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 임신인 채로 1주일마다 지속되는 피검사, 더디게 떨어지는 수치,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 자꾸만 펑 하고 터져서 신랑과 다투게 된다. 어제도 그랬다.
듣고싶지 않았던 말을 들었을 때 그 실망감과 좌절감을 숨기는것이 점점 어렵다. 내 몸 안에 있는 슬픔과 분노가 터져서 내가 조각조각나서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그랬듯 자꾸만 안좋은 버릇이 튀어나온다. 머리를 뜯고, 머리를 치며 나를 못살게 군다. 아니 차라리 머리에 피가 나면 아파서 잊으려나, 하는 사람처럼 군다. 그 외에 건강한 표출 방식을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참아온 시간들이 속을 썩이고 갉아먹었다. 어떻게든 꺼내고 싶은데 어떻게 건강하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표현해서 좋을게 아무것도 없다는걸 이성적으로 잘 아는데도 고쳐지지 않는다. 참을 땐 또 그 때 뿐이고, 한계에 다다랐을때는 결국 이런식으로 자해하며 터져나온다.
어딘가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고 화를 내고 싶은데 그럴 곳이 없다. 그러니 나를 때린다. 나는 내가 때려도 나한테 심하게 뭐라고 하지도 않고, 아픈것도 내 자신이 아프고 마는거니까.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아프고 힘들다는걸 조금 더 알았어야했다. 머리를 칠 때 옆에 있는 사람도 끔찍하게 힘들다는걸 알고있지만, 버릇 고치기가 힘들다. 그 순간은 모든 감정과 행동의 제어능력이 멈춰버린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어버린다. 변명이다.
신랑은 본인도 힘든데 나의 아픔만 본다고 이기적이라며 나를 원망했다. 옆에서 힘들어 하는걸 보는 것도 지옥같이 끔찍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예 안된다고 판정 받은 것도 아니고, 딱 한번 안된거라고, 운이 없었던거라고, 죽을 일도 아닌데,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우울해 해야겠느냐, 이럴일이냐, 왜 자꾸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우리를 불행하게 끌어내리냐, 라고 말했다. 다 맞는 말이었다.
37년 인생에 힘든 일들이 너무 많았는데 이제는 그만 좀 행복하게 살고싶다고 했다. 도대체 애가 뭐냐고. 애를 낳는게 그렇게나 힘들면 그만하라고 했다. 나의 성격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말에 울컥 공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격이 나갔다. 나의 방어기제가 이거구나, 순간 알았다. 너무도 익숙한 상황이었다. 서로가 다투고, 언제나 상대방(부모님)은 나의 성격을 문제삼아 내가 문제라고 했다. 본인은 다 맞고 문제가 없는데 내가 문제라고 했다. 내가 이상하고 부정적인 아이라고 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저런식으로밖에 생각을 못하냐고 비난했다. 어릴땐 진짜 내가 그렇게 쓸모없는 쓰레기인줄로 받아들였다. 부모라는 사람이 그렇게 나를 규정하는데 나 까짓게 뭐라고 하겠는가.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힘이 생겨서인지, 나도 자꾸만 공격하는 말들에 반격을 하게 됐다. 더 날카롭게 말이 나갔다. 마음 속에서는 내가 그렇게 표현해서 미안해, 오빠도 힘들었구나, 라고 메아리처럼 말들이 왕왕 울리는데 도무지 입 밖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그런 내가 한심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다. 그냥 우리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 지금 이런 대화를 왜 입에 올리며 서로 날을 세우고 다투며 울부짖어야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냥 우리 두사람 모두 너무 힘들어서, 지금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처를 입히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병원에서 오는 전화를 받고 내가 너무 과하게 좌절하고 반응해서, 남편도 참을 수 없이 힘들었던 것 같다.
미안했다.
내 건강하지 못한 표현방식과 참을 수 없는 자기제어력때문에 힘들게했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안아주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속 안에있는 모든 말들을 종이 위에 토했다. 해결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 몇시간을 내리 글로 쓰고나면 다 해소가 되었는데, 전혀,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늘은 해소도, 참는것도, 한계였다. 미안한 감정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내가 지금 그렇게 힘든 과정에 있는데, 그거 하나 못받아주고 내 성격을 비난해야했는지 서운했다.
남편이 뭐가 힘들겠느냐는 생각도 들었다. 매번 약먹고, 주사맞고, 병원에 오가고, 수없이 피를뽑고, 회사에 앉아있다가 전화한통으로 결과를 통보받고. 호르몬에 춤추는 몸 상태를 이겨내면서 회사에 다니고, 많은시간 괜찮은척 꾹 눌러 참고,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갓난아이의 귀여움을 이야기하며 나를 흘긋 쳐다보는 무례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내가 제일, 내가 더 힘든데 네가 뭘 아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크게 싸울때면 대부분 내가 먼저 사과하고 시간이 지나면 풀렸는데, 오늘은 먼저 다가와서 사과해주길 바랬다. 그렇지 않다면 집을 나가서 사라지고 싶었다. 갈 곳도 없지만 일단 짐을 싸고 나가서 어디라도 가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의 힘듦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있기 힘들 것 같았다.
나의 좁은 그릇과 찌꺼기처럼 남은 일말의 여유로는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듬고 나의 상처도 치유하기엔 부족했다. 살아오면서 대부분 이럴 때 마다 내 자신의 부족함을 자책하고 나 자신을 욕하곤 했지만 이번엔 그냥 이기적이라는데 그래, 더 이기적이지뭐. 이기적으로 살고싶었다. 나도 나를 챙겨달라고, 나 힘들다고 목놓아 울면서 소리지르고싶었다.
너무나 고맙게, 남편이 먼저 다가와주었다. 저녁 내내 다투고 밥 한술 뜨지 못했는데, 그동안 내가 먹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순두부 그라탕을 예쁘게 차려서는 나를 톡톡쳐 불러내어 안아주었다.
그가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조금 더 보듬어 주고 감싸주고 토닥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직도 부족한 사람이라 힘들어 할 때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이야기해줘야할지 잘 모르겠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나 때문에 힘든 일을 겪게 한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진심어린 사과의 말들에 고마워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도 잘한게 없어, 나의 감정들을 제어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표현방식이 좋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도 옳지않다는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고 속상하다 털어놓았다. 나의 행동으로 인해 많이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들이 너무도 행복하다고 했다.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이미 충분히 너무 행복해서, 아이가 없어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한 말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함께 행복한 삶을 살자고게,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서로가 등을 돌렸다가도, 다시금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우리 부부라는 것이 참 다행이었고, 참 감사했다. 크게 다투었다가도, 금방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 참 다행이다. 수 없이 할퀴어진 상처를 온 몸에 가지고 만난 우리 부부지만 앞으로 우리의 인생에 행복한 일들이 가득해, 그 상처들을 치유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지금 진행중인 진료도 부디 무사히 무리없이 마무리 되고, 그 다음에 주어지는 기회에 새 가족을 맞을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