버티든 대부분의 시간은 새까만 후회만 남기고 불타 없어진다. 나를 불태운 글이 밉다. 이러다 오늘도 한 글자도 못 쓰면 어떡하지. 막상 뭐라도 썼는데 다 지워버리고 싶으면 어떡하지. 혹은 아무도 공감하지 못할 X소리를 잔뜩 써놓았으면 어떡하지. 시작도 못하고 계속 주물럭거리기만 하는 동안, 갓 구운 토스트를 꿈꿨던 글은 점점 겉은 눅눅, 속은 축축한 것이 되어 간다. 하기 싫어 죽겠고, 도망치고 싶어 죽겠다.


나는 대체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며 셀프 고문을 하는가? 그건 이 '글 쓰는 일'이 내 꿈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나는 그저 시작해버리질 못하는가? 그것 역시, 이놈의 것이 내 꿈이기 때문이다.



*

꿈이라는 것에는 양면성이 있다. 그 한 글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 안 가득 솜사탕을 베어 문 듯 포실포실 달콤한 기분이 되지만, 때로 아틀라스의 하늘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그 솜사탕을 떠받치느라 인생에 담이 올 지경이 되기도 한다. 만약 단어의 무게를 잴 수 있다면, '꿈'이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는 아마 측정 가능한 범위를 한참 넘어선 것일 테다. 세상은 끊임없이 개인이 가져야 할 꿈의 형태와 속성에 대해 이런저런 모범 값을 제시해 왔고, 그 결과 우리에게 꿈이란 늘 '이런 것이어야' 하거나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되는, 뭔가 심각한 의미와 사회적 타당성이 필요한 어려운 주제가 되었다.


그 어려움이 어느 정도기에신입 연수 때 적어 낸 입사 동기에 '꿈을 찾아서'라 적었다는 이유로 나는 연수원 선배들이 '무서워하는' 후배 1호-무슨 여기서 꿈씩이나 찾아 쟤 뭐야 무서워-가 되기도 했다. 참, 생각해보면 심지어 우린 내 꿈이 꿈이라 불릴 만한 것이 맞는가를 학교에서 '검사' 받은 적도 있다! '본인 장래희망'과 '부모님(이 원하는 나의) 장래희망'을 표 안에 나란히 적고, 부모님 도장을 쾅 받아 갔다. 1차로 엄마의, 2차로 선생님의 확인을 받으며 내 꿈이 비로소 '꿈의 자격'을 획득할 때까지 조정과 합의를 거쳤던 기억이 난다.


꿈을 이루는 것 이전에 정답 같은 꿈을 찾는 것에 우선 굉장한 힘을 뺐기 때문에, 그 숭고한 것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걸음엔 이제 엄청난 부담이 실리게 됐다. 자, 엄청 멋지게 이뤄 보이겠다! 작정. 아, 망하면 어떡하지? 걱정. 물론 정말 그것이 망했을 경우에 어떡할까를 진짜로 생각해서 하는 말은 아니다. 어떻게 찾고, 검증받고, 결정한 꿈인데, 망하면 큰일이 나게? 꿈에 관한 한, 망하는 경우의 수는 없다.


씁쓸한 것은, 그렇게 짝 쪼인 마음을 가지고 달리니 꿈을 꾸는 동안에도 생각보다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거다. 자꾸 불안에 발이 걸리고, 작정하다 현타가 오고, 걱정에 미리 주저앉는 일이 생긴다. 그러다 불쑥, 꿈이 미워지기까지 한다. 내 시간을 불태워버리고, 내 평화를 빼앗고,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그놈의 것. 왜 내가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 확 씨 그냥 꿈 없이 살면 뭐 큰일이 나냐?


관자놀이부터 손톱 끝에 붙은 신경까지 힘을 꽉 주고 걷는 '꿈길' 위에서, 종종 꿈을 이루고 싶다는 열망은 절대 망하지 않겠다는 작정에 잡아먹힌다.



*

꿈과 나와의 관계, 그냥 좀 편해질 순 없을까? 꿈이라는 걸 마음속에서 너무 신성하게 만들다가 지레 지치지 말고, 부담 없이 그냥 '좀 많이 하고 싶은 것' 정도를 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걸까? 예를 들어 우리가 취미를 대하는 자세처럼 말이다. '나는 꾸준히 기타를 친다, 나는 공기 좋은 저녁이면 조깅을 나간다' 정도의 느낌으로, '내가 꾸준히 하고 싶었던 게 하나 있지, 내겐 시간 날 때마다 꾸고 있는 꿈이 있지' 할 수는 없을까?


