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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견과상념 May 06. 2022

구글 사내 면접에서 떨어졌다.

서른엔 뉴요커가 될거야

'서른엔 뉴요커가 될거야' 0편은 한국에서 썼는데 1편은 뉴욕으로 넘어오고도 열흘이 지난 이 시점에 시작하게 된 이 게으름...과연 이 글을 발행할 때는 며칠이 또 지나있을까. (+중간에 끊었다가 다시 이 글을 이어가는 지금, 세 달이 지났네^^^)


 지난 글에서 언급한 다양한 계기, 거기에 코로나로 인해 삶의 다이내믹스가 극도로 제한된 상황이 맞물려 2021년, 기필코 뉴욕으로 가겠다는 욕망이 정점이 다다랐다. 그리고 작년 1월부터 부지런히 사내 커리어 사이트에서 잡 써칭을 시작하고 여러 포지션에 지원했는데, 어디 첫술에 배부를 수 있으랴. 구글 안에서 이미 두 번 무사히 팀을 옮겼었지만 해외 포지션에 도전하며 1차 면접 후 보기 좋게 떨어진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느낀 점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0. 잡 써칭(Job-searching)을 해보자

 구글은 기본적으로 인사이동이 하달식이 아니라 개인이 직접 원하는 팀을 찾아갈 수 있는 구조이다. 덕분에  내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 지원하고 면접을 통과하면 해외 오피스여도 비교적 쉽게 옮겨갈 수 있었다. 실제로 같이 서울 오피스로 입사했지만 이미 싱가포르, 일본 등 가까운 아시아의 나라에서 2-3년 정도 경험을 쌓고 온 동기들도 있었고, 가까운 팀에서 일하는 동료들이 실리콘밸리의 본사, 혹은 미국 내 다른 주요 오피스로 옮겨간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 주에 한 번 씩 꼬박 리크루팅 사이트에 들어가 나름대로 성실하게 써칭한 결과 마침내 내 가슴에 꽂힌 포지션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Brand Planner'롤이었다. 그것도 글로벌 유튜브 브랜드의. 아 이 얼마나 섹시한 잡인가! 내가 유튜브라는 거대한 브랜드를 무려 플래닝씩이나 한다니! 타이틀이 주는 매력에 쉽게 넘어가, 나는 직무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이거다! 하는 생각에 나름대로의 조사를 하고는 마침내 지원 버튼을 눌렀다.



1. 인터뷰 준비를 해보자



 그리고 다음 단계로 활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직무를 자세히 읽어보니 유튜브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중 특히 '광고주'를 향한 마케팅, 즉 광고 마케팅 영역이어서 우선 한국에서 비슷한 직무를 하고 있는 분들께 무작정 1:1 대화 신청을 해서 이것저것을 여쭈어보았다. 그 대화를 통해 적어도 광고 마케팅팀에서 어떤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지, 어떤 역량이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기본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관련된 팀과 직무에 대해 좀 더 본격적으로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YouTube Ads marketing team, YouTube Ads marketing strategy 등으로 키워드를 바꿔나가며 열심히 타자를 두드렸고, 그 결과 읽어볼 만한 꽤 많은 양의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틈나는 대로 그 리소스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요새 강조하고 있는 유튜브 광고 상품은 무엇인지, 광고주에게 어떤 세일즈 내러티브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있는지, 광고 마케팅팀에서는 언택트 시대에 어떻게 마케팅을 전개해나가고 있는지 등등...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나의 패착이었다. 


2. 인터뷰를 봤다. 그리고..?


구글에서 면접을 통해 파악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분야 중 'Role Related Knowledge', 소위 RRK라고 하는 분야가 있는데 이 RRK를 통해 지원자가 해당 직무 혹은 산업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본다. 나는 근 몇 년 간 콘텐츠 쪽에서 일해왔고, 직무 경험도 로컬에 치중되어 있기에 글로벌에서 어떤 내러티브로 유튜브 광고 상품을 마케팅하는지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게 1순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은 팀에 조인하고 나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특정 분야에 대해 어떠한 팩트 혹은 히스토리를 잘 알고 있다는 건 그 사람의 관심도나 성실도의 지표는 될 수 있겠으나 업무 능력과 연관성이 높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내가 면접에서 맞닥뜨린 질문은 내가 예상했던 유튜브의 광고 마케팅 방향성 등의 미시적인 질문이 아닌 좀 더 본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 거시적인 케이스 질문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Q: 네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뭐니?

