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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견과상념 Jan 01. 2022

뉴욕을 동경하게된 이유

서른엔 뉴요커가 될 거야

서른엔 뉴요커가 될 거야

 이 년 전, 그러니까 스물여덟 살 여름에 불현듯 마치 계시를 받듯이 떠오른 생각이었다. 


서른엔 뉴요커가 될 거야!

 그리고 2021년, 딱 서른이 된 해 마침내 뉴욕에서 오퍼를 받았고 2022년 1월 말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목적지만 있고 경로는 없었던, 외마디 외침과도 같았던 나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내가(교환학생 1년 제외) 어떻게 뉴욕으로 가게 되었는지, 뉴욕으로 가겠다고 맘을 먹게 된 동기부터 비행기표를 결제한 순간까지의 여정을 몇 편의 글로 담아보고자 한다. 


시작하기 전에 나에 대한 백그라운드를 몇 개 먼저 공유해보자면 아래와 같다.

해외 유학 경험 없음. 영어로 일상적인 의사소통은 가능하지만 비즈니스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은 편.

미국에 본사를 둔 외국계 기업 재직 중 (만 6년+)

회사 특성상 인사 이동은 하달, 발령식이 아님. 회사에서 새로운 포지션이 오픈되면 조건&연차가 맞을 시 사내에서도 지원 가능. 단 외부 지원자와 비슷한 프로세스로 면접 과정을 거치고, 면접을 통과 후 기존 팀과의 협의를 거친 후 팀 이동 가능


혹시 나와 비슷한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해외 취업 혹은 해외 오피스 트랜스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의 경험기가 작은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0. 생각해보니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기


서른에 뉴요커가 되겠다는 나의 소망은 그 자체가 '평생의 소망' 따위는 아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건대 거의 평생의 경험이 축적되어 나온 산물이었다.


미국에 대한 동경 + '인싸'가 되고 싶어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평생을 한국에서 살고, 교환학생 전에 해외 경험이라고는 여행 몇 번 다녀온 게 다였던 나에게 1년간의 미국 교환학생 생활은 eye-opening 그 자체였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와닿았던 건 '기회의 땅'이라는 별칭답게 미국에서 주어지는 기회의 양적, 질적 우월함이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시애틀이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북서부의 대표 도시이긴 했지만 뉴욕, LA, 시카고처럼 어마어마한 대도시 축은 아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도 워싱턴 주의 주립대 중 하나로, 물론 좋은 학교긴 했지만 소위 말하는 아이비리그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애틀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보잉, 스타벅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회사들의 본사가 있었고 자연스레 내가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취업활동과 연계된 많은 기회가 제공되었다. 경영대 동아리 차원에서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나 태블로라는 유수의 소프트웨어 회사 견학을 가기도 했고, 동아리나 학과 차원에서 이미 그런 기업들에 재직하고 있는 선배들과의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었다. 회사들도 직접 학교를 찾아와 적극적으로 캠퍼스 리크루팅, 커리어 데이 등을 진행했고, 인턴십이나 풀타임 잡에 대한 기회도 활발히 공유되었다. 


좌) 직접 방문했던 태블로 본사. 태블로는 대화형 데이터 시각화 소프트웨어 회사로 2019년 세일즈포스에 인수되었다 / 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진행되었던 아마존 커리어 데이


 한국에서는 학창 시절을 온전히 바쳐 명문대에 진학해도 운과 실력이 받쳐주어야 글로벌 회사들의 한국 지사 혹은 아시아-퍼시픽 지역의 헤드쿼터(주로 싱가폴이나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에 비해, 미국에서 태어나 괜찮은 미국 학교를 진학했다는 것, 그리고 영어가 모국어라는 것만으로도 글로벌 회사 본사에 대한 접근 가능성은 이미 출발점부터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물론 미국 학생들의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포춘 500대 기업 혹은 시가총액 기준 미국 50위안에 드는 회사에서 일한다'등의 동일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아래와 같이 비교해보자면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임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나: 영어유치원부터 시작해 12년간의 공교육 기간 내내 영어에 시달리며 한국 입시 경험 -> 대학 진학 후 토익, 토플 등 각종 영어시험 점수 획득 -> 글로벌 회사 한국 지사 취업 -> 왠지 미국 본사 사람들과 일할 때는 작아지는 나 자신을 보듬으며 더듬거리는 영어로 일하기 -> 어떻게든 본사 사람들과 네트워킹 형성 -> 미국에 가기 위해 본사 포지션 탐색(물론 그쪽에서 내 비자를 서포트해줄 의향이 있어야 한다) -> 왜 이 포지션에 미국인이 아니라 굳이 외국인인 나를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제공 -> 오퍼레터 사인 후 미국으로 이주 -> 이주 후 삶의 근간이 송두리째 변하며 세트로 찾아오는 각종 스트레스와, 풀타임 영어로 일해야 한다는 부담감 이겨내기 -> 어찌어찌 미국에서 밥 벌어먹으며 살기