입만 열면 '아 운동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달고 살던 내게 친구가 해준 말이 있다. 하루에 스쿼트를 딱 한 개만 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일단 그것을 실천해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보라고. 뭐, 실현 가능한 목표를 잡으라는 이야기인가 싶어 일단 시키는 대로 해 보았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단 한 번도 하루에 스쿼트를 한 개만 하겠다는 계획을 지킨 적이 없다. 대신, 어느 날은 열 개, 컨디션이 좋으면 스무 개씩 매일 스쿼트를 하고 있게 되었다. 처음 한 개의 스쿼트는 너무 어이없이 쉬웠다. 어이가 없어 두 개를 했고, 할 만해서 세 개를 했다. '매일 아침 3km 달리기'라는 늘 머릿속에만 있던 목표에도 적용을 해 보았다. 오늘은 딱 1km만 뛰어야지. 뛰다 힘들면 그냥 걸어야지. 그랬더니 나는 2km, 3km를 걷지 않고 뛰고 있었다. 일단 뛰기 시작하면 어떻게든 처음 목표보다는 단 1m라도 더 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처음의 1km가 내가 '아침 달리기'를 꿈만 꾸었을 때 상상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쉬웠기 때문이었다.


말이 약간 샌 것 같지만 결국 작정에 대한 이야기다. 작정을 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무엇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에 대한 시작점 자체를 굉장히 높게 잡는다는 뜻이다. 스쿼트 한 개는 당연히 스쿼트 열 개가 아니므로 마음에 차지 않고,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것 같지만 사실 한 개를 해야 열 개를 할 수 있다는, 어이가 없을 만큼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꿈이라는 거대한 목표 앞에서는 지레 잊는다. 매일 스쿼트 스무 개를 하고, 매일 아침 3km씩 달리는 꿈을 이룬 멋진 내 모습만을 생생히 그리느라 그 목표에 시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는다.


나를 무언가 '하고 있도록' 만든 스쿼트 한 개는 망한 것이 아니다. 아니, 망한 것이어도 괜찮다. 한 개에 그칠지라도 '해야 되는데'로 지샌 수많은 지난날들보다는 더 내 꿈에 가깝다.



*

잔뜩 작정하고 시도하기에 지쳐 꿈을 포기해버리는 것보다 더 속상한 것은, 준비 운동처럼 작정만 실컷 하다가 아예 시작을 못 하게 되는 경우다(내가 글 하나를 시작하는 데 오천 년이 걸리는 것처럼!). 도전의 문턱에서는 언제나 그놈의 ‘작정’이 문젠데, 이 허들을 넘기 위해서 나는 우리에게 [ 망했는데, 괜찮아. ] 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그것이 망할까 봐 전전긍긍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단 시작을 하고 망했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다. 망했는데 어떻게 괜찮아?! 생각해보면 나름 망했지만 괜찮을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1) 알고 보니 진짜 괜찮아서 (못 이뤄도/가져도 상관없더라) 2) 이번에는 망했지만, 나는 계속 도전할 거니까 3) 생각해보니 그것 말고도 내 삶에 중요한/소중한 다른 것들이 있어서 4) 의외로 조급할 필요가 없던 일이었어서 5)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등등.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럴수록 그것이 망해도 괜찮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단 시작을 하자.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최소한 망해 보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단순히 '센 멘탈'이라기보단 매우 논리적인 마음의 힘이다. 나를 계속, 오래, 취미처럼 꿈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단단한 마음의 힘.

우리가 살아온 삶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산다는 건 건너기 시작해야 비로소 하나씩 생기는 징검다리다. 살아보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그것의 온전함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일단 디뎌 보자! 딛고 난 뒤 헛디뎠음을 깨닫는다 해도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깊이 바지 자락을 적실뿐이다. 게다가 그것은 곧 마를 테니까. 


새로운 도전들을 앞두고, 망하지 않는 편이 당연히 좋겠지만 나는 내가 망한 순간에도 내가 망했다고, 그런데 괜찮다고 말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책이 내 생각만큼 멋들어지게 안 만들어지면 어떤가. 그래서 망했다고 느끼면 어떤가. 나는 여전히 (똥망한 글이라도) 오래, 계속, 취미처럼 글 쓰는 사람일 테다.


꿈이 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서, 남이사 꿈이란 것에 대해 무어라 정의하든, 내 꿈과 천천히 나란히 걸어 보자. 그런 의미에서, 나는 더 눅눅해지기 전에 이 글을 이만 발행해 버리련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10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tes.com/news/jenga-tower-or-weeble-confidence-ofsted-waning-wobbly-watchdog-really-good-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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