A: 어.. 음..(예상치 못한 질문에 1차 당황)  나 요새 운동 좋아해서 나이키랑 룰루레몬?

Q: 그렇구나. 그 브랜드가 그럼 어떻게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다고 생각해?

A: (나는 그냥 브랜드 네임밸류 보고 입는 건데..!) 음 룰루레몬은 좀 고급화 전략을 쓰는 것 같아. 그런 고급화 전략을 통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자극하고... 음 나이키도 뭔가 되게 athletic 한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본인이 athletic 하게 보이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맞는 브랜드인 것 같아..(이 대답도 매우 구리지만 이보다 더 횡설수설함)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난이도 있는 질문도 아니고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구조화해서 생각하면 훨씬 더 잘 대답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마치 rabbit hole에 빠진 것처럼 유튜브와 광고 비즈니스에 대해서만 잔뜩 준비를 해간 터라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돌이켜보자면 대강 이렇게 대답할 수 있지 않았을까


A: 룰루레몬은 확실히 다른 운동복 브랜드와 다르게 고급화 전략을 매우 잘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해. 한국에서는 룰루레몬이 '요가복계의 샤넬'이라고 표현되는데 룰루레몬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이미지를 추구하는지를 한마디로 잘 표현해주는 것 같아. 이런 하이엔드 이미지를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오프라인 리테일 매장도 백화점이 같이 있는 몰이나 주요 핵심 상권에만 입점하거나 단독으로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 등을 만들어서 브랜드가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매장의 위치를 통해서도 표현하고 있어. 이런 포지셔닝은 가격전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데 룰루레몬은 다른 브랜드와 다르게 세일도 자주 하지 않고 하더라도 정기적으로 정해진 시즌에만 하고 있어. 중저가 브랜드가 자주 1+1이나 심지어 1+1+1 세일, 이벤트를 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이렇게 고정적인 가격대를 유지하는 것도 브랜드에게 고급화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한몫을 하고 있어. 


3. 인터뷰도 망했지만 한 가지 또 간과한 사실은


 그렇게 국밥 말아먹듯 인터뷰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딱히 아쉬울 것도 없이 당연하게도 1차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 해외 트랜스퍼에 대해 보다 본격적으로 알아보다가 깨닫게 된 점은 내가 소위 말하는 '네트워킹'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네트워킹이라는 개념과 범위가 상당히 모호하긴 하지만 내가 느낀 바에 따르면 단순히 누군가와 얼굴을 트고 친분을 쌓는기보다는 1) 나의 핵심 직무는 아니더라도 여러 팀과 협업할 수 있는 기회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2) 그 기회를 통해 얼마나 좋은 성과를 보였는지, 3) 그 성과를 얼마나 널리 널리 알렸는지를 통해 착실히 presence를 쌓는 일에 가까웠다. 


 괜찮은 포지션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그 팀과 가깝게 일했던 사람에게 기회가 먼저 공유되었고 좋은 트랙 레코드를 쌓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리쿠르팅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도 지금까지 세 번 팀을 옮기면서 아예 접점이 없는 팀으로 간 적은 없었고 적어도 그 팀과 가까운 팀에셔 일을 했거나, 그 팀의 주요 아젠다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하는 등의 가교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니 내가 지원한 직무에도 높은 확률로 아마 어떤 식의 접점이라도 있는 사람이 지원했겠고 그중에 한 명쯤은 그간의 성과를 통해 일종의 네트워크를 구축해 쉽게 우선순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접점도 없었던 내가, 그것도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뉴욕의 포지션을 무턱대고 지원한다는 것 자체가 인터뷰를 끝장나게 보지 않는 이상 애초에 잘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이었다. 해외 트랜스퍼에 대해 지식을 쌓아나갈수록 그때의 내가 무식해서 용감했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았다. 


 물론 처음부터 방향성을 명확히 잡고 원하는 분야의 프로젝트를 해나가는게 쉽게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장기적인 목표 (ex. 특정 직무/산업군으로 이동, 특정 국가로 이동) 가 있다면 그 목표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가지 방향성 중 하나에라도 발을 걸쳐두고 거기서부터 서서히 나의 presence와 성과를 통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이 실패의 경험이 내가 나의 경험과 역량을 기반으로 포지션을 찾아나가고 또 올바른 방향으로 인터뷰를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뻔하디 뻔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달까. 


 이 실패기를 쓰는데 (게을러서) 참 오래도 걸렸다. 다음은 이 실패를 딛고 이뤄낸 성공기를 써야 할 텐데... 그 글은 언제쯤 완성되려나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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