미국인 A: 미국 출생, 영어가 모국어라 다른 언어는 취미 혹은 입시용으로 살짝 배워보기 -> 미국 주립대 진학 -> 내가 다니는 학교와 연계되어있는 기업들 리크루팅 행사 열심히 다니기, 선배들과 네트워킹 -> 글로벌 회사 본사 취업 -> 자연스럽게 미국에서 밥 벌어먹으며 살기


 1년간의 미국 경험은 그 자체로도 지극히 새로웠지만, 미국이 보여준 다른 차원의 기회들은 나도 주변부가 아닌 중심부로 가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의 씨앗을 내게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꼭 미국 유수의 회사에서 일하지 않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천조국'이라는 별칭을 가진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국가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곧 더 큰 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선사해주었다. 미국은 할리우드 영화, NBA,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등 전 세계로 유통되는 콘텐츠와 사건의 발원지이고, 아카데미 시상식, 슈퍼볼 등 모두가 닿고 싶어 하는 종착지이기도 하다. 또한 미국에서 생활하면 자연스레 세계적 규모의 브랜드, 회사 등에 노출되는데 이를 통해 축적된 경험은 단시간에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 자본이 된다. 예를 들어 타겟, 월마트, 코스트코의 차이점을 사업보고서만으로 파악하는 것과 실제 세 마트들을 이용해보며 생활 속에서 차이점을 익히는 것은 매우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만약 세 군데를 비교해 주식 투자를 결정한다면 투자 대상에 대해 직접 체득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비교우위를 지닌다. 물론 결코 미국 회사와 브랜드를 경험해 본 미국인이 무조건 미국 주식 투자에 유리하다는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 규모의 자본이 밀집되어있는 곳에서 생활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경험 지식은 자본주의 사회의 '인싸'가 될 수 있는 좋은 단초가 된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인간인 내게 딱 맞는 도시


 교환학생 때 짧은 겨울 방학을 맞아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뉴욕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사실 뉴욕에 대한 경험이 그리 좋지는 못했다. '크리스마스 인 뉴욕'에 대한 환상을 품고 갔지만 정작 나를 반겨준 건 고층 빌딩 사이로 부는 칼바람,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광객들, 미국 크리스마스 특유의 가족 중심주의 문화와 동떨어져 이역만리에서 혼자 연말연시를 맞는 외로움이었다. 가난한 학생 시절이었어서 크리스마스이브날 분위기 있는 식당은 꿈도 못 꾸고 뉴욕의 K-타운에 가서 셋이서 짬뽕 두 그릇을 나눠먹었던 서러움은 덤이었다. 하지만 2019년 초여름, LA 출장과 맞춰 방문한 뉴욕은 그때의 내 쓸쓸했던 기억이 완전히 덮어버릴 만큼 다채롭고 즐거운 기억을 선사해주었다. 센트럴파크에서의 러닝,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소호에서 함께 축하한 생일 저녁 등은 항상 할 거리,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인간'인 나를 전혀 지루할 틈 없이 채워주었고 비로소 '언젠가 미국에서 일 한 번 해봐야지'라는 소망을 '서른엔 뉴요커가 될 거야'라는 계획으로 바꿔주었다. 뉴욕은 때때로 센트럴파크, 허드슨 강에서 달리기를 하고 가끔 근사한 바에 가서 칵테일을 한 잔 하고 힙한 클럽에 가거나, 유명한 댄서들이 워크샵을 여는 스튜디오에 가서 춤을 배우고 늦여름에는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들의 경기를 보러 US 오픈을 보러 가는, 나의 라이프스타일에서 파생된 니즈를 빈틈없이 채워줄 수 있는 도시였다(거기에 잘생기고 착한 남자도 한 명 더하면 금상첨화겠다 ^^). 앞으로 이 니즈가 실제로는 얼마나 충족될 지, 또 얼마나 버라이어티한 챌린지를 맞닥뜨리게 될 지도 심히 걱정이 되지만 적어도 뉴욕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뉴요커가 된 스스로를 그려보게 하기에 충분한 도시였다.


행복했던 2년 전 초여름의 뉴욕

 

 이렇게, 어쩌면 생애에 걸친 사건과 맥락들이 모여 '서른엔 뉴요커가 될 거야'라는 목표를 빚어내었다. 이어서 다음 편에는 이 목표에 대한 경로를 잡아갔던 과정을 구체적으로 담아볼 예정이니, 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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