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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Aug 15. 2022

조개는 먹지 않지만 봉골레는 좋아한다

깊지만 우울에 먹히지 않는 삶




조개는 먹지 않지만 봉골레는 좋아한다.


원체 해산물을 못 먹는 나에게 새우나 오징어 대비 조개는 뭐랄까, 너무 바다 그 자체다. 물컹한 식감도 싫고 비린내도 심하다. 그러나 조개에서 우러나온 감칠맛이 베이스인 봉골레는 좋아한다. 은은한 짠맛, 마늘과 올리브 오일이 어우러진 소스, 굵직한 링귀니면 - 이 조합을 입술에 잔뜩 묻히며 먹는 기쁨이 상당하다. 화이트 와인까지 곁들이면 최고고.


점심때 봉골레를 시키고서 조개만 골라 다른 접시로 덜어내다가 생각했다. 이렇게 눈에 보이는 덩어리를 치워도 뒷맛이 은은히 배어 나와 깊은 맛이 느껴지는 요리란 좋구나. 바다 재료가 들어갔구나 아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면서, 해산물 초짜인 나에게도 상냥한 요리.





조개. 그러고 보니 한창 마음이 어려울 때 친구가 해준 얘기가 있다. 바다에 빠지면 조개라도 주워오라고. 숨 딱 참고 바닥에 다닥다닥 붙은 아이들을 건져 수면으로 가져오면 가리비일지, 진주일지 모르는 일 아니냐고. 또 다른 친구는 말했다. 바다가 무서우면 안전히 해변가에 앉아서 일렁이는 윤슬만 봐도 괜찮지 않겠냐고. 조개는 해변으로 쓸려오기 마련이라고. 누가 더 행복하게 사는지는 모르겠고 그런 비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저, 내게는 가끔 그렇게 슬픔과 행운에 대해 바다를 빛대어 설명해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요즘 어떤 방식의 조개 사냥을 하고 있을까. 깊은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며 조개라도 건지려고 애를 쓰던 시기는 다행히 지나쳐온 것 같은데, 수면으로 떠밀려온 조개들은 너무 작고 약하다.




한창 바쁘게 움직이도 가끔씩 가만-히 멈춰 서면 텅 빈 공간에 떠있는 것 같다. 깊이 발을 담근 것도 아니고, 나는 것도 아니고, 어딜 향해가고 있지도 않다. 광활한 곳에서 더 깊은 어둠으로 미세하게 추락하는 것 같기도 하고, 무의미한 모양으로 영원히 멈춰있는 것 같기도 하다. 큰 소리를 내던 슬픔들은 애써 거둬냈지만 그러고 나니 빈 공간이 너무 크다.


믿는 사람에게 두런두런 말한 적이 있다.

딱히 괴로운 일은 없는데, 공허해요. 내 테두리가 흐려지는 것 같아요.

말하고 나니 그 말의 차가운 울림이 더 와닿았다. 그렇구나, 나는 비어있는 것 같구나.


그녀는 말했다.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것 말고, 무엇을 원해요?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나의 조그마한 불행 속에서 난 그저 반대를, 행복을, 맹목적으로 갈구했던 것일까. 동굴에 갇힌 사람에게는 빛이 가장 간절하다. 무엇이라도 보고 자각할 수 있게 한 줄기의 빛이라도 있었으면 - 그저 간절히 바라고 바래서, 원하는 것은 하나로 좁혀진다. 그러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빛은 사방에 있지만, 어둠 역시 여전히 도처에 즐비하다. 그 때 물어야 한다. 나는 이제 무엇을 원하나?


불행 중 다행이도 내가 짊어진 모든 무게가 선연히 느껴질 수록 대답은 명확해진다.

나를 대할 때 사람들이 가볍고 기뻤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그렇게 대했으면 한다. 

풍랑을 겪고 왔어도 뭍으로 올라오는 길에 이미 물은 다 말랐고, 대신 살갗에 모래 같은 소금 알갱이만 조금 붙어있었으면 좋겠다. 아픔을 품고 입을 앙 다문 조개들은 다 덜어내고, 아스라한 바다 내음만 조금 풍기며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때때로 공허한 나를, 사람이 필요하고 또 사람에 지친 나를, 인생을 힘차게 살고 있지도 편히 쉬고 있지도 않은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끓인 봉골레  접시 마냥 말이야. 행복이라는 만찬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사 끝에 뿌듯하게 배를 두드릴 수 있게 해주는 봉골레.

어느 잔잔한 일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차분한 숨을 내쉬어본다. 공허함, 이 또한 훌륭한 요리 재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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