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의 끝은 어디인가

마흔, 그 막막함에 대하여

by 조이 Joy

내 이름은 수미()이다. 닦을 '수' 아름다울 '미'. 80년대 태어난 사람 치고는 이름에 받침이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아~주 조금 세련된 이름이라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름에 들어간 한자가 늘 눈에 한 번 더 걸린다. 보통의 수미들은 빼어날 '수' 아름다울 '미'를 쓴다. 하지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특별히 이름에 '닦을 수'를 넣어주셨다. 평생 아름다움을 갈고닦으라는 의미라는데.. 그래서일까? 삶의 변곡점마다 마주치는 허들을 넘으려 오늘도 나는 아름다운 인생을 갈고닦기 위해 백조처럼 열심히 발을 굴리고 있다.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마흔이 지난 지금 희미하게 정의한 바로는 원하는 대로 선택하고 그것을 위해 살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삶이다.


나는 두 아이의 워킹맘으로 풀타임 근로자에 일주일에 한 번 새벽 출근 (6시), 가끔씩 저녁 (술)약속을 소화하고 있다. 남편은 그야말로 남의 편이라 육아 분담률 십프로 10% 이하, 양가 할머니와 시터님들이 동원되었지만 여전히 주 양육자인 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회사에도 미안하고 억울한 감정들이 목구멍까지 차 있던 터였다.


처음부터 내 인생의 옵션에 창업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선택지였다. "공무원 아버지 가정적인 어머님..." 전형적인 자소서 첫 문장과 같은 집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자란 평범한 대한민국의 1인으로 초등학교 , 중학교, 고등학교를 무려 12년 개근으로 착실하게 다닌 후 인생의 커다란 목표인 줄 속았던 대학에 입학 졸업, 어렵다지만 취업에도 성공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어느 진부한 동화 속 이야기 처럼 진짜 이야기는 왕자와 결혼을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찐'이라는 것을 그때는 왜 몰랐을까? 그동안 고민 없이 남들이 맞다는 길의 허들을 넘느라 이름처럼 열심히 닦고, 정진했는데 돌아오는 물음은 당황스럽게도 "아.. 이것이 내가 원했던 것인가?"였다.


결혼 전, 정확히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남들과 발맞춰 뛰느라 바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거대한 집단에 속한 회사원으로써 발 맞춰 가는 것이 미묘하게 불편해졌다. 그것이 이 새로운 길, 가보지 못한 미지의 길의 시작점이었다. 내가 나(애 둘의 엄마이자 직업인)로 사는 걸 부정하고 다른 대부분의 남자 동료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순간을 발견할 수록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조금씩 차올라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실망의 두께가 제법 두텁게 쌓여 견디기 힘들 무렵 나만의 방식을 찾으려 미친 듯 애를 썼고 '갑분' 창업의 시작이 되었다.


다행이 나의 주변에는 우아한 백조처럼 각자의 인생의 허들을 잘 넘어온 여성 동지들이 많았는데 한결 같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만나면 육아와 커리어를 어떻게 병행해야 하는지, 그 부대낌에 대하여 수다를 끝없이 늘어놓았지만 모두 답이 없던, 고구마를 10개쯤 삼킨 답답함을 넉두리로 끝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싱가포르에 거주중이던, 자신만의 허들을 우아하게 잘 넘는 것 처럼 보이던, 고등학교 방송반 친구인 Jay와 무모하지만 한없이 매력적인 선택지 처럼 보이는 창업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창업은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는 다소 파격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 행보였는데, ENFP 재기발랄한 활동가이자 성실한 낙관주이자인 나와 비슷한 성향일 것이라 추측되는 Jay와 합이 맞아 순식간에 무섭지만 신비롭고 그 끝을 알 수 없이 매력적인 창업의 세계로 풍덩 발을 밤그게 되었고, 다시 '찐'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는 나이라는데 여전히 막막하고 걱정되고 새롭다. 40이 되어서 달라진 점은 이제 내가 만든 허들을 넘고 있다는 점이다. 40 평생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라온지라 남이 만든 허들을 넘는 것보다 훨씬 다이나믹 하고 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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