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럽고 아름다운
8살에 만나 스무 살까지 함께해온 친구가 내게 말했다.
"누군가를 처음으로 좋아하게 되었어 정말 말 그대로 심장이 간질간질거려"
여태까지의 얼마 되지 않은 연애는 언제나 누군가 그녀에게 고백한 경우였다.
"걔가 나를 좋아해?"로 시작했던 연애.
그런 시작으로 사귀다가 결국 사랑이 아닌 것을 깨닫고 헤어졌던 그런 연애.
그렇게 내가 지켜봐 온 그녀의 이전 연애는
10대의 풋풋하고, 그리 깊지는 않은, 짧은 연애였다.
그것이 당연했던 지난 경험을 지나 우리는 스무 살이 되었고
친구는 스무 살의 싱그러운 나이에 첫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고백을 하고 싶은데 못하겠다고
그 사람을 볼 때마다 바보같이 웃어버려서
아마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쉬지도 않고 나에게 고민을 쏟아내는 친구의 표정은
지나치게 걱정스러우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그녀를 10년 넘게 봤는데도 처음 보게 된 표정이었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어떤 드라마의 마지막회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마다의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첫사랑의 그가 아름다웠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시절의 첫사랑엔 영악하지 못한 젊음이 있었고
지독할 만큼 순수한 내가 있었으며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그 젊고 순수한 열정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무모하다 영악한 계산 없이 순수와 열정만으로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는 결국 실패한다
하지만 그래서 극적이다.
다시는 가져볼 수 없는 체온과 감정들로 얽혀진 무모한 이야기들
첫사랑은 그래서 내 생에 가장 극적인 드라마다."
(응답하라1997. 16화 중에서)
스무 살의 그녀는 지금 생에 가장 순수하고 극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10년 넘게 본 그녀가 첫사랑을 맞이한 모습을 보게 된 지금 나는 기분이 참 오묘하다.
부러우면서도 왠지 뿌듯한, 그런 느낌.
나는 그녀에게 어서 고백을 하라고, 그리고 만약 사귀게 되면 나를 소개시켜달라고 장난스레 말했다.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까지 간질간질하게 만든 나의 친구를 응원한다.
싱그러운, 그리고 아름다운 그녀의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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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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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몇개월이 지난 후
기쁘게도, 그녀의 첫사랑은 이루어졌다.
그녀의 짝사랑이 이루어지길 소망하며 썼던 나의 글이 조금이나마 그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자부해본다.
언제나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까지 행복해진다.
아직도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그들의 사랑이 오래도록, 아름답게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