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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선 Jun 11. 2020

서로가 전부이던 시절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투어링 이어즈> & 비틀스

내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다. 비틀스 멤버들은 청춘의 나날을 마음껏 기뻐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는, 그래서 더 눈부신 네 명의 청년. 영화는 꽃처럼 아름다운 비틀스의 화양연화를 담았다. 오로지 5년이었다. 그들을 무대에서 볼 수 있었던 시간 말이다. 영화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15개국 90개 도시에 서 815회 열린 비틀스 월드 투어의 발자취를 담는다. 비틀스는 1966년 8월,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마지막으로 투어를 중단했다. 이후 해체에 이르기까지 리코딩 아티스트로만 활약한다. 투어를 다니던 전성기, 멤버들은 일주일을 8일로 지낼 만큼 치열하게 살았다. 당시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우리에겐 서로가 있다는 걸. 네 사람의 우정은 견고하다. 서로가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음악비평가들은 종종 바흐·베토벤과 더불어 비틀스를 음악계의 ‘3B’라고 지칭한다. 그만큼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새 비틀스는 ‘20세기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언젠가 해외 언론은 국내 그룹 BTS의 선전을 두고 ‘21세기 비틀스’라고 비유하더라. 이리도 비틀스를 칭송하는 이유는 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집었기 때문인데, 비틀스의 최대 성과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사로잡은 것. 영화에서도 두 지점을 재차 강조한다.

영화는 비틀스 팬덤 현상에 큰 비중을 둔다. 투어 당시 시끄러 운 팬들을 두고 언론은 ‘비틀마니아(Beatlemania)’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비틀마니아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다. 콘서트는 시작 전부터 몰려든 팬들 때문에 그야말로 아수라장. 비틀스를 보려고 담장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기절한 관객을 태우려 응급차가 오기 일쑤고, 통제력을 잃은 경찰들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우피 골드버그(Whoopi Goldberg)나 시고니 위버(Sigourney Weaver) 등 비틀스 투어 활동 시기에 팬이었던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해 설레는 눈빛으로 그때를 회상한다. 

똑같은 더벅머리, 똑같은 양복을 입은 네 명의 멤버. 영화에서 네 사람은 소년과 청년의 오묘한 경계에 서 있다. 비틀스는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당당했다. 멤버 모두가 말을 잘 받아치는 재주가 있었지만, 무례하지 않았다. 그들은 뻔뻔한 모습으로 공격적인 사람들에게 한 방씩 먹였다. 자연스러운 모습에 대중은 지독히 열광했다.

천연스러운 모습은 이들이 하룻밤에 만들어진 스타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틀스는 인기를 노리고 급조된 밴드가 아니다. 그저 음악이 좋아서 뭉친 친구들. 고등학교 때부터 연을 맺은 존 레넌(John Lennon)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이후 폴 매카트니의 소개로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이 합류했고, 1962년 마침내 드러머 링고 스타(리처드 스타키/Richard Starkey)까지 함께하면서 본격적인 ‘비틀스 신화’가 시작됐다.

외동이던 링고 스타는 비틀스에 들어간 후 갑자기 형제가 셋이나 생겼다고 말했다. 이들은 인터뷰를 하다가 멤버 머리 위에 담뱃재를 뿌리기도 하고, 한 멤버가 멋진 말을 하면 옆에선 호탕하게 비웃는다. 짖궂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비틀스는 막역한 단짝 패거리였고, 이것은 누구나 원하는 이상적인 친구들의 형상이었다. 

꽃 같은 시절이었지만, 모든 걸음이 꽃길일 리가. 비틀스가 있는 곳에선 늘 해프닝이 발생했다. 사실상 대규모 월드 투어는 비틀스 가 최초였기에, 가는 걸음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덮쳤다. 일본에선 국수주의자들이 공연 반대 시위를 펼쳤고, 필리핀에서는 대통령 지지자들이 멤버들에게 폭언하는 일도 있었다. 존 레넌이 반기독교 발언을 하자 세계 곳곳에서 살해 협박이 이어졌다. 월드 투어 말미에 갈수록 멤버들의 눈빛은 건조해진다. 마침내 이들은 1966년 모든 투어를 중단하고 음악 실험에 몰두한다. 잘 알려졌 듯이 이후 발표한 비틀스의 모든 음반은 히트를 기록했다.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꼭대기로 가는 거야.” 

“거기가 어딘데?” 

“가장 대중적이고 높은 자리지.”


한치 앞을 볼 수 없던 데뷔 초, 목표는 ‘꼭대기’였다. 영화의 마지막은 1969년이다. 런던의 애플 코어(Apple Corps Ltd.) 건물에서 펼쳐진 루프톱 콘서트(rooftop concert). 이는 투어 중단 발표 이후 오랜 만에 대중 앞에선 공연이자 해체 전 마지막 모습으로 기록된다. 아름다운 청년들은 어느덧 수염이 덥수룩해졌다. 지나가듯 나눈 그때의 대화처럼, 이들의 마침표는 꼭대기에서 이뤄졌다. 

올해는 비틀스 해체 50주년이다. 1970년 4월, 폴 매카트니는 솔로 앨범 ‘매카트니(McCartney)’ 발매 기자회견에서 비틀스의 분열을 언급했다. 놀란 취재진은 다음날 해체 보도를 쏟아냈다. 20세기 음악계를 뒤흔든 비틀스는 매카트니의 한마디에 단숨에 끝을 맺었다. 비틀스 멤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는 전설적인 작곡 콤비였다. 법적 해산 이후 두 사람은 꽤 오랫동안 저작권 논쟁을 펼쳤다. 이다지 아름답던 청년들이 어쩌다 서로를 미워하게 된 걸까? 이별 후 남은 마음의 잔여물들. 영화에 담긴 찬란한 순간을 보고 있자면, 이내 사라질 청춘인 걸 알기에 마음이 달뜬다. 

오는 9월, 비틀스 해체 50주년을 기리며 또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할 예정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 감독으로 알려진 피터 잭슨(Peter Jackson)이 비틀스 마지막 앨범인 ‘렛 잇 비(Let It Be)’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1969년, 비틀스는 어떠한 마음으로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스러져 가는 시기일까? 단단해지는 시기일까?


글_ 장혜선

사진 제공_ 미디어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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